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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세나] 감사 본문

아이실드21

[히루세나] 감사

승 :-) 2015. 8. 28. 18:05

[히루세나] 감사

 

 

 

*글 전개상 경기 내용이 바뀐 부분이 있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웠다. 포메이션 표를 들고 있다가 매니저에게 넘기곤 마무리 되어가는 타임아웃의 끝자락에 11명이 다시 모였다. 후끈후끈 달아오른 서로의 열기에 비해 그라운드의 잔디가 뿜어내는 푸른빛이 너무 차가워 눈이 시렸다. 4쿼터, 남은 시간 1. 동점 상황. 데이몬 공격.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공해야 한다, 빌어먹을 꼬맹이.”

 

 소년의 어깨가 순간 움츠러들었다. “죽더라도 성공시켜.” 짐짓 덤덤하게 말하자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그건 무리인데요.” 하고 약한 소리를 내뱉는다. 눈빛만은 당장이라도 해낼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대체 너는.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단 한 번의 기회인데.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승컵은 날아가 버리는데. 온몸의 피가 들끓어 머리칼마저도 쭈뼛쭈뼛해야 하는 이 상황에 웃음이라니. 그러나 나는,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가 너무나 너다워서, 코바야카와 세나다워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성공시킬게요.”

 

 아니, 그런 뜻으로 웃은 건 아닌데 말이지. 비실비실 흘러나온 웃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여기까지 끌고 온건 너니까 말이야. 끝까지 책임지라고. 나는 그의 헬멧을 툭 쳤다. 그러자 그가 바짝 얼은 채 대답하곤 자신의 진영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나를 중심으로 자신의 위치로 돌아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 선수들을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고교시절의 마지막 시합이 그렇게 부르짖던 크리스마스 볼이라니. 부원이 모자라서 1회전에서 탈락했던 작년에 비해 이렇게 오랫동안 경기를 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어쩌다 데이몬이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환호성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 모두는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너는 너의 자리에서. 나는 센터에게 공을 받아 너에게 건네고, 너는 그것을 받아 달리고. 늘 하던 대로. 코바야카와 세나이자 아이실드 21. 우승컵을 들고 와라. 나는 습관적으로 그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고개를 돌렸다. 숨조차 쉽게 내쉴 수 없는 그 중압감 속에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실드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네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제까지 기계적으로 패스를 어떻게 주어야 할지 확인하던, 일종의 러닝백이라는 포지션으로 내게 보였던 네가 순간 더 이상 러닝백이 아닌 코바야카와 세나라는 열여섯의 소년으로 나와 마주했을 때, 나는 손에 땀이 차 수건에 손을 대야만 했다.

 

“Set!"

 

 hut, hut, hut! 나는 쿠리타에게서 받은 공을 네게 건넸고, 너는 달렸다. 우리 쪽 라인맨들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진 상대편의 라인들 사이로 네가 달렸다. 그 모습이 마치 네 이름처럼 아무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빠른 강의 여울 같아서 나는 그 광경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고교시절 마지막 경기의 피날레는 네가 장식하는 거야. 바보같이 멍하니 서있던 나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에게 달려드는 블로커들을 막기 위해 땅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너에게 길을 터주는 것은 너를 제외한 우리들의 몫이야.

 

날아라!”

 

 그리고 데빌 배트 다이브.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전철역에서 상상했던 장면이 그대로 재생되었다. 열기, 벅차오르는 가슴, 그리고 귀가 터지도록 온몸을 울리는 관객들의 환호성까지 오롯이 온몸을 감싸고 심장과 함께 쿵쿵 울렸다.

 

터치 다운!”

 

 YA-HA! 그래, 결국 그렇게 해낸다니까. 너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아이였지. 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골라인으로, 소리를 지르며 그를 향해 뛰어나갔다.

 

빌어먹을 애송이들! 아직 경기 안 끝

 

 엔드 존에 헬멧이 벗겨진 채 앉아있는 그와 그를 둘러싸고 눈물을 흘리는 다른 이들의 모습이 감히 다가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순수한 기쁨을 담고 있어서,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즐기게 놔둘까. 엔드 존 가까이에서 바라본 경기장은 넓고, 넓고, 정말 넓었다. 이런 곳에서 잘도 싸워왔구나. 빌어먹을 애송이들. 경기가 무사히 끝난다면 한명씩 엉덩이를 차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킥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심판의 호루라기가 울리고, 이번엔 수비진형으로 자리를 잡자 내 옆에 있는 그가 보였다. 경기 내내 달리고, 넘어지고, 굴렀으니 아마 지금쯤 서 있기도 힘들 테지. 혹사된 무릎이 어떻게 부어올라있을지 눈에 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고, 날아서, 득점을 해낸 녀석이 꿋꿋하게도 내 옆에 한 사람의 선수로 서있다는 사실이 기특해 피식 웃음이 나왔다.

 

“Set!"

 

 두 번 정도 수비가 흐트러져 상대가 뚫고 들어왔지만, 결국 우리의 블록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게 시계는 정확히 경기 종료를 알렸다.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장내 아나운서가 데이몬 데빌 배츠를 호명하는 그 순간까지, 우승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인지 어리둥절해 있을 무렵, 그를 보았다.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몰아쉬는 너를 보는 순간, 우승이라는 단어보다 더욱 복잡한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와서 나는 고개를 재빨리 돌려버렸다.




* * *

 

 

 

 우승 세레모니까지 모두 끝낸 뒤 돌아온 라커룸은 그야말로 즐거운 난장판이었다. 자신의 활약상을 그대로 다시 재연하는 몬타부터, 벌써부터 근육통이 오는 것 같다고 투덜대면서도 싱글벙글거리는 불량 삼돌이들, 한쪽에서 파워풀한 단어를 말하면서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뚱보 주니어, 아무도 안기려고 하지 않아 시무룩해하면서도 좋다고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고 웃고 있는 뚱보, 그 모든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노땅, 눈물을 훔치고 있는 매니저와 치어리더, 그리고, 그리고.

 보호장비를 벗어던진 채 라커룸 한쪽 구석에 엉망으로 눕다시피 앉아있는 그의 작고 마른 몸이, 이제껏 경기가 끝나고 흘러가는 한 장면 중의 하나가 아닌 여러 감정을 동반한, 어쩌면 경이롭기까지 한 실루엣으로 오롯이 나에게 파고들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이, 이제 막 머릿속에서 몽실몽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겼다는 성취감과 몸의 피로를 가득 끌어안은 너는 그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환호성과 낄낄대는 웃음으로 가득해 시끄러운 라커룸 안에서 그와 나 사이만은 마치 진공상태인 양 고요했다. 가라앉았지만 무겁지만은 않은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그가 깨지 않도록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잘만 잔다. 옆으로 다가가자 훅 느껴지는 따끈따끈한 열기가, 그의 이마에 맺혀 있는 땀방울이, 그럼에도 슬몃 올라가있는 입꼬리가 지금 우리의 상황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의 한쪽 어깨를 잡았다.

 한 손에 들어오고도 남을 정도로 자그마한, 그러나 경기장 안에서는 저를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어깨.

 

수고했다. 망할 꼬맹이.”

 

 그리고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라커룸 한쪽 구석을 잔잔하게 물들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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