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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세나] 흉터 본문

아이실드21

[히루세나] 흉터

승 :-) 2015. 9. 4. 22:22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히루세나] 흉터

 

 

우리에겐 원조 아이실드 21이 있잖냐. 킬킬킬.”

 

 모두가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선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겁먹을 필요 없어. 쳐부수고 이기면 끝일뿐이다. 원조 아이실드로서 다시 한 번 너의 위상을 보여주고 와라! 나는 일부러 더욱 크게 소리를 내어 야마토에게 말했다. 마치 나 자신에게 윽박지르듯이, 그렇게 나는 경기장을 울렸다. 지금은 그 어떤 잡음도 섞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오롯이, 그와의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소보다 무거운 보호 장비가 발을 인조 잔디 밑으로 잡아끄는 것만 같았다. 마치 가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컨디션도 정말 빌어먹게 안 좋군. 나는 머리를 쓸어 올린 후 헬멧을 쓰며 다짐했다. ‘이긴다.

 

선공, 엔마 대학!”

 

 모두가 진형을 이루고 마주 서 있었다. 센터는 센터대로, 쿼터백은 쿼터백대로, 그리고 저쪽 어딘가에 네가 있겠지. 눈앞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실타래가 엉킨 듯 복잡했던 마음과는 달리 나는 웃고 있었다. 지금 네가, 1년이라는 시간을 돌아 내 앞에 서 있다. 나의 1년을 최고로 만들어주었던 네가. 코바야카와 세나, 네가. 비록 다른 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다른 유니폼을 입고 마주한 것이 즐거워 참을 수가 없었다. 꼭 한 번,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마주 서 라이벌로서 경기를 해보고 싶었지.

 

어설픈 적이 아니야. 모든 트릭 플레이를 다 써서라도 쳐부숴주마!”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너를 이기기로, 그것은 너에 대한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플레이로 네게 화답하는 것. 하지만 어쩐지 쓴 입에 나는 애꿎은 수건만 만지작거렸다. 다시 한 번 이 넓은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너와 내가 공을 건네고 받아서 달리는. 아마 꿈만 같을 것이다. 짙게 가라앉은 정적. 터질 것만 같은 나의 심장을 잡아 쥔 네가 내 앞에 있다.

 

“Set!"

 

 hut, hut, hut, 몇 번의 더미 콜 이후에 시작된 경기.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너는 마치 구름 사이를 가르는 햇살처럼 내게 다가오겠지. 누구보다 빠르게, 공을 가지고. 그리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은 아이실드다!”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나는 최후에서 너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온몸이 긴장으로 가득 차 찌릿찌릿 울리는 것만 같았다. 저 멀리서 네가 달려온다. 나와는 다른, 붉은색과 검정색이 얼룩진 유니폼을 입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너는 모두를 화살처럼 가른 채 최적의 루트를 찾아 파고들었다.

 

뭐야, 빌어먹을 꼬맹이!”

 

 더 빨라졌잖아. 너무나도 간단하게 나를 제치고 터치다운을 해낸 너를 보고 나는 험한 말을 내뱉었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팀이 지고 있는데 웃고 있다니. 평소 같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나는 참을 수 없이 즐거워졌다. 이제까지 네가 없는 필드에서, 몇 번을 이기고 이겼지만 지금처럼 즐거웠던 적은 없었는데. 반대편에서 달려온 선수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역시 아이실드 21!” “잘했어, 세나!” 첫 득점이 경기의 흐름을 지배하기 때문일까, 그들은 더욱 열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순간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허무에 휩싸였다. 나도 저기서, 함께할 수 있었다면. 의미 없는 가정이 땀과 함께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순식간에 필드가 고요해졌다. 잔잔한 바다와도 같은 필드에서 코바야카와 세나라는 소용돌이가 내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허물어져가는 무언가에 나는 그만 그 환희의 광경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 * *

 

 

 

승리, 사이쿄!”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공식전이 아니었던 탓일까, 승패와 관계없이 그들은 경기를 한 것 자체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내 앞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네가 보였다. 뭐가 그렇게 좋냐, 빌어먹을 꼬맹아. 나는,

 

선배.”

 

 라커룸으로 돌아가던 나의 발을 꽁꽁 묶은 것은 왁자지껄한 그 광장 속에서 들려온 너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이네요.”

 

 눈을 휘며 네가 웃었다. 동글동글한 머리통하며, 웃을 땐 곱게 접히는 눈꼬리, 그리고 저도 모르게 뒤통수에 올라가 있는 오른손이 꼭 1년 전과 다를 것이 없어서 나는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당장이라도 수고하셨어요. 라고 말할 것만 같은데. 네 입술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의 음파들이 흩어져 나왔다. 그 고운 목소리가 나에게로 쏟아져, 마치 빗방울처럼 나를 흠뻑 적시는 바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그 모습에 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시 열리는 입술.

 

선배?”

그래. 빌어먹을 꼬맹이.”

 

 그제야 네가 표정을 풀었다. “그 호칭도 오랜만이네요.”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하고 치밀었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리는 목구멍에서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나는 그 몰래 목을 가다듬어야 했다.

 

노트르담에서 빡세게 굴려지다 죽을 줄 알았더니.”

. 너무해요.”

콱 죽지 그랬냐.”

 

 여전하시네요. 하고 웃는 얼굴이 그야말로 순수한 빛을 띠고 있어서 나는 더 이상 이야기를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당장이라도 뒤를 돌아 우리 팀의 라커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쿨다운을 하고 시합을 분석해야 하는데. 코바야카와 세나라는 소용돌이는 이미 나를 집어 삼킨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너를 눈동자에 담고 싶은 걸 보면.

 꼭 일 년만이었다. 졸업을 축하한다며 눈꼬리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네가 준 꽃다발은 아직까지도 내 방 벽에 걸려있었다. 그 꽃의 생명이 흩어져가고 메말라 바스락거리며 부서져 간지도,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영겁처럼 길게 느껴지던 그 시간을 성큼 걸어 네가 내 앞에 서 있는데 나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꾸만 온갖 감정들이 치밀어 올라 그만 주저앉고 싶어졌다. 목구멍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감정들이 그대로 부어올라 숨조차 쉬기 힘들어졌다.

 

선배는 어때요? 새로운 멤버들이랑 호흡은 잘 맞아요?”

 

 아니. 나는 네가 아니면.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고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감정들이 흘러넘쳐 필드를 적셨다. 피가 날 것만 같은 생채기 사이로 나는 힘겹게 목소리를 내었다.

 

킬킬. 당연하지. 일본 제패는 일도 아닐 거다.”

 

 그 말에 네가 진심으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찬란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은 걸까. 따라잡을 누군가가 내 앞에 있다. 라고 생각할 때 네가 짓는, 감정이 벅차오른 듯한 순수한 얼굴. 그래, 나는 아마 저 얼굴에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경기장이 고요해졌다.

 

저희가 같이 뛸 수 있는 기회는 아무래도, 국가대표일까요?”

 

 그리고 네가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의 미래를 말했다. 너와 내가 함께인 미래. 그 말이 햇살처럼 나를 비추는 바람에 나는 눈이 부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고개를 숙이고 킥킥 웃는 것뿐이었다. 여전히 너라는 소용돌이는 나를 휘감은 채 돌고 있었다.

 

꿈도 크네.”

 

 아, 역시 그런 걸까요. 뒷머리를 벅벅 긁적이는 너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마치 너를 기다리듯 뒤에 서 있는 네 동료들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잡아 뜯었다.

 

다음엔 우리 발끝에라도 미쳐 봐라.”

다음엔 이길 겁니다!”

 

 다음엔 이기자. 라는 하나의 목표를 말할 수 없게 된 우리는 그대로 갈라졌다. 안녕히 가세요! 네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그대로 라커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흘러넘친 감정들이 바닥에서 나의 발에 끈적이며 달라붙었다. 마음 한켠에 구멍이 뚫린 듯 허해 나는 가슴께에 손을 대었다. 보이지 않는 흉터처럼 그가 그 안에 있었다.

 

 흉터처럼 남아있으나 그것을 쓰다듬을 때마다 기분이 기묘해지는,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추억처럼 내 몸에 아로새겨져 있는.

 

 내 가장 찬란한 시절을 담고 있는 흉터, 코바야카와 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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