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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화심피오셰이드] excídĭum 본문

레트로봇

[바이클론즈/화심피오셰이드] excídĭum

승 :-) 2015. 7. 7. 20:59

[바이클론즈/화심x피오x셰이드] excídĭum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으시길 권장합니다.

 

 시가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소리라면 개미 한 마리 지나가는 소리조차 나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이상한 고요함이었다. 쿠르르릉, 하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아무도 숨 쉬지 않고 아무도 울지 않는 기묘한 풍경 속에서 제일 이질적인 것은 회색빛의 시멘트 바닥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어린아이였다. 기껏해야 열 살을 갓 넘긴 것 같은 아이는 죽은 듯 그곳에 누워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모두 폭발에 날아간 듯 보였으나 아이의 외관은 멀쩡했다.

 주변에서 콰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쌓여 있던 시멘트 무더기 속에서 어떤 기계 하나가 튀어나왔다. 프로펠러 한쪽이 꺾여 제대로 날지도 못하는, 이제는 그저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그것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날면서 소년에게로 날아왔다. 흡사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꼴이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기계는 결국 소년에게 닿지 못하고 그 주변에 툭하고 떨어졌다. 기기긱, 기긱 하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가 바닥을 긁었다. 신경이 거슬릴 법 했지만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계는 바닥을 긁어가며 앞으로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소년에게로 다가가는 듯 했다.

 

.”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함께 엷은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기계음과 섞여 목소리라기 보단 음파에 가까운 소리가 먼지와 함께 풀썩거렸다. 기계에서는 여전히 소년을 찾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프로펠러는 바닥을 긁고 있었다.

 

 그 때 다른 한 쪽에서 빠득, 하고 무언가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흡사 쇠가 다른 기계를 짓눌러 부서지는 소리였다. 다리를 잃은 병사처럼 앞으로 기어나가던 기계가 소리가 난 쪽으로 액정을 돌렸다.

 

……!”

 

 기계가 앞으로 가던 행동을 멈췄다. 마치 기름이 다 닳은 자동차마냥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바닥을 밟은 사람 다리 모양을 한 쇳덩이가 자신의 발에 밟힌 기계를 시멘트 바닥에 짓누른 채 비볐다. 콰득, 콰드득, 하고 액정이 시멘트에 긁혀 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안 돼. 그만. 멈춰 선 기계 안에 담긴 사람 형체의 무언가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았다. 남자가 밟은 기계는 그들의 동료 중 하나였다.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잠깐 잠깐 들리다가 이내 완벽하게 침묵했다. 그것을 밟은 남자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남자가 발을 떼자 기계의 파편들이 먼지와 함께 피어올랐다. 남자가 발을 뗄 때마다 먼지들이 그의 다리 주변을 감쌌다. 뚜벅, . 뚜벅, . 기묘한 발자국 소리를 만들어내는 남자였다. 황금색 다리가 이질적인 인상이었다.

 

,

 

 기계가 있는 힘을 다해 다시 프로펠러를 움직였다. 프로펠러가 천천히 움직이고 그 역시 비뚤어진 길이나마 소년을 향해 가까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묘한 발걸음의 사내는 이미 소년 앞에 당도한 후였다. 기계 안에 담긴 남자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잔뜩 깨진 액정 사이로 빨간 불이 일정한 간격으로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분명 긴급 상황이 분명했으나 기계 안의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리만 쥐어뜯을 뿐이었다. 이럴 땐, 어떻게. 어떤 매뉴얼을. 액정이 깨져 흐릿하게 보이는 바깥세상이 오늘만큼 원망스러울 때가 없을 거라고, 액정 속의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심해.”

 

 황금색 의족과 의수를 한 남자가 소년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미약하게나마 숨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그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약하지.”

 

 인간이란 약해 빠져가지고. , 하고 그가 혀를 찼다. 여전히 바닥을 긁으며 소년에게 다가오고 있는 기계를 힐끔 쳐다본 남자가 다시 몸을 일으켜 그 기계에게로 다가갔다. 남자가 햇빛을 가려 그 주위가 잔뜩 어두워졌다.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멈춰선 기계를 보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최악이네.”

 

 머리를 붙잡고 있던 액정 속의 남자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을 그대로 떨어트렸다. 이제까지의 전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단 한마디였다. 최악. 그는 자책했다. 사실이었다. 자신의 계산 실수로 이 일대가 전부 날아가 버렸다. 그나마 겨우 살려 놓은 것이 소년이었다. 아마 소년은 긴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고 해도 평생을 악몽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이 지구에서.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 그는 주저앉고 싶어졌다.

 

네 주인은 저렇게 만들어 놓고. 혼자 살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꼴이 한심해서 웃음이 나온다.”

, ,”

나라면.”

 

 남자가 노이즈를 끊고 말했다.

 

저렇겐 만들지 않아.”

 

 남자가 발을 들어 기계에 갖다 댔다. 그리고 그대로 힘을 주어 밟았다. 이제까지 그렇게 소년에게로 나아가려고 애쓰던 기계의 프로펠러가 어이없이 부서졌다. 너무나도 쉽게, 그렇게 부서졌다. 액정 속의 남자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남자가 시끄럽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피오를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든, 네가 알 바가 아닐 텐데.”

더 이상이런전쟁에, 말려들지 않게

더 이상? 이런 전쟁?”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뻔뻔하네.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기계의 액정을 자신과 마주 볼 수 있도록 뒤집었다. 잔뜩 부서진 액정 속으로 어떤 남자가 보였다. 고작 이따위 기계 따위가. 저렇게 어린 아이를. 뿌득 하고 남자가 이를 갈았다.

 

이런 전쟁에 휘말리게 한 게 누군데.”

 

 이를 악물고 말한 남자가 액정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심하게 부식된 기계 모서리가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는 손에 준 힘을 풀지 않았고 액정 속의 남자는 자폭 시스템을 찾으려다 그만두었다. 더 이상 피오를 폭발에 휘말리게 할 순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무기력해보여 남자는 당장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다. 자신이야 통신만 끊기는 것이라 해도, 피오는 달랐다. 저렇게 어린 새처럼 나약한 아이를, 어떻게. 남자는 차라리 자기가 대신 죽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계를 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린 아이다. 내가 주먹을 휘두르기만 한다면 그것에 날아갈 정도로 작은 아이지. 그런데 너희는 이 아이를 데리고 무슨 짓을 했지?”

…….”

이제까지 아무런 대가 없이 이 어린아이들을 사지로 내몬 것은 너희가 아닌가?”

 

 기계에서는 어떤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지직거리던 기계음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남자가 바닥에 기계를 집어던졌다. 기계가 반쪽으로 쩍 갈라졌다. 붉은색으로 번쩍이던 액정이 더 이상 빛을 내뿜지 못하고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이제 저 기계는 단순한 고철덩이에 불과했다.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고 욕지기가 치민다는 듯 이를 악물었고 턱 밑의 근육이 불뚝 솟았다.


구역질이 나네.”

 

 남자가 그대로 일어나 소년에게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아마 저 기계는 소년을 보호하는데 마지막 방어시스템을 발동했을 것이다. 남자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바로 밟아버려서 끝내면 되는 거였는데.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모를 일이다. 이제까지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었던 남자의 인생에 조금씩 끼어들어 목적지로의 길을 틀어지게 만든 것은 바로 앞에 있는 소년이었다. 당장이라도 이 조그만 머리통을 짓밟아 두개골을 깨부수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가운 쇳덩이를 대기보다, 양 손을 소년의 목과 허벅지를 받치는 데 사용했다. 정말, 스스로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소년의 몸은 아직도 따듯했다. 팔딱거리고 뛰어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시키려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살아. 그렇게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남아. 남자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앞으로의 세상이 지옥이고 불구덩이라도 살아남으면 되는 거야. 새근거리는 소년을 품에 안은 채 남자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멀리서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만한 불가사리 몇 기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그 불가사리 위에 소년과 함께 올라탔다.

 

오래 자 둬라.”

 

 깬 뒤에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남자가 소년을 안고 폐허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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