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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화심피오] Walking through the night 본문

레트로봇

[바이클론즈/화심피오] Walking through the night

승 :-) 2015. 7. 13. 12:42

[바이클론즈/화심피오] Walking through the night

 


*기본 2기 설정이나 글로 풀어내기 편하게 변형한 점이 있습니다.

 



1.


 

 벌써 몇 시간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이는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감사합니다! 하고 환하게 웃던 그 아이. 어차피 부숴버릴 하나의 행성에 불과한 이 곳에서 쓸데없는 정을 붙이지는 말자고 단단히 결심하고 왔지만 어쩐지 올라가는 입꼬리는 막을 재간이 없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계속 그를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은 투박하게, 내 식대로 가르쳤지만 싫단 소리 없이 묵묵히 따라와 준 그 아이에게 흥미를 느껴서. 단지 그것 때문이다. 절대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주문을 걸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전장을 헤쳐오고, 가장 전방에서 명령했었지만 늘 모든 일은 틀어졌고 이변이 일어났다. 예상과 맞는 일이 일어나면 다행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빠르게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했다. 이제까지 나는 그런 삶을 살아왔었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는 무섭다며 벌벌 떨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고, 그렇게 살지 않았다간 내가 원하는 이상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최악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망가지기를 기다리는 듯한 삶.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금세 울면서 안한다고 돌아가 버릴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꼬마는 어느 새 내가 던지는 쓰레기들을 전부 다 피하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첫 번째 이변. 이제까지 이변이 생길 때마다 절망했던 느낌과는 달라 나는 당황했다. 웃긴 노릇이었다. 잘했다고 칭찬해주자 웃음 짓던 소년의 표정이 뇌리에서 흩어지질 않아 나는 그날 밤 제법 고생을 했다.

 

 

2.

 

 

 ‘문명 종결수혹자는 탐을 그런 두려움이 가득한 이름으로 불렀다. 그 작명을 본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지구인이나, 다른 우주인들이나 약해 빠진 것은 똑같았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긴급 알람으로 가본 현장에는 약해빠진 인간과 약해빠진 환장 용병단이 고전을 하고 있었다. 나약한 것들의 싸움만큼 보기 추한 것은 없었다. 내가 등장하자 용병단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필시 도망간 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 모습만을 숨긴 것이었을 터라 나는 웃었다. 비겁하고 무능한 것들.

 그리고 두 번째 이변은 거기서 일어났다. 단순한 로봇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생각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탐의 코어가 부서질 위기에 처했고, 나는 빠르게 자폭을 택했다. 탐이 자폭할 만큼 코너에 몰린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적극적인 공격보다 수동적인 방어만을 계속하는 내 태세도 충격이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좀 더 공격해. 팔을 세게 휘둘러! 주먹을 꽉 쥐었지만 탐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왜였을까. 왜 나는 그들에게 있는 힘껏 공격하지 못했을까. 스스로 코어를 찌르고 자폭한 뒤 무엇에 홀린 듯 다시 하늘 공원으로 돌아왔을 때,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일이 조금 더 꼬여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는지. 왜 탐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는지. 내가 이제까지 키워온 탐은 다른 불가사리와는 다르게 내 심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져있는 내 의수보다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탐이었는데. 그날따라 소극적인 탐의 태도에 나는 분노하는 척 자폭했으나 사실 그것은 더 깊은 속내를 찔려 당황스러움을 감추려 한 행동이었다.

 그들이 하나의 로봇으로 합쳐지기 전 내가 바라본 것은 한 바이클로넛이었다. 바이클로넛 중에서도, 어리고 작은. 마치 그 아이 같은 체구의 바이클로넛. 수년간 전장에서 누구보다 빠른 파악속도를 체득해 온 나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이제까지 하늘 공원에서 함께 했던 그 소년이라는 것을. 이제까지 키워줬더니 배신이라니. 입이 써서 나는 웃었다.

 

 

3.

 

 

 밤바람이 찼다. 그대로 떠나려 했으나 왜인지 내 발걸음은 하늘 공원을 향했고 내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정자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어쩐지 팔과 닿아있는 의수의 접합면이 유난히 차가웠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여전히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빙글빙글 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아이도 나를 봤을까. 나의 정체를 알았을까. 그 순간 내 발은 저절로 걷기를 멈췄다. 동시에 내 눈에 소년의 자전거가 들어왔다. 아무도 타지 않고 있는, 그 아이의 성격대로 얌전히 세워져있는 작은 자전거.

 발로 한 번 툭 차면 부서질 것만 같은 그 자전거를 보고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이 시간에 여기는 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늘 함께 다니던 시끌시끌한 형이란 아이도 없었다. 나는 문득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내 정체가 들키길 바라고 있는 걸까, 혹은 영원히 정체를 숨기길 바라는 걸까.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기 어려웠다.

 시간은 오후 9시 쯤 되어보였다. 주변이 어두운 탓에 시야는 더욱 좁아졌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슬슬 화가 날 무렵 나는 불현 듯 정자로 다가갔고 그 곳엔, 세상모르게 잠들어버린 아이가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딱 그 나잇대 어린아이 같아서 나는 다른 의미로 웃음을 흘렸다. 한참 자전거를 탄 후였는지, 아니면 아이의 특징인지 꼬마는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어딘가 아픈 것이 아닌가 걱정 되어 이마를 짚어보았으나 다행히 열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거두었다.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온 몸에서 당장 이 아이를 죽이라고 부글거리고 있었다.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적이었다. 지금 여기서 지팡이를 꺼내 조그맣고 동그란 머리통을 깨부순 뒤 떠나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전쟁터에서 내 발에 밟히고 지팡이에 채여 죽어간 이들이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죽여! 죽이라고!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죽여!

 마지막으로 나에게 밟혀 죽어가기 직전의 존재들이 짓던 표정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증오와 분노,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 그러나 이 앞에 누워 잠든 소년의 표정은 어떠한가. 아무 것도 모르고 누구보다 편한 표정으로 꿈에 빠져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옆에 앉았다. 소년의 머리로 가져가는 손이 덜덜 떨렸다.

 소년의 머리칼 위로 손을 내려놓자 북실한 소년의 머리칼이 만져졌다. 그리고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그의 두피가 만져졌다.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그 도구에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사용하는 나 자신에 대해 나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이상한 감정이다.

이대로 그를 깨워 집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그가 몸을 살짝 뒤척였다. 그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그대로 벌떡 일어나버렸다.  입을 우물거리던 아이는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래도 깨우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찬바람이 불었다. 아이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은 이미 바람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모습에 나는 망토를 벗어 소년에게 덮어주었다. 네 가족들이 너를 데리러 올 때까지. 그 때까지만이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천진한 표정으로 잠든 소년의 얼굴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느꼈다. 너는 나의 정체에 대해 알아서도, 그리고 너의 정체에 대해 알아서도 안 된다.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이 긴긴 밤이 끝나고 잠에서 깨어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달콤한 꿈이었는지, 혹은 끔찍한 악몽이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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