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Big Wind-up!

[또봇/셈한] 달이 떴다고 서신을 주시다니요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달이 떴다고 서신을 주시다니요

승 :-) 2015. 7. 29. 13:38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또봇/셈한] 달이 떴다고 서신을 주시다니요*

 

 

 새카맣게 어두운 밤하늘에 둥실 뜬 달이 참 밝습니다. 따로 등불을 켜지 않아도 새하얀 빛이 방에 가득 들어와 당신에게 쓰는 이 서신을 환히 밝혀주고 있으니까요. 그 곳 생활은 즐거우신지요. 권 형과 함께 자치기를 하며 놀던 어릴 적부터, 함께 글을 배우고 과거를 보러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우리는 그 긴 시간을 떼어내고 서로의 공간에서 서로의 일을 하며 잘 살고 있나봅니다.

 사실은 조금 서운했습니다. 권 형이 잘 살고 있는지, 일은 힘들지 아니한지 궁금하였으나 차마 나보다 바쁠 형을 생각하여 쉬이 연락을 하지 못했었는데, 권 형 역시 그렇게 느낀 것일지는 몰라도, 꽤 오랫동안 연락을 주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다 문득, 달빛이 이렇게 고운 날 저에게 도착한 이 서신은 이 지치고 힘든 타향살이에 힘들어하던 저에게 한줄기 물과 같았습니다.

 서신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사실 읽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차마 모두가 있는 앞에서는 읽지 못하고, 밤에 나 혼자 들어와 계집아이처럼 몰래 서신을 읽어본 참입니다. 이런 글을 적으면 권 형이 놀리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부서져오는 달빛이 너무 밝아서, 마치 형이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아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적다 보니 형과의 추억들이 물에 번지듯 떠오릅니다.

 

 달 밝은 밤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파도치게 만드는 것인가 봅니다.

 


 

* * *

 

 

 

차 형은 나이도 찼는데 슬슬 혼기가 다가온 것 아니오?”

권 형도, 농이 심하오.”

 

 농이라며 웃는 그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야살스럽다. 화선지에 번져가던 먹색 난화에 뚝, 하고 붉은색 웃음이 떨어진다. 나는 눈을 비빈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은 분명 먹이 듬뿍 담긴 붓일 뿐인데, 번져나가는 것은 붉은 색 꽃송이들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가 내딛는 걸음 걸음마다 피어나던 꽃들과, 그에게 다가가면 풍겨오던 달큰한 꽃향기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곤 곧, 고고한 난을 완성한다.

 

형을 닮았소.”

 

 에? 하고 내가 내민 종이 앞으로 고개를 내미는 동글동글한 머리통이 사랑스러워 나는 하마터면 입을 맞출 뻔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그 생각의 끝은 항상 너는 왜.’ 로 끝나기 때문에 나는 가급적이면 붕붕 떠오르는 그 생각들을 잡아 내리려 애쓰고 있었다. 내 앞에서 환히 웃는 네 모습을 보며,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감정의 불쏘시개를 너에게 들이밀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활활 타오르고 있어, 네게로 가까이 다가가면 다칠 것만 같은 그런 불덩어리를 차마 네게로 내밀 수가 없어 나는, 묵묵히 그 뜨거운 무엇을 삼켜버렸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네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흐뭇한 미소를 떠올릴 때쯤 네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형은 이제 다 그렸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젓는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너와 오래 함께 있고 싶어서.

 

 새하얀 화선지를 꺼낸다. 아무것도 물들지 않아 순수함 그 자체인 것이 너와 닮았다. 차마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어 나는 붓을 들지도 못했다. 갈 곳 잃은 손이 하릴 없이 먹만 갈자 새까만 물이 벼루에 녹아든다. 당장이라도 붓에 적셔 화선지에 잔뜩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싶었으나, 새하얀 그것을 더럽힐 수가 없어 나는 그저 먹만 갈았다. 마치 내가 네게 함부로 다가가 물들일 수 없듯이. 속에서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이내 잠잠히 가라앉았다.

 네 생각이 날 때마다 하염없이 먹만 갈았다. 그렇게 다 닳은 먹만 몇 개째인지 모른다. 처음엔 옅은 색이던 먹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고 진해지고 응축되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시간이 지나면 더욱 더 진해지는 것이 내 마음 같아서, 그렇게 나는 먹만 갈았다.

 너와의 기억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가 울고 있는 네 옆에서 너를 달래주었단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것이 내 생애 가장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무슨 일이오? 하고 묻자 너는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잔뜩 뭉개진 발음으로 나를 불렀다. 권 형. 그 때의 두근거림이 지금까지 이어져 꼭 10년이 되었다. 그 때 네가 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지금 이렇게 너를 앞에 두고 그림과 시를 나누며 속으로 눈물짓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을까.

 하나야.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이다지도 요사스럽다. 분명 너에 대한 첫 인상은 어딘가 비리비리한 것이, 사내놈이 써먹을 곳도 없겠다.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너를 바라보며 이상한 감정이나 품고 있는 내 꼴을 보니 그런 것 같다. 화선지에 번지는 먹물을 걷잡을 수 없듯 내 얼굴에 퍼지는 웃음 역시 막을 길이 없어 나는 너를 앞에 두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처마에 무엇이 있소?”

 

 내 생각과는 전혀 달리 엉뚱한 것을 묻는 네 모습이 귀여워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오? 의아함이 가득 담긴 얼굴에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어 나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웃음이 멈추면 바로 드러날 감정 때문에, 그렇게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 * *

 

 

 이만 서신을 줄여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침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안 탓인지 노비들이 밖을 서성이는군요. 나 때문에 애먼 사람들까지 잠 못 들게 할 수는 없지요. 이번 밤은 유난히 길 것 같습니다. 눈을 감아도 형의 글체가, 화선지에 유려하게 써내려간 형의 글자 하나하나가 떠오르겠지마는 그래도 일단 자리에 누워야겠지요. 형이 살고 있는 곳과 이곳의 거리는 몇 리나 될지 궁금합니다. 말을 타고 가면 며칠이나 걸릴지요.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우니 나중에 한양에 가게 될 일이 생기면 그 때 잠시 들러야겠습니다.

 이 긴긴 밤을 고이 접어 형을 만났을 때 펼쳐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만났을 때에는, 예전처럼 마주 누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항상 그립습니다. 다른 이들은 말합니다. 상사병이라도 걸리겠다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 짓습니다마는 정말로 그런 모양새라 웃으면서도 입이 씁니다.

 밤이라 그런지 내가 별 말을 다 합니다. 혹 이 글을 읽고 불쾌하시거든 바로 이 서신을 찢어버리셔도 좋습니다. 읽지 않으니 못한 서신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부디 몸 건강히 지내시기를.

 

-차 하나.

 

 

 

*김용택-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