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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태오래오] 흑심 (RT이벤트 당첨 글) 본문

레트로봇

[바이클론즈/태오래오] 흑심 (RT이벤트 당첨 글)

승 :-) 2015. 8. 15. 12:12




(작업할 때 들었던 BGM입니다만 가사가 있어서, 듣지 않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RT이벤트 당첨되신 라벤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이클론즈/태오래오] 흑심

 *바이클론즈가 되기 전의 설정입니다.

 

 

 모두가 잠든 밤, 방에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연필이 종이에 닿아 무언가를 만들어 내며 내는 소리. 연필의 흑심은 쓰면 쓸수록 줄어들지만 그와 반대로 무엇인가를 남기며 떠나간다. 생산적이야. 래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이어리에 짤막하게 일기를 적고 있었다.

 

태오 형 5시 반에 출발. 도시락은 어제 밤에 싸둔 주먹밥.

주먹밥은 상할 수도 있으니 안 상하는 걸 찾아봐야겠다. 내일 장보러 갈 것.

형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야겠다.’

 

 계속해서 적어가던 래오가 쭈욱 자신의 다이어리를 읽어본 뒤 피식 웃었다. 그 전 날, 전전 날의 페이지로 돌아가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태오 형, 태오 형, , , . 다이어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로 온통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래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도, 상태도. 전부 다. 깨달은 이후였다.

 

 한창 부모님이 안 돌아오실 때였다. 자신의 멘탈도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네 명의 동생들을 이끄는 자신의 형을 보고는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것이 그 해 여름. 동생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낮에는 퀵 서비스, 밤에는 야식배달을 하는 그의 책임감에 점점 더 형제 이상의 감정으로 걱정하고 잔소리하기 시작한 것이 그 해 초가을. 그리고 마침내, 태오가 우리한텐 너밖에 없잖아.’ 하고 래오의 머리에 그 커다란 손을 턱, 얹어 놓은 채 씨익 웃는 형의 모습. 그 모습에 어느 덧 래오의 마음속에서 자라나던 까만 마음이 마치 흑심을 품은 연필처럼 그의 중심을 차지해버린 것이 바로, 겨울. 꼬박 일 년을 걸려 알게 된 마음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 좋아해. 하고 혹시라도 말한다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 나도 래오를 참 좋아해.’ 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했다. 같은 단어를 내뱉고 있으나 품고 있는 마음은 달랐다. 그 사이의 골이 깊어 래오는 섣불리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일기장에만 적어두고 있는 것이었다.

 

 시계를 흘끗 보자 12시 반이 넘어 있었다. 이제 곧 태오가 올 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여닫는 소리가 태오의 성격다웠다. 아이들이 깨지 않게 모든 행동을 조용히 한 뒤 래오를 보고 웃는다. ‘아직까지 깨어 있었네. 얼른 자지 왜 그랬어.’ 래오가 형, 하고 부르면 그는 뒤돌아본다. 수고했어. 그 한 마디를 더듬지 않고 내뱉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그 말을 한 뒤엔 밤이라 집안이 어두워 자신의 얼굴빛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동생들 앞에선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지친 밤, 그 동안 쌓인 시간과 피로를 등에 잔뜩 업고 돌아오는 그 시간에는 유일하게 얼굴에 지친 빛을 보였다. 이상하게도 래오는 그 얼굴을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롯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얼굴 같아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던 래오가 딱 한 번, 마중을 나가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책상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었던 그 때, 깜짝 놀라 내려가 본 거실엔 그가 있었다. 태오가, 늘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씻으러 들어가던 그가 거실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모든 시간과 가장의 무거움을 끌어안은 채 벽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꽈악, 래오는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곧 손을 들어 마른 얼굴을 쓸었다. 그렇게 패잔병처럼 스러져있는 태오 앞에서 래오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한참을 눈물 흘렸다.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형이 깰까봐 차마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는 목소리를 끅끅거리고 삼키면서, 동생은 흐느꼈다.

 

 

* * *

 

 

, 도시락!”

 

 래오가 급하게 태오를 부르자 입에 식빵을 물고 있던 태오가 급하게 다시 돌아왔다. 래오가 들고 있는 도시락 통을 낚아챈 채 태오가 다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래오가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잰 걸음으로 문 밖까지 배웅하러 나간 래오가 본 하늘은 어두웠다. 자전거에 붙은 두 개의 휴대폰이 반짝거리며 태오를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래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곧 큰 손이, 두껍고 단단한 손이 래오의 머리 위에 툭 하고 얹혀졌다.

 

어린 놈이 한숨은. 간다.”

 

 잠이 덜 깨 부스스한 머리 사이를 손가락으로 살짝 흩트려 놓으며 태오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빠르게 멀어졌다. 자신이 싸준 도시락 통이 태오의 옆에 있었다. 안쓰러움과 두근거리는 마음이 여기저기 통통 튀어 오르다 마침내 래오의 머릿속 한 지점으로 모였다.

 

잘 다녀와.”

 

 겨우겨우 내뱉은 말 한 마디는 떨림을 담고 있었다.

 

 

 그 날 하루 종일 래오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동생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학교에 보낸 뒤 집에서 부업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랬다. , 잘못했다. 하고 다시 나사를 푼 것이 이번 로봇으로 딱 열 번째였다. 웬만하면 실수를 안 하는 래오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래오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새벽에 느껴졌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무게와 촉감이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새삼 태오와 자신의 손 크기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느껴진 래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 또 틀렸다.”

 

 인내심이 많은 래오라도 더 이상의 실수는 참기 힘들었다. 래오는 똑똑한 아이였다. 한 번 실수한 것은 더 이상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래오가 열한 번째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니. 픽하고 웃은 그가 아예 로봇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 아무도 없는 집안까지 울릴 것만 같은 심장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부모님이 원인 모를 행방불명으로 사라진 지 일주일이 지나고 래오는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몸은 열심히 부모님을 찾아다니고, 울먹거리는 동생들을 달래고, 마음을 다잡아주었지만 속에서부터 부서져 내리는 자신의 마음은 붙잡을 길이 없었다. 열심히 긁어모아 채워 넣으면 다시 파스스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단단하게 틀어막으면 쩍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일쑤였다. 동생들을 살려가며 그렇게 자신은 무너져가던 래오에게, 서서히 마음속으로 들어와 허하게 뚫린 구멍을 부드럽게 채워준 것이 바로 태오였다. 이제는 자신과 하나가 되어 쿵쿵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해 래오는 웃었다.

 

우리한텐 너 밖에 없잖아.’

 

 하고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나가던 그 든든한 뒷모습을 생각하자 래오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오르락 내리락거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래오는 차가운 책상에 자신의 뺨을 대었다. 고요했다. 실로 고요한 집안이었다.

 그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가 올 리가 없는데. 오사장인가, 싶은 마음에 래오가 벌떡 일어나 대문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태오가 자전거를 세우고 있었다. “!” 하고 부르자 태오가 고개를 들어 래오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래오의 마음속으로 온전하게 들어와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또 다시 래오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물. 물통을 흔들어 보이며 태오가 말했다. 평소라면 그냥 주변에 있는 급수기에서 담았을 텐데. 굳이 물을 채우려고 온 태오가 이상해 래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침에 네 표정이 별로길래. 다시 한 번 보러 왔지.”

 

 너야 말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다정하게 물어오는 태오의 목소리에 래오는 코끝이 시큰거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저었다. 한 동안 둘 사이에는 물통 안에 물이 채워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래오는 그 소리가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넓은 집안 안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들어와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온도, 분위기, 기분이 달라졌다. 물론 그것은, 그 누군가가 태오였기 때문이었다.

 

 물통에 물이 다 채워지고, 태오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래오가 재빨리 그 뒤를 쫓았다. 앞을 향해 걷던 태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갑작스럽게 멈춘 탓에 래오가 래오가 태오의 팔에 부딪혔다. 깜짝 놀란 래오가 한 발자국 크게 뒤로 물러섰다. 태오가 고개를 약간 숙여 래오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야 돼.”

 

 형이잖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말 한 마디에 래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온갖 감정들이 들끓어 래오의 목을 조였다. 뻐근해지는 목구멍과 뜨거워지는 눈두덩이를 애써 외면한 채 래오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입 안에선 여러 의미를 담은 단어들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마냥 앞쪽에 늘어져 있었다. 무슨 뜻이야? 그 형이라는 단어는, 당신에게 무슨 의미야? 입안에 들러붙어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그 말꼬리들을 애써 끌어당겨 목구멍 안으로 꼭꼭 집어 삼키자, 그것들이 가뜩이나 잔뜩 조여져 있는 목구멍을 긁으며 내려갔다. 아프다. 래오는 생채기로 가득할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야말로, 몸조심해.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입을 비집고 흘러나오려다 그만 모습을 감췄다.

 

너 밖에 없어.”

 

 잠시 침묵.

 

나한텐 그래.”

 

 태오가 래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그렇게 태오가 대문 문을 열고 페달을 밟아 나갈 때까지 래오는 고요한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그제서야 부글부글 끓던 감정들이 흘러나와 거실 바닥을 적셨다.

 

 

* * *

 

 

 좋아해요. 연필이 흑심을 사각사각 긁으며 문장을 만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같은 문장만 반복해 쓰며 다이어리 한쪽을 새까맣게 채우던 래오가 책상에 엎드렸다.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래오는 할 수만 있다면 태오의 마음에 좋아해.’ 라고 쓰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던 래오는 의자를 단단하게 붙잡았다. 안 돼. 지금은, 아니야. 형의 얼굴을 보고 좋아한다고 말해 버릴까봐, 래오는 책상 앞에 앉은 채로 한참을 있었다.

 지금쯤이면 씻고 올라와야 할텐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한 래오가 문을 열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었나, 하는 순간 현관 옆에 쓰러지듯 잠들어 있는 태오가 보였다. 어디 아픈가 싶어 순식간에 태오 옆에 가 이마를 만져봤으나 오히려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축 늘어진 팔다리가 안쓰러웠다.

 형, 일어나. 조심스럽게 태오를 흔들어 깨웠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래오가 결심한 듯 태오의 양 옆구리에 손을 끼고 그를 일으켰다. 그러나 역시 태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새삼 태오와의 체격차이를 느낀 래오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런데서 자면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싶어 래오가 조심조심 자신의 방으로 가서 얇은 담요를 가져왔다.

 태오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래오는 무릎을 세운 채 얌전히 태오를 바라보았다.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그 모습이 집안의 가장도, 맏아들도, 큰형도 아닌 오태오의 모습이라 래오는 웃음이 나왔다. 가만히 태오를 바라보던 래오가 조금씩 자리를 옮겨 태오 옆으로 갔다. 태오 옆에 자리를 잡은 래오가 태오의 어깨에 자신의 어깨를 대었다. 숨소리가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에서 래오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이대로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알람이 울려 벌떡 일어난 래오가 졸린 눈을 뜨기도 전에 느낀 것은 다른 것도 아닌 침대의 감촉이었다. 분명 어제 바닥에서 태오와 함께 잔 것 같은데. 래오는 후다닥 거실로 내려갔다. 그러자 태오가 부엌에서 서툴게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내가 할게.”

, 일어났어?”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묻고 싶었지만 래오는 입을 다물었다. 도시락을 다 싸고 태오에게 건네주자 태오가 말했다.

 

너 많이 무거워졌더라.”

 

 뭐?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물음에 태오가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네가 내 옆에서 자고 있길래. 감기 걸릴까봐 네 방으로 옮기는데 많이 무거워졌던데?”

 

 많이 컸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태오. 간다. 하고 말하는 태오. 래오는 또 다시 태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되돌아온다. 가까워온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반응도 못할 정도로 머리가 갖은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태오가 그런 래오의 양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좋아해.”

 

 그 말만을 남긴 채로 태오가 나갔다.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 같은 기분이라 래오는 부엌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하하. 래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다이어리는 어제 쓴 부분이 아니라 몇 장 뒤로 넘어가 있었다. 동생들이 일어나지 않아 고요한 집안에 래오의 심장소리만이 쿵쿵거리며 기분 좋게 울렸다



*소재 도움 주신 식님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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