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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복수 (전력 60분)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복수 (전력 60분)

승 :-) 2015. 10. 4. 23:35

[또봇/셈한] 복수

 

*에반게리온 AU입니다.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에바는 로봇형 인조인간으로, 파일럿이 직접 로봇과 연결되어 움직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LCL이라는 인간의 혈액과 비슷한 액체와 플러그 슈트를 통해 싱크로율을 높이고, 파일럿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신경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체에 손상이 가해지면 파일럿도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사도란 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빌런 중 하나입니다.

*AT필드는 파일럿의 능력에 따라 펼칠 수 있는 방어막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에바라는 용어 대신 또봇이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다. 그러나 호흡은 편안한, 이상하다.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잠들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 온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날아간다. , 처음 또봇을 타던 날이다. 처음엔 싱크로율이 맞지 않아서 고생 깨나 했었는데.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 큰 기체와 함께 넘어지곤 했었다. 그 때 느껴졌던 좌절감과, 느껴지던 아버지의 실망스러운 눈빛이 너무나 절망스러움을 안겨주는 탓에 나는 이를 악물고 연습했다. 그리고 드디어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게 되고, AT필드를 전개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웃으셨다. 날아갈 것 같았던 기분.

 처음 사도에게 공격을 당했던 날이 보인다. 공격형 사도의 채찍형 무기가 그대로 Z의 배를 관통했고 나 역시 관통상을 입었을 때와 똑같은 고통을 받았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기억이다. 끝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나서 흩어질 것만 같은 정신을 겨우 차린 후엔 이미 상황이 정리된 후였다. 나와 Z는 힘없이 쓰러져 있었고, 핏빛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곤 어땠지, 암실처럼 어두운 엔트리 플러그에서 LCL이 뿜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 후엔? 어땠더라. 누군가 문을 열어젖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불렀던 것 같았다. 누구였지?

 

.’

세모!’

권세모!’

 

 순식간에 돌아오는 정신. 몸이, 다시 움직였다.

 

 

 

* * *

 



 지독한 고통이 몸을 덮친다. 경고음이 계속해서 귀를 울렸다. 세모야! 세모야! 관제탑에선 계속해서 내 이름을 외쳤다. 아니, 이 목소리가 아니야. 어디가 망가졌지. 팔 한쪽이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 이제까지 겪었던 사도 중 가장 최강의, 거부타입 사도. 무엇이든 다 한 번에 파괴하는 강력한 공격력은 피하지 않았다간 일격에 기체 전체가 없어질 수준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한쪽 팔을 잃고 어디론가 날아간 것 같았다. 동력은? 아직 꽂혀 있나?

 

세모야!”

…ㄴ, .”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귀에 쏟아지는 다급한 목소리들.

 

“X! 장갑판 파열!”

더 이상은 위험해. 파일럿과의 싱크로를 끊어!”

안 됩니다! 강제로 끊었다간 그대로 플러그에 흡수될 겁니다!”

젠장! Z! 지원 바람! 지원 바람!”

응답해! 차하나! X파일럿!”

권세모!”

 

 차하나. 그 다급한 목소리들 중에서도 유난히 꽂히는 그 단어. 차하나. 그래, 차하나였다. 나를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구원해낸 것은 차하나였다. 자신의 손바닥이 뜨거운 열에 익어 다 벗겨지는 것도 모른 채, 차하나는 그렇게 맨손으로 엔트리 플러그의 입구를 열었다. 그리곤 나에게 물어봤었지. “세모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안심해.”

 너는 항상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었다. 비록 타고난 싱크로율이 높진 않았어도, 끊임없이 노력해서 결국 우리들 중 가장 에이스로서 활동하곤 했지. 그에 비해 나는? 나는 그래, 나는 참 못났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에게 느꼈던 감정은 열등감이 아닌 동경, 아니, 동경 그 이상의 것이었다.

 

“Z!!"

 

 무겁게 울리는 머리. 움직여야 하는데, 긴급한 상황인 것 같은데, 다른 누구도 아닌, 차하나가 위험한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달려가야 하는데.

 

권세모!!”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연결된 신경, 암전에서 다시 밝아진 시야. 그리고 그 앞엔,

 

“X!!! 완전히 침묵했습니다!”

안 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사도의 한쪽 촉수가 X의 배에 꽂혀 있었고, 그것을 뽑아내자 피가 솟구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피해, X!!”

아아악!!!”

 

 쿵, , ,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럴 때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앞에 엉망이 되어 쓰러져 있는 너와, 그리고 다시 한 번 네 배와 한쪽 눈에 촉수를 꽂고 있는 사도.

 

권세모!!!!”

 

 팔 한쪽의 고통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Z, 다시 움직입니다!!!!!!”

권세모, 들려? 권세모!”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그 어떤 것도 아닌 오로지 몸이 가는대로만 움직였다. 사도가 AT필드를 펼친다. 엄청난 AT필드다. 평소 같았다면 단번에 나가떨어졌겠지만 지금은 몸이 이끄는 대로, 단검으로 가르자 힘없이 갈라지는 AT필드. 일단은, 일단은 저 촉수부터. 한쪽 팔로 끊어내는 건 무리였다.

 

권세모!!! 동력 연결부터 하

 

 그리고 다시 찾아온 완전한 암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엔트리 플러그. 제일 먼저 확인했어야 할 동력이. 이럴 때, 이럴 때 나가버리다니. 자조가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 어떡하죠? 더미 플러그라도 삽입해서 W를 내보내야 할까요?”

사도가 제 13장갑판까지 뚫었습니다! 앞으로 본부 도달까지 남은 시간 15!”

“Y 심폐 소생술만 끝나면 바로 투입시켜!”

불가능합니다! 아직 파일럿 생사확인조차 불가능합니다!”

“Z는 왜 이럴 때 제일 기본적인 동력확인조차 안한 거야!”

, 잠깐만요! Z, Z가 다시 움직입니다!!!”

 

 그리고 모두는, 현재 상황이 펼쳐져 있는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동력이 다 떨어진 Z가 몸을 일으키는 것. 몸을 일으킨 Z가 천천히 사도에게로 다가갔다.

 

플러그 심도 확인해!”

확인되지 않습니다!”

파일럿 생사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폭주인가? 중얼거린 대위의 말에 모두가 겁에 질린 채 입을 다물었다. 만일 폭주라면, 본부까지 날아갈 확률이 컸다. 파일럿의 생사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또봇의 폭주, 그리고 아직 제거되지 않는 사도. 최악의 상황에 누군가는 십자가를 붙잡았고 누군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모두들 힘없이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을 때 쯤, Z의 날아간 팔이 재생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사실이었다. Z를 향해 날아오는 사도.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두터운 AT필드가 사도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리고 발사 되는 엄청난 충격파. Z의 손에서 나온 건가? 무슨 상황인지 분석해야 할 기술팀도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다.

 

파일럿의 의지와 동화된 건가.”

 

 확실히, 그것은 폭주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분노. Z를 뒤덮고 있는 엄청난 AT필드의 색깔은 분노를 띠고 있었다. 순식간에 역전된 형세. Z는 사도의 위에 올라타 얼굴로 보이는 부분을 마구 내려치고 있었다. 코어를 단번에 부수는 행동이 아닌 것으로 보아 명백히 감정이 담긴 것 같았다. “복수하는 건가?”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겼다. 기술반은 X 상태부터 확인 해.”

 

 덤덤하게 말하는 사령관의 말투는 마치 그것을 예측하고 있는 듯했다. 기술반이 급하게 장비를 챙겨 나가고, 여전히 Z는 사도의 코어를 제외한 온 몸을 뭉개고 있었다.

 

한심하긴. 완전히 자아를 잃었군.”

 

 사령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미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권세모. 제발 무사해야 해.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사도의 코어가 담긴 부분을 잡아 뜯는 Z. 등 뒤에서 단검을 뽑아 코어를 내리친다. 이미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이는 사도의 코어에 단검을 찔러 넣자 조금씩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Z를 감싸고 부풀어 오르는 사도.

 

자폭이다!”

 

 엄청난 폭발음이 울리고 땅이 흔들렸다. 밖에 나간 기술반은? X? Z? 그러나 생각보다 멀쩡한 모니터에 모두는 상황을 파악하기에 바빴다.

 

“AT필드다.”

 

 AT필드로 막을 쳐서 그 안에서 폭발하게 한 Z의 마지막이 너무나 엄숙해서 모두는 고개를 숙였다.

 

“Z, , 여전히 움직입니다!”

 

 그리고 다시 들리는 고개. 그곳엔, Z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젠 저절로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모두는 눈물을 흘리며 얼싸 안았다. Z 파일럿인 권세모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하면서, 그렇게 본부 바로 위까지 뚫린 구멍 사이로 사도의 코어에서 흘러나온 핏빛 액체가 흘러내렸다.

 

 

* * *

 

 

 폐 깊숙이에서 무언가 터지는 것처럼 숨이 터져 나왔다. 괜찮니? 세모야! 끊임없이 들리는 목소리에 뿌옇던 눈앞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보이는 대위님의 얼굴. 그 얼굴을 보고 나는, 피가 터질 것 같은 목을 통해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 하나는요?”

괜찮아. 세모야, 덕분에 괜찮아.”

 

 나는, 잘한 게 맞는 거지, 하나야? 그 순간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이유를 되찾았다. 안도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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