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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흐드러진, 흩날리는, 그리고 우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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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흐드러진, 흩날리는, 그리고 우리.

승 :-) 2016. 3. 22. 20:52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sNNB9










 아, 봄이다.

 

 운동장엔 벚꽃이 흩날리고, 아이들도 나도 전부 살랑이는 봄바람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분명히 밀려오는 바람에는 무언가 약을 탄 게 틀림없었다. 예를 들어 설레임을 한 스푼 넣고, 달콤한 향을 첨가한 뒤,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한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묘약 같은 것. 나도 모르게 교탁 위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었다.

 

선생님~!”

 

 아무 말도 없는 나의 모습에 의아해진 아이들이 몇 번이고 나를 부를 때까지 나는 멍하니 운동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벚꽃. 그래, 벚꽃.

 

선생님 어딜 그렇게 보세요!”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사랑에 빠진 듯한 눈이라며 놀리던 아이들이 급기야 나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며 엉겨 붙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그래.”

 

 흔쾌히, 예전 얘기를 꺼내고 싶었다.

 

 

 

 

[또봇/셈한] 흐드러진, 흩날리는, 그리고 우리.

 

 


 

차하나, 안 추워?”

. 봄은 봄이네.”

 

 그러게. 뒷말을 삼키는 권세모의 삐죽 나오는 입을 보지 못한 채 차하나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짧은 한숨을 내쉰 권세모가 저도 모르게 깜깜해진 하늘을 올려보자, 그 곳엔,

 

. 여기 꽃 피려고 한다.”

 

 그 말에 차하나가 뒤를 돌았다. 권세모가 가리킨 손끝에는 정말 꽃망울을 가득 품은 나무가 당장이라도 꽃을 움틔우려 준비 중이었다. 미묘하게 가로등이 비추는 벚꽃을 보자 봄이란 걸 실감한 권세모의 가슴이 간지러워졌다.

 

그러게.”

 

 그러나 싱거운 차하나의 반응에 권세모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차하나도 아차 싶었는지 급하게 말꼬리를 이어 붙였다.

 

나중에 시험 끝나면 꽃놀이라도 하러 가자.”

 

시험 끝나면 벚꽃도 끝나거든. 꾹꾹 흘러나오는 서운함을 눌러 담은 채 권세모가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야속하게도 차하나는 야간자율학습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게다가 시험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탓에 권세모는 죽을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애인이랑 벚꽃놀이 간다고 자랑하던데. 반 친구들이 후기를 들려줄 때면 권세모는 귀라도 막고 싶었다. 이제는 아예 벚꽃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 같은 차하나에게 원망이라도 들 정도였다. 혹시 벚꽃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나와 놀러가는 게 싫은 건 아닐까? 며칠 내내 고민해 온 생각이 마침내 고삐를 풀고 우리 안을 탈출한 순간, 권세모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뛰쳐나갔다.

 

, 차하나. 넌 내가 좋아?”

 

 그 말에 차하나가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자신을 돌아본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단 하나의 답만을 담고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물론, 권세모는 그 말을 꺼내곤 앗차, 싶어 입을 막았다. 그러나 한 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법.

 

그걸 말이라고 해?”

 

 하여간 표정이라곤 절대 못 숨기는 차하나다. 새초롬하게 쏘아붙인 후 도도도 걸어가는 걸음에 권세모는 죄책감에, 그리고 동시에 피어오르는 서운함에 일부러 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처음으로 맞는 혼자만의 귀갓길이었다.

 

 

 

* * *

 

 

 

 며칠이 지났을까, 둘 사이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권세모가 먼저 다가갔겠지만 아마도 그는 단단히 맘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차하나 역시 먼저 입을 열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아니, 사실은 공부하느라 자신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권세모에게 시험공부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수업 시간, 노트 한 귀퉁이에 차하나 멍청이라고 쓴 권세모가 후다닥 주위를 둘러본 채 그것을 지우개로 지웠다. 사실 이렇다 할 꽃놀이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차하나와 함께 볼 수 있는 꽃이라면 그걸로 족할 텐데. 정말 사소한 소원 하나도 들어줄 생각이 없는 차하나에게 권세모는 그야말로 단단히 삐지고 말았다.

 

, 권세모. 넌 꽃놀이 안 가냐?”

.”

재미없게도 산다. 이번에 G여고 애들이랑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

…….”

저게, 들은 척도 안 하네. , 안 가?”

 

 니네랑 가겠냐? 권세모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야자실로 걸음을 옮겼다. 어제부터 차하나는 아예 권세모와 석식도 함께하지 않았다.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 자신이 친구들과 밥을 먹고 나면 야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얌전히 내리깐 눈에선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입술을 깨문 권세모가 수학 책을 꺼내들었다. 네 시간이나 남았네.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문제들이 가득했다. 풀리지 않는 것이 꼭 저와 차하나의 감정인 것 같아서 권세모는 수학책에 얼굴을 묻었다.

 

 깜빡 잠들었을까, 누군가 자신의 볼을 톡톡 치는 느낌에 권세모는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이라면 혼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는 사람은 분명 차하나였다.

 

잠깐 나와.”

 

 권세모는 그 말에 순순히 밖으로 나갔다. 차하나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른 채 그저 나오라고 했기에 그는 자동적으로 그를 따라갔다. 화장실로 향하는 척 하던 차하나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저를 보며 이쪽으로 오라는 다급한 손짓을 한다. 처음 보는 모습의 차하나였다. 그 모습이 마치,

 

, 얼른 와!!”

 

 그러니까, 튀는, 뭐 그런 모양새 같았달까.

 

 

 

 

* * *

 

 

 

 한참을 살금살금 걷던 차하나가 갑자기 뒤를 돌았다. 차하나의 뒷통수만을 바라보며 걷던 권세모가 갑자기 보이는 그의 얼굴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 네가 그렇게 원하던 거.”

 

 권세모의 얼굴에 물음표가 두둥실 떠오르자, 차하나가 답답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꽃 말이야. !”

 

 그제야 권세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주변은 온통 벚꽃으로 가득했다. 새까만 밤하늘이 무색할 정도로 약한 조명임에도 하얀 꽃잎들이 반짝거렸다. 그 아래 서 있는 차하나 역시 반짝였다. 부루퉁한 얼굴로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지만 권세모는 알고 있다. 이 풍경, 이 상황,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 이제까지 여기 찾았던 거야?”

아니거든, 멍청아.”

 

 그러니까 지금 이걸 보여주려고 시험 직전의 야자시간에 뛰쳐 나온 거고? 권세모가 묻자 차하나의 입술이 점점 부어올랐다. 그리곤,

 

그러니까 다신 그런 말 하지 마.”

 

 물기 어린 목소리에 권세모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차하나가 어떤 포인트에서 화가 났는지.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차갑지 않은, 마냥 따듯함만을 담고 있는 봄바람이 벚꽃 나무를 감싸고, 둘을 감싸고. 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이 뺨을 스쳐 간지러웠다.

 권세모가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차하나에게로 다가갔다. 차하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마침내 성큼, 차하나 앞으로 다가갔을 때 차하나는 눈 가득 눈물을 담고 있었고 권세모는 차하나를 끌어안았다.

 

미안.”

 

 다신 그런 말 안 할게. 권세모는 자신의 어깨에서 위 아래로 움직이는 차하나의 고개를 그저 내내 쓰다듬었다. 그리곤 곧 양 손으로 그 자그마한 머리통을 잡고, 조심스럽게 이마에, 그리고 코에, 마지막으론 부드러운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사실 꽃놀이 보단 이걸 더 하고 싶었어.”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권세모는 그렇게, 야자 종료 종이 울릴 때까지 차하나에게 입을 맞췄다. 고등학교 2학년, 그들의 첫 번째 입맞춤이었다.

 

 

 

* * *

 


 

그게 첫 키스였다고 할까.”

선생님. 진짜. 어쩜.”

샘 여친 진짜 귀여워요!”

 

 여친 아닌데.

 

, 근데 선생님 남고 나오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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