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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피어오르다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피어오르다

승 :-) 2016. 4. 2. 21:47

부드런 턱선을 따라 열리는 입술은 마치 꽃봉우리

그녀의 깊은 눈망울이 알려주는 우리 갈 길은 바로

사랑이라고

*

 

 

[또봇/셈한] 피어오르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돼있어.’ 어제 술자리에서 스쳐지나가듯 말한 선배의 말이 귓가에 울리고,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오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바람에 찬 기운이 실려 오더니 오늘은 공기 자체가 포근한 느낌이었다. 이미 개나리는 만개해 주변은 노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봄기운이 만연했다. 땅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같이 내 마음도 일렁댔다.

 봄은 흔히들 말하는, 생명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그러니까, 봄이 되면 사람은 절로 마음이 들뜨는 법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저기, 대도시청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그러니까, 가던 길을 되돌아 와 뻔히 아는 길을 물은 것은.

 

저쪽으로 쭉 걸어가시면 돼요.”

.”

 

 감사합니다. 상투적인 인사말을 내뱉고 미친 척,

 

감사해서 그러는데 커피 한 잔 사도 괜찮을까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고 나서,

 

좋아요.”

 

 뛸 듯이 기뻤던 대답을 듣고 난 뒤,

 

 

 

 한 달이 지났다.

 

 

 

 

* * *

 

 

 

 이제 바닥엔 목련 잎들이 누렇게 떨어져 가고 있었다. 벚꽃들이 발에 채이는 것이 괜히 꼴 보기 싫어졌다. 벚꽃 아래서 연인들은 사진을 찍었다.

나는 여전히 그의 실루엣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오똑하게 솟은 코, 선하디 선한 눈망울에 담고 있던 세계는 내가 보았던 그 어느 것보다 맑고 깨끗했다. 봄바람이 온통 그를 감싸는 것처럼 다른 곳보다 그의 주변에 있던 공기는 더욱 따듯했다. 그의 깔끔한 콧날이 나를 향하고, 단정한 입술이 목소리를 낼 때 나는 미친 척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수작을 건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작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는 급하다는 듯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임에도 샷을 하나만 넣은 연한 커피를 들고 그대로 갈 길을 가버렸다. 전화번호조차 교환할 시간이 없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길 하나 물어본 걸 대답해준 것 가지고 커피까지 사준다는 사내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만큼 착한 사람이었다.


 목련꽃 같은 사내. 그의 첫인상은 나에게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새하얗고, 깨끗함 그 자체의 이미지. 그러나 그는 나에게서 떨어져 금방이라도 변색될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봄이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이젠 길거리에 더 이상 아지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기운 위에서 나는 더운 한숨을 쉬었다. 우울한 늦봄이었다. 늘어진 봄에 나는 뒤늦게 열병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무심코 건널목에서 고개를 든 순간, 목련꽃 한 송이가 다시 한 번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조금 빠른 발걸음으로 그를 앞질렀다. 역시나, 목련을 닮은 그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 안녕하세요.”

 

 그가 나를 기억했다는 사실에 축 늘어져버린 감정들이 다시 팽팽하게 예민해졌다. 한 번 마주치면 우연이라지만 두 번 마주치면 인연이라는데요. 되도 않는 온갖 핑계가 머릿속에서 팽글팽글 널을 뛰었다. 왈칵 쏟아져 나오려는 말들을 꿀꺽 삼킨 뒤 겨우 튀어나온 한 마디가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시간 있으시면, 영화라도.”

 

 그게 제가 영화 관람권을 받아서. 구차한 변명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졌다. 지금요? 되묻는 그의 입꼬리에 웃음이 가득 묻었다. 어이가 없으시겠죠. . 알고 있습니다. 멍청이 같죠. 자책감이 가슴을 쿵쿵 때릴 때쯤,

 

그래요.”

 

 부드러운 카푸치노 색 머리칼이 그의 이마를 덮고 있었다. 따듯함을 담은 바람이 불어 그의 이마를 간질였다. 그가 머리를 넘기며 햇살처럼 웃었다.

 

가요.”

 

 드디어, 내 마음 속에도 꽃이 피었다.

 

 

 

 

*Kinetic Flow - 4월에서 8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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