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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전력 60분, 생일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전력 60분, 생일

승 :-) 2015. 3. 7. 22:51

[또봇/셈한] 또봇 전력 60생일


*전력 60분에 참여한 글입니다.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의 삶은 불행했다. 애써 못 들은 척, 못 본 척, 모르는 척 하고 지냈지만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 지나간 나의 과거는 내 기억 속에서 마치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나는 애써 그것을 닦아내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온몸을 축 늘어트린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훌쩍 커버린 나. 몸은 커버렸지만 마음은 아니었는지, 이미 커져버린 몸이 버거웠다. 특히나 왼쪽 손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땅으로 툭 떨어질 것만 같은 왼쪽 손.

 매년 생일마다 나는 즐거웠나? 어렸을 때는 생일이 제법 기다려지기도 했던 것 같다. 일단 아버지가 나를 챙겨준다는 것도 좋았고, 다정한 한 마디를 듣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되는 생일 축하에 나는 지루해졌고 급기야 생일이 더 이상 기다려지지도 않게 되었다. 매일 함께하는 아버지와 특별한 하루를 맞는다고 해서 생일이 의미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내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사춘기가 되었고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아버지가 내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늘 아버지였던 존재가 리모 아저씨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엄청난 절망감에 빠졌다. 동시에 웃기게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나는 이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 속에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부유하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몸서리쳤다. 모든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누군가와 연결되어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봤지만 나는 누구와도 연결되어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를 한없이 외롭고 차갑게 만들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구멍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그런 우울한 생각에 나는 혼자 울다 지쳐 잠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열여섯 번째의 생일이 다가왔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려고 했다. 물론 아버지는 생일 케이크니 선물이니 잔뜩 사가지고 돌아오실 테였지만 오히려 그런 행동은 내 감정을 더 우울하게 만들 뿐이었다. 물질적 선물은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누군가와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그래서 달력에도 전혀 표시를 하지 않았고 친구들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생일 당일이 되어서였다. 반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없으니 오늘 하루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내가 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쩐지 서운하고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이기적이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모야!”

 

 그러던 중 누군가 나를 불렀다. 같은 반에 있던 차하나였다. 항상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들을 챙겨주는 모습이 신기해 닮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는 반 친구의 생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간단한 선물과 함께 생일인 친구에게 카드를 써서 주곤 했다. 사실 나는 그게 내심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저런 착하고 맘씨 예쁜 친구에게 챙김 받는 생일은 어떨까? 이제까지 친구들에게 생일에 대해 말하지 않아 전혀 축하받지 못했던 나는 그래서 오늘이 더욱 헛헛했는지도 몰랐다.

 그런 나를 차하나가 불렀다. 잠깐 이리 와 봐!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홀리듯 그를 쫓아갔다. 차하나는 복도 모퉁이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거, 하고 그가 건넨 것은 웃기게도 종이컵에 구멍을 뚫어 실로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였다. 그것을 받아든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나는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냈고 차하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받아들기나 해.”

 

 나는 종이컵을 들고 귀에 대었고, 그것을 확인한 차하나가 교실 모퉁이를 돌았다. 실이 팽팽해진 것이 느껴졌다. 이거, 벽에 닿으면 안 들릴텐데. 나는 벽에 닿아 구부러진 실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저었다. 종이컵에 귀를 대자 종이컵이 아닌 바깥에서 무언가 소리가 났다. 들려? 세모야, 아 아, 들려? 차하나의 목소리였다. 모퉁이 바깥에서 그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빤히 보이는 것 같아 나는 다시 웃음을 참았다.

 

, 들려.”

 

 나는 그렇게 대답했고 그러자 와, 다행이다! 하고 차하나의 목소리가 모퉁이를 돌아 나에게로 왔다. 새하얗게 웃을 차하나를 생각하자 갑자기 복도 끝이 빛나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의 목소리가 그를 닮은 파란 실을 따라 종이컵에 울려 퍼졌다.

 

세모야, 생일 축하해.”

 

 단순히 종이컵에 실로 연결되어 있는, 어릴 적 자주하던 애들 장난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때부터 내 마음 한 구석에 환한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마치 반지하방처럼 여기저기 깨지고 어둡고 축축해 곰팡이가 슬었던 내 마음 한 구석에 차하나라는 존재로 하여금 환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화사한 햇빛은 빠른 속도로 내 마음을 따듯하게 채우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나의 삶은 전혀 다른 의미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차하나를 만나고 나서부터 생일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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