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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공] El dorado 上
*오메가버스 AU입니다. 거부감이 드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가늘게 쭉 뻗은 긴 다리, 좁은 골반, 군살 하나 없을듯한 배를 지나 가슴으로, 그리고 옷 안에 들어있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쇄골, 마지막으로 핥아 올리고 싶은 목을 지나면 몸과는 달리 너무나 정갈한 얼굴이 보인다.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도 특출나게 튀지 않는 그저 모범적이고 정갈한 얼굴. 그리고 눈을 살짝 덮고 있는 카푸치노 색의 머리칼. 당장이라도 날아가 버릴 듯한 가벼운 모양새를 한 그가 복도를 걸었고 그의 발걸음이 하나하나 떨어질 때마다 복도에 붙어있는 눈동자들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눈동자들은 너무나 탐욕스러운 것이라, 그리고 그 의미를 가끔씩 노골적으로 드러내오는 터라 그는 종종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더러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빛들은 끈적하게 그의 몸을 척, 척 하고 훑어 올렸다. 특히 히트 사이클 기간에는 더욱 그랬다. 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잔향이 그의 주변에 남아있을 때는 더욱. 눈빛들은 집요하게 그의 몸을 헤집었고 그것이 못 견디게 불쾌했던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곤 했다.
“차하나.”
적어도 그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리 와.”
눈빛들에게서 욕지거리가 들렸다. 씨발. 권세모. 그러나 결코 그 눈빛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차하나라는 소년의 옆에 바짝 붙어 그의 허리를 잡고 있는 것은 권세모라는 이름을 한 소년이었다. 강한 인상의 눈썹과 대충 손으로 쓸어 올린듯한 머리가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차하나에게 붙어있던 눈빛들이 화르륵 자취를 감췄다. 권세모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인간이 동물과 같아진 이 세계에서 열성은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었다. 권세모를 제외한 모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우성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생식능력이 곧 서열을 결정하는 이 세계에서 권세모는 그렇게 손쉽게 차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단지 학교 내에 있는 차하나와 권세모를 제외한 남자들이 모두 열성 알파였기 때문에.
그 뿐이었다.
차하나 역시 그 생활이 싫지만은 않았다. 애초에 우성 오메가인 자신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모두에게 돌아가면서 ‘따먹히던지’ 혹은 질 좋은 알파에게 ‘붙어먹던지’.
차하나는 후자를 택했다. 일단 모두에게 돌아가면서 따먹히는 것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갑자기 전학 온 우성 알파 권세모에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달라붙은 차하나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특히 권세모는 특이하게도 우성 알파임에도 불구하고 성욕이 많지 않았다. 차하나가 히트 사이클 기간에 약을 먹지 않을 때에만 권세모는 차하나와 관계를 가졌다. 마치 다 죽어가는 차하나를 되살리듯 그렇게, 마치 성스러운 작업이라도 하는 양 관계를 하고 나면 권세모는 차하나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돌아가 버렸고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침대에 혼자 남은 차하나는 묘하게 상하는 자존심에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곤 했었다.
차하나로서는 늘 누군가에게 노려지는 상황에 처하지 않아 나름대로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질척거리는 감정의 누수에 빠지곤 했다. 권세모도 자기가 좋으니까 나랑 자는 거겠지. 자신에게 달려들지 못해 안달인 다른 알파들과는 다른 권세모를 보고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차하나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허기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차하나는 자존심이 강한 소년이었다. ‘씨발, 오메가 주제에 한 번 대주면 되지 더럽게 비싸게 구네.’ 라는 말을 들어도 끝끝내 지켜낸 자존심이었다.
나는 권세모가 아닌 누구와도 잘 수 없는데, 권세모는? 차하나는 또 다시 검은 물 밑으로 빠져드는 기분에 차갑게 식어버린 침대 위를 이불로 덮었다.
* * *
이제껏 제법 잔잔한 학교였다. 뭍 밑은 여러 종류의 쓰레기들이 뒤엉켜 엉망일지라도 수면만은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그 밑에서 수많은 눈들이 기회를 노리며 이를 갈고 있었지만 그랬다. 태풍의 눈.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그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그것이 움직이면 엄청난 파동이 몰려와 모든 것을 깨트릴 이 분위기는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았다.
학교 바깥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와 구름들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조금씩 움직이는 태풍의 눈. 그 주변은 벌써부터 쩍, 쩍 하는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있었다.
“독고오공입니다.”
수많은 바람을 몰고 와 뒤엉켜있던 수면의 바닥을 끌어올린 존재감 치고는 제법 호리호리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다지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 몸에 축 처진 눈썹이 강한 인상을 주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들어왔을 때 모두가 일순 몸을 경직한 것은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
그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돌아가는 중간에는 차하나가 앉아있었다. 이제껏 모든 전학생은 입맛을 다시듯 차하나를 쳐다보았고, 끈적한 눈빛으로 핥아 내리다 그 옆에 있는 권세모의 기에 눌려 눈빛을 거두곤 했다. 차하나는 그것을 보는 것이 싫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차하나는 슬쩍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독고오공은 달랐다. 그는 차하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겨 자리에 앉았다. 큰 키 탓에 책상 안에 들어가고도 한참 나온 다리가 보였다. 차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진하게 느껴지는 그의 성향 때문도 있겠지만, 더욱 흥미가 돋는 것은 그의 행동이었다. 분명히 느꼈을 텐데. 차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이가 한명 더 있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묘하게 긴장된 분위기에 누구 하나 입을 뗄 수 없었고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학교에, 그것도 한 반에 우성 알파가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우성 오메가. 웃기게 된 구도에 열등한 존재들은 섣불리 발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순간 독고오공이 맨 뒤에서 천천히 긴 몸을 일으켰다. 모두는 그 기척을 느꼈으나 누구 하나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상황을 비겁하게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모두는 그가 차하나에게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사자들의 싸움에서 필시 한 사자는 죽는다. 다른 사자 역시 큰 부상을 입는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입맛을 다셨다. 남은 사슴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패배한 짐승들은 송곳니를 훑었다.
그러나 독고오공이 발걸음을 옮겨 도달한 곳은 예상 외로 권세모의 앞이었다.
“야, 너 우성 알파지?”
앳된 목소리가 교실을 갈랐다. 권세모 역시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 응.”
“반갑다. 나도 우성 알파야!”
독고오공이 권세모에게 손을 내밀었고 순간 반에는 다른 의미의 정적이 교실 안을 가득 메웠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개에 모두가 머리에 물음표를 하나씩 띄울 때 쯤 권세모가 그 손을 잡았다.
“뭐가 반갑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도 반갑다.”
그러자 독고오공이 그야말로 해맑게 웃었다. 나, 우성 알파 진짜 못 봤거든. 지지난 학교에서도, 지난 학교에서도. 드디어 찾았어. 보물을 찾았다는 듯한 아이 같은 표정에 권세모는 별 희한한 놈을 다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독고오공은 잘 부탁한다.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그 사이에 입술을 지그시 깨문 것은 차하나였다. 왠지 무시당한 느낌에 차하나는 표정에 드러난 불쾌함을 감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말도 안 되는 정복욕이 고개를 들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차하나는 피식 웃었다. 오메가 주제에 별 생각을 다 하네. 끝없는 자괴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사건이 시작된 것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였다. 권세모가 학교 대표로 한달 간 운동 경기에 나가 학교에 결석하게 되었고, 차하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제서야 차하나는 깨달았다. 권세모가 없을 때의 자신의 위치를. 이제까지 그럭저럭 다닐만 했던 학교는 순식간에 정글이 되었고 자신은 그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래서야 권세모가 전학오기 전 상황과 다를 것이 없었다. 누군가-그 동안 차하나를 노리고 있었으나 권세모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던 알파들-에 의해 자신은 강간당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차하나의 사고가 공포로 가득 차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의 몸은 생존본능에 의해 자연스레 스스로 움직였다. 천천히 그의 눈이 돌아갔고 그 끝에는 또 다른 우성 알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시선들에 몸서리 치며 차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끈적하게 늘어지는 시선들이 차하나의 몸에서 늘어져 바닥까지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옷가지를 헤집고 맨살을 쓰다듬는 듯한 시선에 차하나는 이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고작 교실 반 정도를 혼자 걸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노골적인 눈빛들이 차하나의 입을 막았고 그의 몸을 훑었다. 흡, 차하나는 숨을 참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비틀비틀 교실의 맨 뒤로 걸어온 차하나가 어느 새 독고오공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줘.”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독고오공이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차하나가 속삭이는 말을 듣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뭐라고? 그러자 차하나가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살려 달라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차하나가 그렇게 말했다. 모두에 의해 온몸 구석구석이 헤집어지는 기분, 너는 모르겠지. 시선으로 강간당하는 기분, 너는 평생 모르겠지. 머릿속이 여러 감정으로 복잡했다. 자존심이 땅 끝까지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하나는 지금 독고오공의 옷자락을 붙잡고 고개를 숙여 부탁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독고오공은 앳된 얼굴만큼 생각하는 것도 어린 것 같았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가 되물었다.
“내가 왜?”
차하나는 그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내리 깔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권세모와는 다른 유형의 반응에 당황한 차하나가 그의 옷자락을 잡지도, 놓지도 못하고 있을 때 쯤 독고오공이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내가 살려주면, 너는 뭘 해줄 건데?”
차하나의 눈동자가 순간 흐려졌다.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모멸감에 갈 곳 잃은 눈동자가 방황했다. 그 모습을 본 독고오공이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살며시 내리고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수많은 시선들이 공중에서 부서졌다. 독고오공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혀로 입술을 훑었다.
“뭘 해줄 거냐고.”
씨발. 뭘 해주긴 뭘 해줘. 한 번 대주는 거지 씹새야.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던 차하나는 턱까지 차오른 그 말을 겨우 삼켰다. 도저히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 참고 있던 말이었다. 독고오공은 그런 차하나의 마음도 모르고 집요하게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 마치 모두 앞에서 공언해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유로운 표정이 마치 뱀처럼 넘실거렸다.
“뭘 해줬으면 좋겠는데.”
턱, 턱, 숨이 막히듯 겨우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 마치 고장난 프린터가 종이를 간헐적으로 뽑아내듯 한 말에 독고오공은 너무나 쉽게 대답했다.
“네가 원하는 거.”
생각과는 다른 대답에 차하나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하도 이를 악물어 부푼 입술과 핏대가 선 눈이 보였다. 그 모습에 독고오공이 묘하게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고 차하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순한 얼굴과는 달리 풍기는 분위기가 권세모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신도 모르게 차하나는 발을 뒤로 내딛었고 독고오공은 차하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하이에나들이 살그머니 꼬리를 숨기고 아무 생각도 안했다는 듯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차하나는 이미 너무 많은 힘을 뺀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위태로운 모습에 독고오공이 그의 허리를 받쳐 안았다. 생각 외로 단단한 팔에 차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독고오공의 팔을 붙잡고 자신의 체중을 기댔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차하나의 오메가 향에 독고오공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구나?”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독고오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얼굴 빛이 환해진 독고오공이 새로운 장난감의 작동법을 안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거였구만. 이내 교실 안에 차하나의 흔적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고 이성의 끝에서 본능과 조우한 몇몇 이들이 참지 못하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독고오공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차하나를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야, 이거, 위험한데.”
독고오공이 차하나와 거의 하나가 된 채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야, 움직여 봐. 못 서겠어? 그가 차하나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이미 차하나는 완전히 탈진 상태였다. 다른 누구보다 훨씬 강한 알파를 만난 탓에 예상치 못하게 히트 사이클이 시작된 탓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교실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독고오공이 차하나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가깝게 와닿는 오메가 향에 머리가 어질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메가를 사고팔기도 하는구나. 그제서야 독고오공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교실 안의 모두를 눈빛으로 견제하며 독고오공이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 텅빈 눈을 한, 더 이상 사람의 눈을 하지 않은 인영들이 하나 둘 일어나 책상이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여기에 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독고오공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교실을 나선 뒤 달리듯 학교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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