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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넹둘] 벚꽃, 그리고 눈꽃 본문

레트로봇

[또봇/넹둘] 벚꽃, 그리고 눈꽃

승 :-) 2015. 4. 5. 00:07



[또봇/넹둘]  벚꽃, 그리고 눈꽃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이면 PC에서 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 좋아해요. 내가 잘해줄게요. 나한테 시집와요.”

 

 바야흐로 벚꽃이 봄바람에 살래살래 꼬리를 치던 4월이었다. 자신 앞에서 고백 아닌 고백을 진지한 얼굴로 하고 있는 소년은 지금 갓 중학교 3학년이 된 차 두리. ? 이상한 소리를 낸 네옹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채 두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두리가 짐짓 미간을 모으며 네옹을 쳐다보았다. 내가 형 좋아한다구요. 나랑 사귀자구요!

 

 왐마.

 

 빈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상투스를 급하게 이성이란 이름으로 끈 네옹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얘가 지금 뭐래는 겨? 네옹이 눈을 꿈뻑거리고 있자 답답했는지 두리가 네옹의 손을 덥석 잡았다. , 내가 형 좋아한다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이제는 입이 삐죽 나온 두리의 얼굴에 그제서야 네옹의 얼굴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띠 그리고, ! 정확히 3초 뒤 네옹이 표정관리를 한 뒤 말했다.

 

안 돼.”

 

 그리고 학교에선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네옹이 살짝 엄하게 말하자 두리가 가뜩이나 튀어나온 입술을 더 삐죽 내밀었다. 선생님이나 형아나. 그 모습에 네옹은 다잡았던 마음이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곳은 학교. 그리고 네옹은 이 학교로 실습을 나온 교생이었다. 혹시라도 이 광경을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이렇게 수업 시간에 학생이랑 같이 있는 걸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생각에 네옹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 얼른 교실로 돌아가.”

? 어떻게 나왔는데요!”

누가 이렇게 함부로 수업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오라고 했어! 혼나기 전에 어서 돌아가!”

 

 짐짓 엄하게 말한 네옹이 자기도 모르게 두리의 눈치를 살폈다. 자연스레 두리의 머리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두리의 기분을 말해주는 것은 그의 머리칼이었다. 기분이 좋을 땐 방방 떠 있는 머리칼이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축 처질 땐 덩달아 축 처져있는 신기한 머리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가라앉은 카푸치노 색 두리의 머리카락. 그 모습이 안쓰러워 네옹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지난 6년간의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 * *

 

 

 형아, 형아! 네옹은 그 단어의 어감을 참 좋아했다. 듣기에도 좋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참 가슴 따듯해지는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자신을 잘 따르던 두리에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마음이 갔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발전해 묘한 것으로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된 것을 안 것은 꽤나 예전 일이었다. 두리만 보면 화르륵 빨개지는 얼굴에, 그리고 때론 걷잡을 수 없이 사랑스러운 그 눈동자에 당장이라도 그를 껴안고 사랑을 말하고 싶었지만 네옹에게는 걸리는 것이 딱 두 가지 있었다.

 

 첫째. 일단 네옹과 두리의 나이 차. 그 당시 네옹은 열일곱 살이었고, 두리는 겨우 열 살이었다! 네옹의 사고 회로 속에서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의 연애는 절대 불가능이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일곱 살 차이가 나는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기 친구들만 해도, 여자친구가 겨우 세 살만 어려도 도둑놈소리를 듣는 판에, 일곱 살이라니?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지 빤히 보이는 것만 같아 네옹은 몸서리를 쳤다.

 둘째. 그러나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 나이는 그렇다 치자. 요즘 언론에서 떠드는 커플들의 나이차는 열두 살도 모자라 스물세 살까지 차이가 나기도 하니까. 일곱 살 정도는 무난한 차이다. 결코 드문 일이 아니야. 그렇게 합리화 할 수 있다 쳐도, 더 심각한 문제는 두리와 네옹 모두 남자라는 것이었다. 이건 결코 올바른 게 아니야. 자연스러운 게 아니야. 이제껏 그렇게 배워왔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자신이 그렇게 되다니. 17살의 네옹에게 이 문제는 어마무지하게 혼란스러운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네옹은 결심했다. 이건 나 혼자만의 일로 남겨둬야 해. 네옹은 모두에게 자신의 본명을 철저하게 숨겼듯이 이 마음도 숨기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네옹은 자신의 마음을 꽁꽁 싸매어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다. 장롱을 닫으며 네옹은 한숨을 쉬었다. 그 마음과 작별인사를 하며 네옹은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철저하게 가둬두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고 자라난 마음은 어느덧 장롱보다 훌쩍 커져 문을 비집고 나온 지 오래였다. 방치한 지 오래 되어 이렇게나 커져있었는지 몰랐던 그를 실로 마주한 건 네옹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대학 입학식 날, 가족들에게도 오지 말라고 했는데 끝끝내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두리였다.

 

, 어떻게 알고 왔어? 그것보다 여긴 어떻게 안 거야?”

형아에 관련된 거라면 이 차 두리가 다 알지!”

 

입학식엔 안 오셔도 돼요.’

그냐, 잘됐네. 어차피 서울 멀어서 올라가기 좀 거시기했어야. 니 알아서 잘혀고 밥 잘 먹고 댕겨라.’

 

 부모님도 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던 입학식이었다. 어쩐지 쓸쓸해지려던 입학식이 몸집도 조그만 한 명의 꼬마가 눈앞에 보임으로써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순식간에 3월에 봄 냄새가 어느 때보다도 향기롭게 느껴지고, 따스한 햇살이 너무나 따듯했다. 그 따스함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네옹이 고개를 들었다. 이 쬐깐한 아한테 나가 무슨 추태냐. 애써 웃음지은 네옹이 두리의 어깨에 척 팔을 올리며 말했다.

 

와 줘서 고맙다. 오늘은 이 네옹이 형아가 우리 두리가 먹고 싶은 거 다 쏜다!”

와아!”

 

 와아. 와아. 작은 울림을 가진 그 감탄사가 네옹의 마음속에 잔잔한 진동을 주었다. 그리고 그 때였던 것 같다. 네옹이 가둬두었던 그 마음을 풀어내어 꼭 안아주었던 때가. 이제 네옹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그래. 나는 두리를 좋아한다. 비록 밖으로 내뱉을 수도, 티를 낼 수도 없는 사랑이지만, 이젠 미워하지 말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남자를 좋아하는 김네복도 나 김네복이니까. 그리고 그 3월의 바람은 어느 때보다도 따듯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엄연히 짝사랑도 마음은 아픈 법. 네옹은 대학에 가서도 미팅이나 소개팅 같은 것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잘생긴 외모에 또래 여자들이나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던 네옹이었지만, 그 누구도 네옹의 맘에 들지 않았다. 애교스러운 행동들도 꼭 두리로 치환해야만 귀여워 보였다. 다른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자연스레 두리에 대한 마음도 옅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두리였다면, 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 그렇지 못한 현실에 가슴 한 구석이 짜르르 한 것이었다.

 

 

* * *

 

 

그러니까, 진짜 좋아하는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상투스가 울리는 거라니깐. 네옹은 두리가 했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정말인가? 진심인가? 평소에도 형이 좋다며 팔에 매달려왔던 차 두리가 이젠 시간이 지나 키가 훌쩍 커버려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머리가 좀 컸다고 단호한 어투로 이야기하는 폼이 마냥 귀여웠는데, 그 단호한 어투가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네옹은 믿을 수가 없어서 그저 눈만 끔뻑거렸더랬다.

 일단 저 놈을 교실로 돌려보내긴 했는데, 그 다음엔 어쩐다. 생각할 틈도 없이 수업을 끝나는 시간임을 알리는 종이 쳤고, 복도 끝에서부터 우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생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김네옹 선생님!”

 

 쩌렁쩌렁 울리는 두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눈에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게 이대로 있다간 사고라도 치겠다 싶어 네옹은 재빨리 두리에게 다가갔다.

 

, 야 왜 그래.”

그래서, 형 대답은 뭐에요.”

 

 당근 오케이지. 네옹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 그 말을 겨우겨우 집어삼켰다. 그리고 두리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어른인 척, 선생님인 척.

 

이따 수업 다 끝나고 얘기하자.”

 

 예상외로 두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네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 대답을 듣겠다고 뻐팅겼다간 두리도 네옹도 모두 힘든 일을 겪게 되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나 네옹은 곧 다가올 결정의 시간을 맞이해 엄청난 고민을 해야 했다. 일생동안 이렇게 머리가 빠개질정도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잘 모르겠다. 그렇게 네옹은 자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수업이 끝나자 네옹은 동료 교생들의 눈치를 살피다 인사를 꾸벅한 뒤 교생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교생실 앞에서 네옹을 기다리고 있던 두리가 기다렸단 표정으로 네옹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네옹은 순식간에 다잡았던 마음이 또 다시 스르르 풀릴 것만 같았다.

 

수업도 끝났고, 나 이제 들어갈 수업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대답해줘요!”

 

 학교를 나오자마자 보채는 두리 탓에 네옹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단지 말을 꺼내기 전에 하는 행동이었을 뿐이었는데 두리는 움찔했다. 그리곤 네옹을 조심스레 올려다보았다. 네옹이 형, 화났나? 표정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 네옹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하지만 네옹은 이미 두리에게 할 말을 다 정해놓은 뒤였다. 네옹은 아무렇지 않게 두리에게 말을 꺼냈다.

 

네 마음은 알겠어.”

 

 그러자 두리가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네옹을 반짝거리는 눈망울로 쳐다보았다. 정말요? 정말요? 하는 사운드가 반짝거리는 두리의 눈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그 귀여운 광경에 네옹은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 두리는 네옹의 팔을 붙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럼 우리 이제-”

그 전에.”

 

 네옹이 입을 열었다.

 

너 진심이야?”

 

 네. 두리는 전에 없던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정말이라고.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말하니 네옹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냥 단순히 으로서 좋아하는 거 아냐? 라고 질문해보니 대답은 더 가관이었다.

 

남자로서 좋아하는 건데요.”

 

 허, , , 진짜, 네옹은 생각보다 더 세게, 그리고 단호하게 나오는 꼬마의 기세에 눌려 의미 없는 단어들만 내뱉었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감격스러워 어쩐지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하지만 네옹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차도 너무 많이 나고, 것보다, 나는 군대도 가야 하고

기다릴 수 있어요.”

 

 저 쪼끄만 꼬마가 군대를 기다릴 수 있댄다. 네 동년배한테는 군인 아저씨라고 불릴 판이고, 것보다 나 군대 다녀오면 너 겨우 열여덟 살이거든.

 

그리고, 결정적으로 넌 너무 어려.”

 

 그 말에 두리의 눈망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것을 캐치한 네옹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네옹은 세상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불안감을 느꼈다. 이대로 두리가 자신을 떠날 것 같다는 불안감. 그 눈동자에서, 작고 귀여운 눈동자에서.

 

그럼 형은 내가 싫어요? 어려서?”

 

 이젠 그 눈동자가 흐려졌다. 두리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네옹은 당장이라도 아무 곳이라도 보이는 곳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어졌다. 내가 저런 여리고 귀여운 아가한테 무슨 짓을. 형이 너무 박하게 굴었지, 미안해. 당장이라도 우리, 사귈까? 네옹은 하마터면 이런 말을 멋대로 지껄일 뻔 했다.

 

,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남자라서 싫은 거,에요?”

아니, 아니 그런 것도 아닌데,”

 

 그럼 대체 뭐에요! 두리가 눈에 눈물을 잔뜩 머금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 네옹의 등에서는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 그게, 사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너를 좋아해왔거든? 근데 나는 성인이라 그렇다 치지만, 너는 너무 어리고그리고 지금은 성정체성이 확실하게 정해질 나이도 아니고와 같은 말을 주절주절 내뱉기엔 상대의 멘탈이 너무나 약해진 것 같았다.

 

너 정말 나를 남자로서, 사귀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거 확실하지.”

 

 두리가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덕분에 눈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졌다.

 

그럼, 어차피 난 군대도 다녀와야 하니까, 네가 성인이 되어서도 날 좋아한다면, 그 때 고백해! 그 때까지 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받아줄게.”

 

 네옹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네옹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두리의 그 감정은 분명 순간의 그것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4년이나 남은 그 시간 동안 두리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욱 그랬기 때문에 네옹은 두리에게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좋아해왔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만나는 것보단 차라리 짝사랑으로 남기는 편이 좋다고, 네옹은 그렇게 결정했다.

 

알았어요. , 4년만 기다려요. 내가 딱 스무 살 되는 날 고백할테니까.”

 

 그렇게 두리는 쾅 자신의 집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바야흐로 벚꽃이 길거리에 나풀거리며 돌아다니는 4월이었다.

 

 

* * *

 

 

 어느 때보다 기다려지지 않는 새해였다. 4년 전에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네옹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제 어엿한 교사가 된 네옹이 딱 그 나이 때 아이들을 바라보며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네옹은 교생을 다녀오고 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군대를 다녀왔고, 20개월이 지난 뒤 다시 대도시에 돌아와 보니 더 이상 차 두리는 그 곳에 없더라, 하는 너무나 뻔한 스토리가 네옹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리는 좋아하던 축구를 좀 더 잘 하기 위해 다른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했다. 얼마나 바쁜지, 집에도 오질 않더라. 하며 웃으시는 도운 박사님의 웃음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과연 바빠서 안 오는 걸까요. 그 말은 삼킨 채 네옹은 도운에게 인사를 하고 두리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제대하고 나서 열심히 공부한 시간이 1, 임용 고시에 합격한 네옹이 중학교에 발령하고 나서 1년이 채 안된 시간이었다. 도합 4. 그 시간들 동안 두리는 단 한 번도 네옹의 눈에 비치지 않았다. 서운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같이 힘든 길을 걷지 않게 되었으면, 그걸로 된 거지. 네옹은 고개를 끄덕였다.

 12월의 마지막 날을 끝으로 학교도 겨울방학이라는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은 우르르 학교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텅 빈 학교에 네옹 역시 잔업을 처리한 뒤 가방을 챙겨들고 학교를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코에 닿자 찡해지는 코에 네옹은 코를 훌쩍였다. 올해가 지나가면 약속한 그 날이 다가온다. 그러나 답이 정해져있는 그 시간은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냥, 술이나 사 들고 가서 푹 자버리자. 네옹은 그럴 생각으로 소주 두 병을 샀다. 그리곤 학교 근처 자취방에 들어가 잔뜩 먹고, 잔뜩 취한 뒤 잠들어버렸다. 새해의 카운트다운도 듣지 못하고, 제야의 종소리도 듣지 못한 채 그렇게 네옹의 새해가 지나갔다.

 

 쾅쾅쾅-

 

 누군가가 왔음을 자신의 몸이 부서져라 알리는 문 탓에 네옹은 번쩍 눈을 떴다. 숙취 탓에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 도대체 어떤 문디자슥이 아침 댓바람부터 남의 문을 쳐두드리는 겨! 네옹은 툴툴거리며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곳엔,

 

아 거참 찾아오기도 되게 어려운데 사네. , 네옹이 형, 해피 뉴이어!”

 

 네옹은 믿을 수 없는 눈앞의 광경에 눈을 꿈뻑거렸다. 훌쩍 커버린 두리가 자신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얼어버린 네옹의 모습에 두리가 네옹의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 나 안 보고 싶었어요?”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든 네옹이 대답했다.

 

, , , 두리야.”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일단 들어와. 어색하게 형식적인 인사를 내뱉는 네옹을 보고 두리가 킬킬 웃었다. 아 진짜 어색하네. 그 말에 네옹이 봇물 터지듯 밀린 말을 쏟아냈다.

 

, 것보다 니 어디 있었던 겨, 아니 거야? 나 군대 댕겨, 아니 다녀오니까 너는 축구하러 갔다 그러고! 집에 오지도 않고! 너야말로 내가 보고 싶긴 했던 거야?”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네옹의 투덜거림에 두리가 양손을 들고 진정하란 제스쳐를 취했다. 워워, , 진정 진정! 그 말에 더 골이 난 네옹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어른 될 때까지는 형한테 아무리 고백해도 안 받아 줄 것 같으니까, 내가 피했죠.”

 

 형 얼굴 볼 때마다 고백할 것 같았는데 어떡해. 두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4년 전과 비슷한 느낌으로 네옹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두리를 와락 껴안았다.

 

어어, 아직 내 고백도 안 듣고 이러기에요? 성질도 급하시네.”

 

 네옹은 무엇보다 두리가 자신과의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겨우 자신의 품에서 두리를 떼어놓고 어깨를 붙잡은 채 한참동안 눈을 맞췄다. 축구 탓인지 얼굴이 조금 까맣게 타있었고, 얼굴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몸만 훌쩍 커버린 차 두리. 내가 좋아하는 차 두리, 내가 사랑하는,

 

, 이젠 나랑 사귀어 줄 거에요?”

 

 두리가 빙긋 웃으며 말했고 네옹이 대답 대신 두리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어어, 숨 막혀요! 하면서도 두리는 손을 들어 네옹의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두리가 낄낄거리며 네옹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제 네옹이 형, 나한테 시집오면 되겠다.”

 

 나 축구선수 되면 형 잘 벌어 먹일 수 있어요. 두리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그 말에 네옹이 다시 한 번 두리의 어깨를 붙잡은 채 품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두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시집이라니. 네가 나한테 시집와야지.”

?”

당연한 거 아니야?”

 

 눈을 동그랗게 뜬 두리가 뭐가 잘못되었다는 듯 네옹을 밀어냈다. 아니, 아니잖아! 내가 시집이라니! 내가 당연히 장가가는 거지! 그 말에 이번엔 네옹이 낄낄대며 웃었다. 내가 너한테 장가가는 거지 이 꼬마야.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렸을까, 결국은 둘 다 푸하하, 하고 웃어버렸다. 아무렴 어떠냐, 지금 네가 나와 함께 있는데. 네옹은 아무래도 좋았다.

 

, 눈 온다.”

 

 두리가 자취 방 창문을 가리켰다. 정말이었다. 올해 첫 눈이었다. 4년 전 그 때에는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더니, 이번에는 정말 눈발이 흩날렸다. 묘하게 그 때와 겹치는 상황에 네옹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두리를 세게 껴안았다. 두리도 이제는 제법 듬직해진 팔로 네옹의 등을 감싸왔다. 고마워요, 나도 고마워. 근데 내가 장가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니, 내가 장가가는 게 맞아. 바야흐로 11일의 새해, 그리고 첫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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