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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해시태그 짧은 글 본문

레트로봇

트위터 해시태그 짧은 글

승 :-) 2015. 4. 5. 22:06

해시태그 바탕으로 쓰여진 짧은 글입니다!


#첫번째로_멘션온_캐릭터를_두번째로_멘션온_캐릭터가_죽인다


지오, 두리

 

 온통 폐허가 된 대도시에 두 어린 소년이 마주 서있었다. 얼핏 보아도 몸집이 10살을 갓 넘긴 작은 아이들이라 그 광경은 매우 기괴했다. 당장이라도 어머니가 그들을 품에 안고 도망쳐야 할 것만 같은 난장판이 된 도심 한 가운데에 그들은 아무 표정 없이 서 있었다. 쿠르릉,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 뒤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던 건물 하나가 와르르 무너졌다. 땅이 울리고 엄청난 먼지바람이 그들을 뒤덮었지만 그 조그만 몸집의 어린아이들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옅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년 뒤에는 푸른색의 로봇이 엉망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강렬한 머리색을 가진 소년의 로봇 역시 마찬가지였다. 붉은색의 로봇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있었다. 대도시를 전체적으로 훑어보았을 때, 여러 로봇들이 각지에 흩어져 망가져 있었다. 아마 이 두 갈래로 나뉘어 시작된 싸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악당.”

 

 옅은 머리색을 가진 소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잔뜩 헝클어진 겉모습과는 달리 목소리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죽인 붉은색의 로봇을 다시 엉망으로 만든 것 역시 그 소년이었다. 소년은 그 안에 타고 있는 자전거를 억지로 뜯어내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즉시 소년이 명령을 내렸던 로봇의 움직임이 멈췄고 이내 바닥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먼지를 뒤집어써 이제는 거의 회색이 되어버린 인간형 로봇이 바닥에 처참히 넘어져있었다.


누가?”

 

 강렬한 머리색을 가진 소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애살스럽게 휘어지는 눈꼬리가 그 나이대 아이들의 것처럼 순수했다. 애초에 지구를 지키겠다며 쓸데없이 나대는 편이 멍청한 거 아니야? 표정과는 달리 잔뜩 비꼬아진 말투에 옅은 머리색을 가진 소년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입 다물어. 이를 악문 소년이 그렇게 말했고 다른 소년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악당이라고? 이 세상을 지키겠다는 잘난 사명감 때문에 도시를 이따위로 만든 게 누군데!”

 

 그러자 맞은편에 서 있던 소년이 순식간에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쇠파이프를 쥐었다. 쇠파이프를 쥔 손이 가늘게 떨렸고 그 끝은 제법 날카로웠다. 다른 소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급하게 주위를 살폈다. 몸집이 좀 더 작은 소년이 그 소년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눈빛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는 동안 붉은 머리를 한 소년의 눈동자는 점점 흐려져만 갔다.

 사실 소년은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아까 자전거와 함께 내팽개쳐질 때 오른쪽 다리와 팔을 심하게 다쳤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손가락에 아무 감각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걸 보면 아마 반쯤 잘린 게 틀림없었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피로 웅덩이가 생겨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똑, 똑 하며 방울 방울들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키려고 하기라도 했지. 너는 왜 그랬어?”

 

 옅은 머리색의 소년이 날카로운 쇠파이프를 들고 서서히 다른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왔고 다른 소년은 뒤로 한 발짝을 내딛으려다 어마어마한 통증과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소년은 무서운 눈을 한 채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소년은 알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왜 그랬냐고. 왜 우리를 죽였냐고. 대답해.”

그냥 죽여.”

 

 그냥 죽여. 붉은 머리의 소년이 그렇게 말했다. 도저히 열 살 남짓한 아이의 입에서 나올만한 대사는 아니었지만, 그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오히려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악당은 니네들이잖아. 소년이 그렇게 중얼거렸고 순간,

 

!”

 

 날카로운 쇠파이프의 끝이 정확히 소년의 배를 향했다. 그러나 역시 나이 때문인지, 혹은 살인이라는 일말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한 쇠파이프는 배를 관통하지 못하고 그 상태로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럼 죽어.”

 

 옅은 머리의 소년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말했다. 죽이는 건 넌데, 재수 없게 왜 우는 건데? 그 말은 삼킨 채 붉은 머리의 소년이 입에서 그의 머리칼과 같은 빛의 액체를 토해냈다. 진짜 힘들고 뭣같은 인생이었다. 소년이 미소를 지은 채 차갑게 식어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옅은 머리칼을 지닌 소년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미안해. 얘들아미안해. 다들어디 있어요.”

 

 그 소년은 이미 빛을 잃어가는 차가운 다른 소년의 주검 앞에서, 폐허가 되어버려 이제는 온통 회색빛을 띄는 대도시에서 혼자 남겨진 채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막 밤이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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