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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나전지오] 풀리지 않는 매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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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나전지오] 풀리지 않는 매듭

승 :-) 2015. 4. 19. 17:41

[바클/나전지오] 풀리지 않는 매듭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처럼 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머리색을 가진 소년의 머리를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던 소년이 웃었다. 그리곤 이윽고 다리를 굽히고 쭈그리고 앉은 채 그 소년과 눈을 맞췄다.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소년은 다른 소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성스러운 것을 맞이하는 듯이, 경건하고 의식적으로. 둘 다 열일곱 남짓한 앳된 얼굴이었다.


지오야. 원하는 게 뭐야? 난 다 사줄 수 있어.”

 

 붉은 머리색을 가진 소년의 이름이 지오인 것 같았다. 여전히 소년은 지오를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다른 이가 보았다면 둘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이좋은 연인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 다시 한 번 소년이 지오에게 의견을 물었다. 느긋한 목소리였다. 뒷부분을 살짝 길게 끄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난 전적으로 네 의견을 존중해.’ 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던 소년의 목소리가 주변을 따듯하게 물들였다.


없어?”

 

 고개까지 갸웃하며 지오의 의견을 묻던 소년이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만큼 소년은, 말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무언가를 묻듯 친절하게 기다려주었다. 여전히 잔뜩 접은 다리는 그대로였다. 저릴 법도 했으나 그는 일어설 생각이 도통 없어보였다. 그저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지오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사랑해.”

 

 이쯤 되면 소년의 인내심에 박수를 쳐도 될 지경이었다. 무엇에 화가 난 건지,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입을 열지 않는 지오를 앞에 두고 끝까지 따듯한 얼굴로 응대한 소년이 쳐진 눈꼬리를 더욱 내리며 웃었다. 천사 같은 얼굴이었다. 인자해 보이는 입술 양 끝이 위를 향해 말려 올라갔다. 해사한 소년의 웃음이 햇살처럼 부서졌다.

 창문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크고 넓은 집 안에서 빗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워낙 크고, 방음이 잘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지오만을 위한 집이었다. 지오가 편할 수 있도록, 지오가 잘 쉴 수 있도록 만든 집이었다.

 

비가 오네.”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접었던 몸을 일으켰다. 나가봐야겠다. 소년의 한 마디에 지오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이 허리를 숙여 지오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췄다.

 

알았어, 일찍 들어올게.”

 

 한참을 걸어 소년이 방문을 열고, 다시 한참을 걸어 현관에 도달하고 나서, 그리고 현관문이 열린 뒤 닫히는, 쾅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지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씨발.”

 


 

* * *

 


 

 하나, , , , 다섯이 방 안에만 총 여섯 개였다. 방 모서리마다, 그리고 사각지대마다 놓여있는 CCTV가 지오의 숨통을 죄어오는 것 같았다. 방은 크고 넓었다. 지오네 거실만큼 컸다. 그 안에서 다섯 명이 부대끼며 살던 때가 그리웠다. 가족들을 살린다는 알량한 책임감에 나전의 꼬임에 넘어간 과거의 자신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냐고.

 이 곳에서 편한 것은 오직 몸뚱이 뿐이었다. 삼시 세끼 맛있는 음식과 그리고 알맞은 온도, 언제든 볼 수 있는 TV까지 부족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지오에게 이곳은 천국과도 같았다. 늘 전기 부족에 시달리던, 그리고 나전의 아버지에게 빚 독촉을 당하던 그 시기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모두에게 행복한 나날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자신이 있는 이 곳이 오나전의 집이라는 것이.


네가 나랑 같이 살아주면, 뭐 너네 집 빚 정돈 갚아줄 수 있어.’

 

 그 말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힘들더라도 버티고 버텨서 형들과 돈을 갚는 것을 우선으로 했어야 했다. 매일 느끼던 자괴감과 자책감이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건강했을 텐데. 지금은,

 지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아아아악!!!!!! 방안 가득 지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똑같은 사람이 들어왔다. 그가 들고 있는 것에서 차가운 금속에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좋은 말로 사정하면 절대 해주지 않는 것, 지오는 계속해서 울부짖었고 차가운 금속이 지오의 살갗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1분 뒤 방안을 찢듯 날카롭게 피어오르던 지오의 비명소리가 잦아들었고 그제서야 그는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시간을 고통 없이 보낼 수 있었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고,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던 인간에게 그야말로 팔려가는기분이 얼마나 좆같은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 가족들은 날 그리워하기나 할까, 연락수단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이 곳에서 지낸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저 이 생활만 지속한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지오의 성격에 이 생활을 즐기라면 그의 모토대로 돈만 있으면 행복한 세상을 살 수 있었을 테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상황은 지오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겼다.


 지오로서는 나전이 키스 외의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 이상을 요구하면 지오는 혀를 깨물고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자신은 죽을 수 있을까. 이 사이코같은 오나전은 내가 그렇게 죽는다고 해서 눈하나 깜짝할까. 내 가족들은 온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루하루 대립하는 감정의 갈등 속에서 지오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 모습조차 CCTV에 담겨 그대로 나전에게 송출될 것을 생각하니 더욱 미칠지경이었다.

 이 집안에서 자유는 없었다. ‘네 마음대로 해.’ 나전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이 집안 내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따위는 없었다. 지오가 조금이라도 몸부림치고 반항했다가는 그날 저녁에 나전이 들어와서 어떤 수치를 줄지 몰랐다. 한번은 무턱대로 집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가 그날 저녁에 돌아온 나전에 의해 손과 발이 모두 묶인 채 그에게 온갖 치욕을 당해야만 했다.

 

너 돈 좋아하잖아.’

돈 좋아하는 새끼를 돈 주고 사왔는데 무슨 문제 있어?’

돈에 미친 새끼.’

가족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아?’

네가 자꾸 이러면 네 가족들이 무사할 수 있을까?’

 

 온갖 말로 지오를 협박하고 괴롭히던 나전의 얼굴이 떠올라 그는 몸서리를 쳤다. 이 방에 사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지금 이 모든 행동들도 오나전이 핸드폰만 꺼내들면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생활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다보니 지오는 이제 말도 안 되는 피해망상에 휩싸였다. 분명 오나전 저 새끼, 내 생각도 읽고 있을 거야. CCTV는 내 생각도 그 새끼한테 보낼 거라고. 그래서 지오가 선택한 방법이 하루 종일 잠들기였다.

 

 

 

* * *

 

 

 

 찬 바람과 함께 나전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는데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나전을 감싸고 있던 차가웠던 공기는 희석되어 원래 있던 공기와 위화감 없이 섞여들었다. 현관에서 곧장 지오의 방 앞에 선 나전이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지오는 얌전히 방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나전이 지오에게 다가가 깨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턱을 붙잡고 조심히 돌리자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지오의 얼굴이 보였다. 아기같이 순수한 얼굴이었다. 항상 이런 얼굴로만 날 대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해야 너는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줄까. 나전은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고민했다.

 한참을 지오의 뺨과 머리칼을 쓰다듬던 나전의 기척이 느껴졌는지 흠칫하고 지오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 되었는지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지오가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나전을 바라보았다. 약에 잔뜩 취한 모습이었다. 아직은 약발이 떨어질 때가 아니었지. 나전이 상냥한 얼굴로 지오를 바라보았다.

 

잘 잤어?”

 

 나전의 목소리가 들리자 지오의 눈이 그제야 한 곳으로 모여 나전의 눈동자와 부딪혔다. 그 순간 지오가 앉은 상태에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약에 취해있는 상태에서는 그가 피하는, 증오하는 사람이 누군지 평소보다 솔직하게 나타내주었다.

 

저리 꺼져.”

 

 약에 취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전은 마음 한구석이 아팠다. 내가 너를 이렇게 아껴주는데 너는 뭐가 문제인거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방 안에서 공명했다. 그 목소리가 지오의 귀에 가 닿았고 지오가 귀를 틀어막았다.

 

닥쳐.”

 

 한숨을 폭 쉰 나전이 텅빈 자신의 팔을 바라보곤 다시 지오에게 다가갔고 그가 더욱 발버둥쳤다. 또 묶이고 싶은 모양이지. 돈도 없는 새끼 주제에. 나전이 중얼거리자 그 몸부림이 더욱 심해졌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나전이 주변에 있던 벨을 하나 누르자 아까와 똑같은 사람이 같은 약품을 들고 들어왔다. 몸부림치는 지오의 근육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뾰족한 금속 끝은 자비 없이 그의 살을 꿰뚫었고 이내 그의 격렬한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그런 지오를 품에 안은 채 나전이 중얼거렸다.

 

우리 지오, 착하지. 말만 잘 들으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너무나도 평화로운 저녁이 줄달음쳐 밤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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