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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미하] 누수(漏水) 본문

오오후리

[하루미하] 누수(漏水)

승 :-) 2015. 10. 15. 20:33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8n5xO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으시기를 권장합니다. 



 커피숍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눈다. 간간히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단 한명, 그만은. 짙은 남색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조금은 궁금할 정도로 움직이지 않던 남자의 어깨가 조금씩 움직였다. 설마 우는 건가?

 

 

[하루미하] 누수(漏水)

 

 

 커피숍 문에 달린 종이 딸랑하고 울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한쪽 손에 들린 쇼핑백이 고급인 것을 보니 만나는 이에게 선물로 주려고 하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그를 유심히 보았냐면, 별 이유는 없었다. 잘생겨서였을까. 확실히 그는 시선을 끄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일행이 오면 시키려고 했는지 아직 커피를 시키지 않은 그가 휴대폰을 힐끔 보더니 카운터로 다가왔다. 이크, 하마터면 내내 쳐다보고 있던 것을 들킬 뻔 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가 카드를 내밀다가 멈칫하더니 잠시간 고민한다.

 

, 죄송해요. 일행 것도 시킬까 고민이 돼서.”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어차피 그의 뒤에 손님이 밀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여유 있게 그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오는 일행에게 메뉴를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참동안 열리지 않는 그의 입을 보아하니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이상하네. 혼잣말을 한 그의 날렵한 눈썹 한 쪽이 슬쩍 들어올려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 캬라멜 마끼아또 하나 주세요.”

. 계산은 이 카드로 해드리면 되나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심각해진 표정의 그가 처음 커피숍에 들어온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라 나는 조용히 결제를 도왔다. “영수즈나의 말을 뚝 끊어먹은 그가 찬바람을 일으키며 등을 돌렸다. 미처 전하지 못한 영수증을 나는 주변 쓰레기통에 대충 구겨 던져 넣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캬라멜 마끼아또 주문하신 거 나왔습니다.”

 

 그를 쳐다보며 부르자 그가 일어난다. 역시 그 길쭉한 다리로 내게로 다가온다. 커피를 만드느라 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상대방과 연락이 안 된 모양이었다. 구겨진 눈썹 사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가뜩이나 올라간 눈꼬리가 더욱 더 올라가 이제는 처음의 얼굴을 모두 잃은 그가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다시 자리로 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몇 명의 손님을 더 받았다. 커플 한 쌍과 아저씨 손님 등등이었다. 문을 열 때마다 냉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는 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 것은 이 공간에서 그 하나뿐이었다. 그가 음료를 시켰을 때, 커피를 뽑는 김에 마침 나도 시원한 것이 먹고 싶어져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곧 들이닥친 손님들에, 나는 커피에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커피를 다 만들고 나니 이미 얼음은 거의 녹아 주변이 흥건해져 있었다.

 

 

* * *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벌써 네 번째였다. 분명, 온다고 했는데. 약속에 늦은 적이 없는 렌이었다. 오히려 늦는 쪽은 나였다. 미안해, . 하면 그는 오히려 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얼굴이 발개져 말하는 모습이 귀여워 나는 늦을 때마다 더 심하게 미안해했다. 그러자 렌은 더욱 얼굴이 새빨개진 채 말했다.

 

,배는, 늦어도, ,찮아요!”

 

 사실은 괜찮지 않은 거였을까. 그 때는 렌이 괜찮다면야, 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래서 나는 더욱 렌을 편하게 대했는지도 몰랐다. , 아니지. 아니야. 이런 생각들은 지금의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손톱만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손이 왼손이라는 사실에 급하게 손을 입에서 떼어냈다.

 

 이 정도야. , 내가 지금 이렇게 불안해.

 

 그러니 어서 돌아와.

 

 그러나 렌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미 시켜둔 커피의 얼음은 다 녹고, 우유 거품은 메말라버린 상태였다. 우유 거품을 입에 묻히고 나를 보고 웃던 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늘 라떼류의 커피를 시켜주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렌에게 물어본 적도 없었다. 뭐 먹을래? 라는 말 대신 먼저 가서 시키곤 했지.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요구했던 너의 순응이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는 너의 수화기를 앞에 두고 나는 뜬금없는 자기반성에 빠져들었다. 이제까지의 나의 행동들을 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거겠지. 단 한 번도 나의 연락을 이렇게 오래 받지 않았던 네가,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잠금화면을 풀었다.

 

선배, 저 못 나갈 것 같아요.

 

 평소 조금은 더듬었던 너의 목소리가 아닌 글자 그대로의 딱딱함이 눈에 박혔다. 마치 기계가 읽는 듯 어색해서, 나는 조금의 이질감을 느꼈다.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불안함을 남긴 채 나는 왜? 라고 문자를 써내려 갔다. 그러나, 말꼬리를 뚝 잘라먹듯 들리는 문자음.

 

앞으로도 나갈 일 없을 거예요.

 

 두 줄을 채 넘지 않는 짧은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엄습하는 두려움에 나는 차마 답장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 어째서?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뛰어다녔다. 뭐라 답장하기도 전에 또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그만 만나요. 우리.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9회 말 투 아웃 상황에서 만루 홈런을 맞았어도 이것보다는 훨씬 덜 했을 것이다.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동시에 손발은 차가워졌다. 무슨 상황인지 빠르게 파악되지 않는 머리가 답답해 나는 결국 앞에 놓인 커피를 꿀꺽꿀꺽 넘겼다. 더 이상 차갑지도,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아메리카노.

 

 너도 그랬어? 네 감정도. 이렇게 미지근했어?

 

 눈동자가 본능적으로 휴대폰 액정을 보는 것을 피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아서. 그만 만나자는 말은 무슨 뜻이야? 웃음이 나왔다. 갈 곳 잃은 시선이 황망하게 커피숍 어딘가를 향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려 멋대로 자판을 눌러댔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머릿속에서 내내 뛰어다니던 한 마디가 어느 새 손가락까지도 잠식한 모양인지 제멋대로 액정을 두드렸다.

 

내가 잘못했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지 못한 채, 그저 나는 같은 말만을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내내 지껄였다. 침착해. 기다려야지. 렌의 대답을 기다려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또 손가락은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수화음이 몇 번이나 들렸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목소리.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다시 한 번.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이번엔 덜덜 떨며 액정을 두드리는 손가락.

 

제발 한 번만 목소리 들려줘.

 

 비참함.

 

그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게.

 

 절망감.

 

 그리고 들려오는 전화 벨소리에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몇 번이고 손에서 놓친 뒤에야 겨우 통화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여보세요?

「…….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너도, 나도. 그렇게 나와 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턱 끝으로 차오르는 감정이 턱, 턱하고 숨을 막았다.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뜨거운 무엇인가가 목구멍에 걸쳐져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힘없이 흘러내리는 감정들. 마치 머그잔 겉에 맺힌 물방울들이 흐르듯이 그렇게 내 얼굴에도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흘렀다.

 

.”

 

 침묵.

 

.”

.

 

 잔뜩 갈라졌지만 단호한 너의 목소리가 내 귀에 그대로 총알이 꽂히듯 날아들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안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마디로 너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서.

 

, , 그거.”

「…….

무슨 뜻인지, 물어봐도 될까?”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항상 내 앞에서 답답할 정도로 말을 조심히 했던 네가,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아무리 위로 들어도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 그대로예요.

이제 더 이상 나랑만나지 않,을 거야?”

.

 

 왜? 울컥하고 차오르는 감정에 나는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흐느끼는 나를 두고 너는,

 

이만 끊을게요.

 

 마치 나의 생명줄을 끊듯 너는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너에게로 흐르던 나의 감정을, 나에게로 흐르던 너의 감정 위에 서서 날카로운 칼로 베어버린 네가 그대로 안개처럼 흩어지고 나는 망연자실하게 뿜어져 나오는 감정들을 막지 못한 채 그렇게 주저앉아만 있었다. 도저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막기 힘든 끔찍한 누수.

 

 감정들이 목 끝까지 차올라 나는 그 안에 갇혀버렸다.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인어처럼 나는 그렇게 깊은 감정의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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