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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하] 오오후리 전력 60분, 시간 본문

오오후리

[이즈미하] 오오후리 전력 60분, 시간

승 :-) 2015. 10. 24. 23:29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gGAcb


 

오오후리 전력60분 시계(시간)으로 참여한 글입니다.

 

 역시 이상하다.

 띵한 머리와 푸석한 피부가 말해주고 있었다.

 어제 밤의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이즈미하] Time to love

 

 

 몇 주 전부터 이상한 현상을 겪고 있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피곤해 죽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누워서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등을 세는 것뿐이었는데, 그리고 곧 잠이 들었나 싶으면 생생한 무엇이 눈앞에서 재생되는 것이다. 마치, 현실인 것처럼. 나는 그 공간 안에서 걸어 다닐 수도 있었고,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이 일이 몇 주간 계속되고 난 후, 나는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나는 어떤 공간으로 이동할 수는 있지만 그들과 말은 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건드릴 수도 없었다. 내 손이 닿을라 치면, 그대로 쑤욱 통과해버리곤 했다. 마치 귀신처럼, 나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다. 두 번째, 정말 웃긴 일이지만, 그것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아주 피곤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세면 꼭 그렇게 어떤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를 알아챈 후 나는 몇 번의 실험을 거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 놓았다.

 먼저, 환상은 꿈이 아니다.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루시드 드림’, 자각몽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곳에서 날 수도 없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공간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도 없었다. 이동하려면 보통사람과 같이 걸어야했고, 어떤 초현실적인 행동은 할 수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그 곳의 관찰자였다. 그 상황에 개입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관찰자.

 또한 나는 한 가지 더 의미 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 공간은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요 몇 주 동안 나는 여러 사람의 기억 속을 돌아다니곤 했다. 주로 형이나 어머니, 아버지 등 가까운 가족들의 기억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처음 걸었을 때, 혹은 형이 다쳤을 때 등등의 기억 속에서 나는 관찰자로서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할 때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누군가의 기억 속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 기억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재미있어서, 나는 가끔 푹 쉬어도 되는 주말 전 쯤, 일부러 양을 세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제부터였다.

 

 더 이상 가족의 기억이 재생되지 않았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을 세고 어느 공간에 떨어진 나는 이곳이 어딘지 둘러보았다. 평소 같았다면 내가 자란 동네나, 혹은 부모님이 자란 동네였을 텐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내가 전혀 모르는 곳이 눈앞에 펼쳐져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 번 이 곳에 떨어지면 적어도 다섯 시간 정도는 유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이 곳을 탐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그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누구의 기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열심히 그저 앞만 보고 걷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하는 순간 어떤 꼬마 아이가 내 앞으로 뛰어나왔다. 갈색 머리에, 조금은 북슬북슬한 머리, 한 손에는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미하시?!”

 

 그것은 분명 미하시였다.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지금 미하시의 기억 속으로 들어온 건가?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의 기억에, 그것도 미하시의 기억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앞에서 글러브를 들고 환하게 웃는 미하시를 보고 나는 그 미소에 잠시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미하시가 저렇게 웃을 수도 있구나.

 

 내가 아는 미하시는 늘 아베에게 쭈뼛쭈뼛 말하다가 우메보시를 당하거나, 자기 의견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울상만 짓는 인상이었는데. 캐치볼! 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이상해져버려서, 나도 모르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미하시는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며 신나게 뛰놀고 있었다. 아마 한 대여섯 살 정도로 보였다. 귀엽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나는 입을 막았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여기 저기 폴짝거리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미하시는 귀엽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보통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의 시간은 꿈과는 달리 현실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석양이 질 때 쯤 미하시가 캐치볼을 끝내고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기억 속에서 벗어난 뒤 재밌었다, 라든지, 혹은 슬펐다 등의 단순한 감정이 떠오르기 마련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어렸을 때의 미하시를 보았다는 감정이 조금은 생소한 것으로 다가와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이렇게 남의 기억에 막 들어갈 수 있는 거였나? 그렇게 들어가도 되는 건가? 왜 하필 미하시지? 갑자기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생각에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 * *

 

 

 

 그 뒤로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양을 세지 않았다. 잠이 안 오면 차라리 밤을 새면 샜지, 또 다시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들어가는 것은 어쩐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몇 주 만에 다시 양을 세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미하시, !”

,, 아베, .”

 

 오늘 연습시간에 미하시가 자신 없는 피칭을 하다가 결국은 폭투를 하고 말았다. 사실 미하시가 꿈에 나온 이후로 그 때 보았던 그의 미소가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아 나는 제법 고생을 했다. ‘아름답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표정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햇살이 부서지듯 웃는 미하시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는데. 같은 반이어서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어도, 그 때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너 오늘 왜 이래?”

,미미,미안.”

 

 늘 저런 식이었다. 아베는 소리를 지르고, 미하시는 사과를 하고. 조용히 말하면 미하시는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배터리끼리의 문제인 것 같아 나는 조용히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눈물방울을 매단 미하시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보았을 때, 나는 낯이 익은 유니폼 끝자락을 보았다. 내가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떠나버린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겠지만, 본능적으로 미하시의 폭투가 저 사람과 관련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 유니폼을 뒤쫓았다.

 

미호시다.’

 

 분명 학년 초에 우리와 연습경기를 했던 미호시였다. 중학교시절 미하시가 에이스로 있었던 곳. 미하시에게 분명 여러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미하시가 지금 저런 성격이 된 것도,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표정을 잃어버린 것도 모두 미호시에서 일어난 어떤 일 때문이겠지. 그들이 떠난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미하시와 눈을 마주치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갔어.’ 미하시는 깜짝 놀란 듯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예전의 피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미하시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밤 늦게까지 배팅 연습을 하고 돌아온 상태라 피곤하기도 했고, 낮에 본 미호시의 유니폼이 잊혀지지 않아 나는 다시 양을 세었다. 미하시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지, 그 때의 기억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도 못한 채 나는 그저 그렇게 양을 세었다.


 그리고,

 

 나는 야구 경기장에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엔 이미 8회 말로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경기장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사람이 남았고, 그마저도 야유를 날리고 있었다. 마운드에는,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투수가 보였다.

 

 분명 미하시였다.

 

 몇 달 간을 꾸준히 보아온 저 폼, 그리고 모자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갈색 머리 등을 보았을 때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미하시가 틀림없었다. 나는, 잘 들어 온 건가? 싶을 때 쯤, 거의 눕다시피 한 어떤 관중이 중얼거렸다. “투수 심하다. 저 정도면 교체해야 하는 것 아냐?” 그러자 그 옆에 앉은 다른 사람이 말했다. “쟤네 할아버지가 이사장이잖아. 빽으로 에이스를 하고 있다던데. 비열한 자식.” 분명 미하시에게 하는 말이었다. 울컥하고 차오른 감정에 나도 모르게 그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미호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도 저런 취급을 받고 있었던 건가 싶은 생각에 머릿속에서 톱니바퀴가 하나 맞춰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경기는 엉망으로 끝났고, 팀원들은 에이스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벤치로 돌아갔다. 서로 모여 쿨다운을 하는 와중에도 미하시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미하시는 그렇게 혼자 마운드에서 쓸쓸히 서 있다가 벤치로 돌아갔다. 근육통 심할 텐데. 이번만큼 기억에 개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보니까 하타케는 사인도 안 보내는 것 같더라.”

걔는 차라리 미하시가 팔이라도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다니던데?”

. 그건 심했다. 하긴 더럽게 못하는데 굳이 마운드에 세울 필요는 없지. 우리 학교 망신시키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학생들이 나눈 대화를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겪는 너의 기억이 이렇게 괴로운데, 너는 어떻게 3년을 버텼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손끝이 새하얘질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화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연습경기였는지 학생들은 버스를 타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집에 돌아가는 것 같았다. 재빨리 따라잡은 선수 무리에서 미하시를 찾아보니,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떠난 지 한참 지난 후에, 누군가가 타박타박 발소리를 내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미하시였다. 친구들 사이에 끼지도 못하고, 그렇게 미하시는 혼자 쓸쓸히 쿨다운도 하지 못한 채 어깨를 주무르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 괴로워서 나는 어쩔 줄 모르고 그저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미하시의 기억에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나가고 싶어. 이 기억에서, 당장 빠져나가고 싶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가는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저번 기억과 같은 석양이 질 때 나는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하시는 훌쩍 커 있었고 뒷모습은 같았으나 느껴지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눈을 번쩍 뜬 내 얼굴이 축축했다. 아마도 운 모양이지. 내 방, 내 침대 위라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나는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이 기억이 사실이라면, 미하시는 얼마나 괴로운 3년을 보냈던 걸까. 또 다시 눈물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 * *

 

 


 그 뒤로 미하시의 기억에 들어간 것은 약 한 달 뒤였다. 너무 힘들었던 탓에 다시는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나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일이 있었다. 눈을 감고, 또 다시 양을 센다.

 눈을 뜨자 이번에는 연습이 끝난 그라운드가 펼쳐져 있었다. 역시 부원들은 먼저 다 돌아가고, 미하시 혼자 어설픈 쿨다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어깨 다 망가질 텐데. 또 다시 울컥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미하시는 그렇게 텅 비어버린 그라운드에서 혼자 꿋꿋하게 쿨다운을 마치고 일어섰다. 그리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혼자 쓸쓸히 걷는 미하시의 옆을 따라 걸었다. 늘상 있는 일이었는지 미하시는 가만가만 발걸음을 옮겼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 그 무덤덤한 얼굴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미하시.”

 

 들릴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나는 입을 열었다.

 

너는 누가 뭐래도 니시우라의 에이스야.”

 

 미하시가 한숨을 폭 쉬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

 

 우리 모두가 널 에이스로 만들어줄게. 나는 나를 볼 수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미하시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든 널 갑자원에 데려가줄게. 얼마나 한참을 중얼거렸을까, 미하시가 멈춰 섰다. 혹시 내 이야기가 들린 건가 싶어 깜짝 놀란 나는 입을 막았다. 미하시는 내 쪽을 바라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 던지는 거, 좋아.”

 

 고개를 끄덕한 후, 미하시는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그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멀어져가는 미하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조금씩 내 마음 속에 미하시라는 공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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