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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미하] 전력 60분, '우산' 본문

오오후리

[하루미하] 전력 60분, '우산'

승 :-) 2015. 10. 10. 23:25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MhknY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어주시기를 권장합니다.


[하루미하] 오오후리 전력 60, ‘우산

 

 

*미하시와 하루나가 같은 대학에 갔다는 설정입니다.

 

 

.”

 

 망연자실하게 부실 밖을 쳐다보고 있던 나무색 머리의 소년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그라운드는 온통 젖어 있었다. 짙은 남색의 머리를 한 소년이 옷을 갈아입고 그를 흘깃 쳐다보았다. 대학에 들어온 뒤로 꾸준히 마지막까지 자신의 나머지 운동을 함께 하던 소년이었다. 처음에는 여리여리하고 마른 몸에 일주일이나 달라붙어 하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는 꽤 오랜 시간동안 마지막까지 남아 함께 웨이트를 하곤 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추첨회 화장실에서였다. 큰 소리가 났다고 벌벌 몸을 떨던 소년은 어느 새 토세이를 꺾었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자신도 꺾었다. 그의 공은 어떤 힘도 없는, 그저 정면 승부를 피하는 기교만 있는 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어느 새 자신을 쫓아왔고, 결국은 따라잡아 본인이 앞서 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3년간 꾸준히 자신만의 투구 스타일을 쌓아온 17살의 소년은 자신과 같은 대학에 스카우트되어 들어왔다.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그가 자신과 함께 묵묵히 추가 연습을 견딘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그는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그가 토세이에게, 사키타마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이긴 것은, 그리고 결국 갑자원의 선발투수가 된 것은 단순한 기교 때문이 아닌 그의 꾸준한 연습량 때문이었다고.


, 많이, 오네요.”

 

 갈색머리의 소년이 먼저 입을 떼었다. 당황하긴 한 눈치였다. 평소에는 자신만 보면 어째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피하기만 하다가,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옆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는 픽 웃음 지었다. 저렇게 천진한 얼굴을 하고는, 결국 나도 밟아보지 못한 갑자원 필드를 밟았단 말이지.


. 그러게.”

하루나, ,배는 우산, ,”

있어.”

 

 아. 소년이 아까와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역시 자신은 우산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마운드에서는 자신을 대신해 올라가는 구원투수라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소심한 건 고등학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가끔 엉뚱한 말로 사람을 놀래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주 가끔이었다. 오히려 그런 발언들이 기다려질 정도로 그는 조용히 자신의 역할만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여서.

 

 그래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뭐 해. 안 가냐?”

 

 그의 어깨를 붙잡은 것은, 아마도 그의 옆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 * *

 

 

 

!”

  

 미하시가 숨을 들이마셨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운동장을 도저히 맨몸으로 가로질러 갈 수가 없어서, 비가 좀 그치면 가려고 했던 상황이었다. 혹시 하루나 선배는 있으신가, 하고 물어봤더니 긍정의 대답을 들었다. 다행이다. 혼자 생각한 미하시는 조금 비가 잦아들면 집에 가려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때, 하루나가 자신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크고 조금은 거친 손이 미하시의 아직은 가는 어깨를 다 감쌌다.


비 맞고 가려고?”

 

이미 하루나는 우산을 팡하고 펼쳐 든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본인이 같이  가자고 했다간 아마 하루나 선배도, 자신도 조금씩은 비를 맞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배, 감기, 걸려!’ 미하시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괜찮다고 말하면 싫어할까. 아니,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실까. 미하시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하루나가 미하시의 어깨에 둔 손에 힘을 조금 주면서 앞으로 나아갔을 때, 미하시는 저도 모르게 부실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말았다. “, 저기! 아니에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에서 말들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그래. 비 맞으면 안 되니까 같이 가자고.”

 

 그,, 아니고! 미하시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등에 조금 힘을 주고 버티는 것을 보고 하루나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요것 봐라. 지금 버텨? 하루나의 표정을 본 미하시가 이제는 눈꼬리에 눈물까지 대롱대롱 매달았다.

 

일기예보도 안 봤냐.”

 

 그러고 보니 비몽사몽 아침을 먹으며 어깨 너머로 들려오던 새벽 뉴스에서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이 비는,

 

하루 종일 온댄다.”

 

 그랬다.

 

 그, 그치만. 미하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이 가면 둘 다 비를 맞을 거예요. 미하시는 이 순간 자신의 어깨와 하루나 선배의 어깨가 바짝 닿아 있다는 것이 너무 떨려 도저히 제대로 말을 내뱉을 자신이 없었다.

 이제까지 우상처럼 바라봐 온 사람이었다. 비록 타카야는 최악의 투수라고 말했었지만, 사실 그는 최악의 투수가 아니라 최고의 투수였다. 자기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인정하는 그 태도와, 무엇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깔끔하고 강력한 직구. 자신의 이상한 직구와는 달리 하루나 선배의 직구는 미트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꽂혔다. 그리고 그 소리는 대학리그에서도 끊임없이 들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루나 선배는 에이스야. 미하시는 늘 하루나를 동경했다. 팀의 에이스로, 그리고 자신의 에이스로.

 워낙 강호였던 팀이라 스카우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하시는 선발로 올라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미하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루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나, 혹은 직구의 속도가 떨어졌을 때 대타로 나가는 정도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분명 조금 더 욕심을 냈을 법도, 열등감을 느낄 법도 했겠지만 미하시는 아니었다. 자신이 동경해왔던 그 사람과 함께 필드에 서는 것, 그리고 그의 뒤에서 묵묵히 그를 받쳐주는 것. 그것이 미하시가 기분 좋게 구원 투수로서 마운드에 서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억지로 누르려고 했던 감정들은 불쑥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자신이 이렇게 하루나 선배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선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미하시는 마음 속 깊이 그것이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절대 티를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물론 미하시도 지독한 야구 바보였던지라, 하루나를 꺾고 자신이 에이스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미하시가 하루나와 같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그가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해내는 것을 보고 곧 동경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하루나가 하는 나머지 운동에도 꼬박꼬박 참여했고, 어떻게든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웨이트가 끝나고 하루나가 거는 말 한 마디. ‘수고했다.’ 그 말에 미하시는 괜히 가슴이 찡해지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좀.

 

가자.”

 

 미하시는 로봇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로 움직였다. 하루나 선배, , 어깨, 뜨거워. 그 오롯이 전해져오는 체온에 미하시는 오히려 얼어버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기분 좋은 직구를 던지는 큰 손, 그러고 보니 왼손이었다. 자신의 어깨를 감싼 손. 미하시는 순간 예전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었다. 분명 맨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팔을 거칠게 잡아 올렸던 손도 왼손이었다. 그 때는 어쩐지 조금 차가웠다면, 지금은 너무 따듯해서. 아니, 따듯하다 못해 뜨거워서.

 

감기 걸릴 일 있냐.”

,”

이런 어이없는 일로 감기라도 걸려서 컨디션 관리 못하면 큰일이라고.”

,”

너는 우리 팀의 유일한 구원 투수니까 말이야.”

 

 유일한, 구원 투수.

 

 순식간에 미하시의 얼굴이 빨개지고, 기분 좋은 심장박동 소리가 그의 온몸을 울렸다. 투둑, 투둑, 우산에 조금은 세게 내리치는 빗줄기들과 함께 들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마치 음악소리처럼 들려왔다.

 

, 감사합니다.”

별로.”

 

 무뚝뚝한 말투에 비해 부드러운 목소리가 미하시의 귓가에 울렸다. 좋은 사람. 미하시에게 하루나는 4년 내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 걷는 빗 속. 우산 아래 둘 만의 공간이 밖이 세계와는 전혀 다른 따스함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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