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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미하아베] 고요하게 가라앉은 본문

오오후리

[하루미하아베] 고요하게 가라앉은

승 :-) 2015. 10. 18. 23:05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어주시길 권장합니다.





[하루미하아베] 고요하게 가라앉은

 



 톡, 토독, 그라운드에 한 두 방울씩 내리던 비가 어느새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고,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선수들은 젖어서 차가워진 몸의 온도를 유지하느라 바빴다. 각자 담요를, 따듯한 물이 담긴 페트병을 끌어안고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경기를 이기면 3일 뒤에 결승전으로 가는 티켓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베는 미하시를 흘깃 쳐다보았다. 저 녀석만 잘해준다면.

 스코어 12-11. 7회 말. 난타전이었다. 서로 마음껏 얻어맞았고 두드렸다. 확실히 이건 불공평했다. 팀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베의 턱 근육이 불쑥 튀어나왔다.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감정이 아베의 속을 헤집고 뛰쳐나오려 하고 있었다.


 차라리 비가 계속 내렸으면 좋겠다.

 

 계속.

 

 아예, 경기가 중단될 때까지.

  

 아베는 그렇게 생각하고 깜짝 놀란 나머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잘 해왔고 심지어 간발의 차이이지만 앞서나가고 있었다. 아니, 잘 해왔다고 믿고 싶었다. 누가 자신에게 잘 하고 있다고 말이라도 해준다면. 아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운드에 서 있는 에이스에게 아베는 늘 격려의 말을 건넸다. ! 잘 하고 있어! 스스로에게도, 미하시에게도 하는 북돋움이었지만 사실 자신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포수란 그런 존재. 마운드 위에서 주목받는 에이스와는 달리 혼자 마인드 컨트롤을 해내야 하는 존재. 이제까지 몇 년간 포수생활을 하면서 그것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축축 처지는 기분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

…….”

!”

…….”

미하시!”

히익! ,, ,니 타카야!”

 

 그리고 아베는 직감했다.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눈을 하고 그쪽을 바라보지 말아줘. 그런 표정을 하고 그를 바라보지 말아줘.

 

수분 충전은?”

,!”

 

 비가 내려 어두워진 날씨 덕에 더욱 빛나는 미하시의 눈이 향한 곳은 상대편 벤치였다. , 또다. 곤두박질치는 기분. 미하시는 늘 아베의 심장을 인질처럼 잡고 있었지만 오늘만큼 그것을 쥐고 흔드는 날은 없었다. 마치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 무너지듯 아베의 기분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려 하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자신이 먼저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미하시에게 고백하는 하루나를 보는 것은 마치, 시니어 시절 그가 망친 경기를 홈에서 무력하게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또 다시 재생되는 기억. 고개를 저어도 그날의 필름이 자꾸 아베의 머릿속을 잠식해갔다. 쉬는 시간 동안 상대편의 전력을 분석해야 하는데. 포인트를 정리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이성의 눈을 가렸다. 네가 먼저 말을 걸어 줬으면. 그쪽이 아니라, 나를 쳐다봐줬으면. 얄팍한 자존심.

 

,카야!”

 

 갑작스레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아베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미하시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아베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토키, 선배, 대단해!” 이에 짓눌려진 아베의 입술이 새하얘지는 것도 모른 채 미하시가 환하게 웃었다.

 

타카야.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이네. 렌이랑 전력 분석 해둬.”

 

 순식간에 차이를 벌려주겠어. 주먹을 꽉 쥐고 말하는 감독님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든든했지만 아베는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나를 이끌어줄 사람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목소리를 간신히 구겨 삼켰다. 목이 얼얼하게 아팠다.

 네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하염없이 그 쪽만 바라보고 있는 네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물에 젖은 천이라도 들러붙은 모양인지 꽉 조여진 목에서 도저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베의 생각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가슴 부근에만 머무는 목소리가 도저히,

 

 기어 올라오질 않아서.

 

-! 타카야랑 같이 전력 분석-!”

, ,!”

 

 타지마가 미하시를 불렀다. 목소리를 낼라치면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은 눈물에 아베는 애꿎은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물이 들어가니 정신이 조금 드는 것도 같았다.

 

타카야.”

 

 미하시가 종이와 펜을 챙기는 동안 타지마가 조용히 아베를 불러 세웠다. “정신 차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아베의 가슴에 날아와 깊게 꽂혔다.

 

무슨 기분인진 알겠는데

알았어.”

 

 나도 알아. 아베가 마치 작전을 의논할 때처럼 입을 손으로 가리고 말했다. 저도 모르게 했을 그 행동에 타지마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곤 미하시에게로 가 미하시에게 몸을 부딪쳤다. “얼른 가라고!” 그 덕에 미하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아베에게로 쓰러졌다.

 

!”

, ,,미안합니다!”

 

 평소 같았으면 얼굴이 빨개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호수. 마치 호수 같았다. 그 어떤 돌을 던져도 아무런 미동 없는 깊고 넓은 호수. 아베는 그 호수 안에 깊게 가라앉아 수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미하시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아. 일렁거리는 미하시가 자신에게 뭐라고 말을 하던, 어떤 행동을 하던 닿지 않았다.

 방어기제였다. 애초에 가질 수 없는 대상에게 차라리 멀어지는 것을 택하는 것. 숨이 턱턱 막혀오고 가슴이 수압으로 조여 오는데도 아베는 떠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야! 3번은, ,브 쳤어.”

. 선구안이 있는 것 같더라. 볼이랑 스트라이크가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건 잘 골라내니까 피하자.”

,!”

 

 지금 미하시와 이야기하고 있는 건 누구? 아베는 웃었다. 수면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미하시의 등을 누군가 톡톡 쳤다. 그것은 껍데기 밖에 남지 않은 불쌍한 아베 타카야.’ 미하시는 수면 아래 누군가 있다는 것을 에게 말하지 않은 채 아무런 의심 없이 와 이야기를 나눈다.


경기 재개합니다! 선수들은 준비해주세요!”

 

 조금 잦아든 비에 아베와 미하시는 분석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장비들을 재정비하고 달려 나가는 선수들. 아베의 보호구를 잔뜩 들고 도와주겠다고 나섰던 1년 전의 미하시가 기억 속에서 흐릿하게 스쳐지나가서, 홀로 보호구를 차던 아베의 눈앞이 또 다시 일렁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마운드로 뛰어나간 미하시는 그 누구보다 즐거워보였다. 대진표를 보고 누구보다 좋아하던 미하시였다. ‘,토키 선배,, ,구할 수, 있어!’ 어쩌면 아베의 마음은 그 때부터 산산조각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한쪽은 눈물을 흘리고 한쪽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관중석에서는 니시우라를 호명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정신없이 휩쓸리는 와중 아베는 힘없이 누군가에게 끌려갔다. 그리곤 팀원들에게 둘러싸여 의미 없는 행위를 하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습관이란 건 참 무섭지.

 

 겨우 그 사이에서 빠져나온 아베는 저도 모르게 미하시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잘했다고 칭찬해주려 옮기는 발걸음이 그를 보자마자 얼어붙었다. 온몸이 보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아베는 끝끝내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니, 온몸이 얼어 움직이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을 법 했다.

 아베의 눈동자에 하루나와 미하시가 담겼다. 자신이 그렇게 뚫고 들어가려고 했던 미하시의 배리어 안에 쑤욱 들어가 가장 연약한 곳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 하루나가 미하시의 어깨를 감쌌다. 무력한 아베 타카야가 또 다시 천천히 심연으로 몸을 던져 가라앉는 그 순간 하루나는 아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미하시에게 하는 귓속말. 뭐라고 지껄이는 걸까. 기껏해야 수고했다는 말이겠지. 그래야만 하는데. 또 다시 깊은 호수 안으로 잠겨가는 바람에 아베의 눈앞이 일렁였다.

 아, 도저히 승자와 패자의 관계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둘은 가까웠다. 하루나가 미하시를 끌어안았다. 무사시노의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하루나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진 주제에 작작 하라고!” “일부러 져준 거 아냐?” “애인이 결승에 올라가라고 져준 거지!” “망할 놈!” 힘없이 가라앉는 동안 들려오는 음성들이 마음속에 난 상처를 쓰리게 파고들어 쿡쿡 찔러왔다. 즐거워 보이네. 적어도 너는 즐거워 보여.

 

아 애인이 결승전에 올라갔는데 축하 좀 해주면 어때서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베의 등에 호수의 밑바닥이 쿵하고 부딪혀왔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암전.

 

 고요하게 가라앉아 그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완벽한 혼자만의 공간. 


 그들의 대화에서, 팀원들의 환희에서 등을 돌려 벤치로 돌아가는 아베의 발자국마다 어두운 색의 물이 스며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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