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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입니까?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입니까?

승 :-) 2015. 12. 18. 21:52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어주시길 권장합니다.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입니까? 식탁에 앉아 하릴 없이 인터넷으로 웹 서핑을 하는 도중 식상하기 그지없는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첫 키스라.

 

 첫 키스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셀 수도 없다.

 

 

 

[또봇/셈한]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입니까?

 

 

 

 굳이 처음으로 한 키스를 꼽자면, 아니, 키스라기 보단 입맞춤 정도일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멋도 모르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다가 부딪쳤을 때? 그러니까, 입술과 입술이.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당황스러운 기분에 서로 자신의 입을 막기에 급급했지.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심지어 만화영화에서도 보통 사랑하는사이의 여자와 남자가 입을 맞추는 장면을 내보내곤 했다. 그래. 그러니까, 뽀뽀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걸, 했다. 차하나와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서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지만 눈알은 데굴데굴 굴러가고 미끄럼틀 아래에서 고무찰흙처럼 뭉쳐있던 우리 사이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차하나가 벌떡 일어나 나는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 모래바닥에 꿍하고 머리를 박았다. ! 하고 소리를 질러도 차하나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게 첫 키스의 기억이라고 하면, 기억일까.

 

 그 뒤로 차하나는 나를 피했다. 남자새끼가 거 입술 좀 부딪힌 것 가지고 쪼잔하긴! 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차하나와 같은 반이 되고, 거의 졸업할 때 즈음에 치고 박고 싸우며 눈물을 줄줄 흘린 후에야 깨달았다. 차하나가 그 이유 때문에 나를 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차하나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던 이유를.

 

 

 

* * *

 

 

 

다 너 때문이잖아!”

 

 빼액 소리를 지른 차하나의 눈이 새빨갛다. 시험이 모두 끝나 기껏해야 영화나 보던 수업시간에 차하나가 나를 강당으로 불러내놓고 하는 말이 저거다. 한참을 머리에 물음표만 띄워두던 내가 진지하게 물어본다.

 

뭐가?”

아 진짜 이 둔탱이 같은 놈아!”

 

 차하나가 멱살을 잡을 기세로 다가왔다. 고운 눈썹이 가운데로 모였다. 거의 하나가 될 지경이다. 하나의 눈썹이 하나. 그 와중에도 얼굴이 참 곱다고 생각한 동시에 마음속의 무언가가 움찔했고 차하나가 나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래봤자 키도 나보다 작아서 눈도 못 마주치는 주제에 대단한 표정을 지은 차하나가 이제는 얼굴까지 새빨개진 채 소리치듯 말했다.

 

, , ! 키스 말이야!”

 

 인상을 잔뜩 구기고 멱살을 붙잡은 채 거칠게 입 안을 뛰쳐나온 단어치고는 전혀 예상외의 것이라 나는 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있었다. . 그리고 동시에 마치 오늘 아침에 먹었던 줄줄이 비엔나소시지가 생각났다. 전부 다 이어져 있었는데, 그게, 물론 우리 아빠의 작품이었다. 그러니까, 저놈의 단어로 인해 튀어 오른 기억이 마치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 딸려왔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서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이제까지 나는 차하나에게 한 번도 먼저 연락할 생각을 못했다. 왜였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불편해서.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다곤 해도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어쩐지 서먹해져 매일 함께하던 등교도 그만두고 말았다. 보통은 내가 차하나의 집에 찾아가 같이 가곤 했지만, 어쩐지 나를 그렇게 두고 간 놈한테 먼저 다가가기도 뭐했고, 것보다 내가 안 가니 찾아오지 않는 놈이 괘씸해서. 그 때부터였다. 차하나는 학교에서 봐도 찬바람만 쌩쌩 불면서 지나갈 뿐,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이거 봐라. 그럼 나도 안 해. 어린 마음이었다.

 아 누군 하고 싶어서 한 줄 아나! 실수였던 거지 실수! 차하나가 그 일 때문에 날 그렇게 대하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이에게 변명을 했다. 누군 그렇게 입술에 딱 마주칠 줄 알았나! 나는 아직도 입술 안쪽이 멍들었다, . 무의식중에 매만지려 올린 손에 입술이 닿았고 말캉한 감촉에 나는 그대로 굳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이었다.

 

 아, 미치겠네. 그 뒤로 중학교에 가면서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차하나와 나는 같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차하나는 나를 보면 얼굴을 잔뜩 구기며 지나갔다. 더러워서 아는 척 안한다! 그러면서도 입술에 얹혀 있는 손가락을 나는 황급히 떼었다. 이건 또 왜 지멋대로 올라가 있는 건데? 갈 곳 잃은 손이 잠시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급하게 바지 주머니로 향했다.

 

 아. 얘는 또 왜 이러는 건데.

 

 사춘기 남자에게는 중요한 의무가 있다. 바로, 그것들을 배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익숙한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나잇대 남학생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거다. 독고오공이 아이피를 우회하는 방법을 알았다며 전해준 주소는 너무나 유용했다. 평소라면 클라이막스 부분만 보았겠지만, 어쩐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동한 마음이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 녀 주인공이 서로의 입술을 지저분하게 마주치는 순간,

 

아 씨.”

 

 모니터를 껐다. 창을 끈 것도 아니고, 모니터를 껐다. 여전히 이어폰에선 축축한 것들이 얽히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머릿속에 온갖 욕들이 떠올랐다. 아 진짜 뭐냐고, 더럽게. 저렇게 하면 안 되지. 자고로 키스란하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다른 의미로 피가 쏠린 그 곳을 보고 자괴했다. 아 진짜 뭔데. 왜 이럴 때 생각나는 거냐고.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했던 반응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나 역시 본격적으로 차하나를 멀리했던 것 같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차하나가 하는 말이라는 게,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뽀뽀하는 걸 6년 동안이나 제대로 못 봤잖아!”

 

 라니. 잘 지냈냐? 도 아닌 너 때문에 다른 사람이 뽀뽀하는 걸 못봤다니. 그게 내 탓이냐? 하는 순간 그 마음, 나도 이해한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 나는 당황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그것 때문에 나한테 이런 거야? 되묻자 차하나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도 못 해봤다고!”

 

 어쩌라고. 나도 마찬가지거든? 필터링을 채 거치지 않은 말을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한 번 열린 입은 닫힐 줄 몰랐고 이내 자신의 소명을 다 한 채 강당 안을 잔잔하게 울렸다. 새빨개져 있던 차하나의 얼굴이 이제는 새하얗게 질려갔다.

 

너는 왜 못했는데!!!”

나도 몰라!!!”

 

 솔직히 말하면 상상도 못했다. 이제까지 여자친구는 몇 번이고 사귀었지만, 단 한 번도 입맞춤을 해보지 못했다. 손도 잡고 포옹도 했지만, 입을 맞출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사고의 과정에 차하나는 개입되지 않았을 뿐더러, 차하나라면 괜찮을까? 라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자친구가 입술이 아프다며 얼굴 쪽으로 들이댈 때도 약을 바르라고 사다줬는데. , 그게 이런 무의식에 의한 행동이었을 줄은.

 

 그것을 깨닫고 나서야 드디어 내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둘만 남겨진 강당, 서로 다른 얼굴색을 한 두 남학생. 대화 주제는 첫 뽀뽀.’ ‘너 때문에 못했다.’

 

 차하나가 다시 주먹을 꼭 쥔 채 빽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이 나이 먹고 뽀뽀도 못 해본 게 말이 되냐고!”

아 진짜! 나도 못했다니까!”

넌 여자친구도 있었잖아!”

여자친구랑 안했어. 그것보다 여자친구 있었던 거 어떻게 알았냐?”

, 알 게 뭐야.”

 

 차하나의 입술이 부루퉁 부풀어 올랐다. 그래. 저 입술. 저 놈의 입술. 저것 때문에. 6년을 채우고 나서야 모든 퍼즐이 완성된 기분이 들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 그럼 나랑 한 번 더 해보던가!”

미쳤냐?”

너도 솔직히 존나 신경 쓰였잖아.”

아니라고 진짜!”

신경 안 쓴 놈이 내가 여자친구 있었던 건 어떻게 알았냐?”

 

 다시 꾹 다물린 입술. 일자로 맞물린 입술. 호두처럼 주름이 진 턱. 벌어질 줄 모르는 입술이 귀여워 보였다면 미친 거였을까. 그리고 저 입술이라면 아무 거부감 없이 내 입술을 맞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음 말고.”

 

 하자,

 

아 잠깐만!”

 

 하고 다급하게 붙잡는 손이 어쩐지 눈물 나게 반가워 그대로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뺨을 양 손으로 붙잡고 쪼옥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거다. 역시 답은 하나.

 

 차하나.

 

 

 

* * *

 

 

 

주말에 도서관 가자.”

그냥 우리 집에서 공부하면 안 되냐?”

 

 일주일동안 뽀뽀도 못했는데. 하자 차하나가 그대로 내 이마를 밀어버렸다. 당연히 같은 고등학교에 갈 거라고 확신했는데 뜬금없이 떨어진 학교는 우리의 연애를 아주 제대로 방해하고 있었다. 공부에 매진한다는 차하나를 곁에 두고 나는 정신수련을 거치다 못해 승려가 될 것만 같았다. 아 진짜! 옆에 있는데 왜 뽀뽀를 못하냐고. 마음속에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대학 가면 보자. 나는 이를 갈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데 내가 말릴 권리는 없었다. 단지 얌전히 기다릴 뿐이었다.

 

 야, 너 두고 봐라. 대학만 가면 아주 저 입술에 침이 마를 날이 없게 해주겠어. 라고 말하려는데,

 

,”

조용히 해.”

 

 단번에 막힌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삐죽였다. 참나. 어디 얼마나 공부하나 보자. 하고 쳐다본 공부하는 모습은 역시 귀여웠다. 차하나는 집중할 때 엉망으로 얼굴 근육을 풀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술이 무방비로 툭 튀어 나왔는데, 그게 얼마나 말랑말랑한지. 차하나가 눈치 채지 못하게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아. 정말, 못 참겠다. 하는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죽는다, 진짜.”

 

 아 진짜 거 되게 비싸게 구네. 이마를 한 대 얻어맞은 나는 차하나의 입술을 건드린 손가락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앞으로 일주일동안 버틸 양식. 그걸 본 차하나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시험 끝나면 실컷 해 줄게.”

 

 그리고 단 한 번도 표시되지 않았던 시험기간이 그 날로 달력에 표시되었다.

 


 아, 그래. 첫 키스 얘기를 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부터 첫 키스라고 할 만한 입맞춤을 했을까? , 꼽기가 어려운데.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순간 현관 비밀번호가 삑삑 눌리는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 차하나다. 하여간 양반은 못 돼요. 나는 너 없는 동안 초등학교 3학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성찰하고 있었다 이거야. 현관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앞에 서자 차하나가 나를 보며 웃는다.

 

왔어.”

 

 그래, 여기 왔지. 여기까지 오는데 오래도 걸렸다. 찬바람과 함께 들어온 차하나의 뺨이 잔뜩 얼어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랑 똑같이, 신발도 벗지 못한 차하나의 뺨을 두 손으로 붙잡고. 그 때보단 달라진 높이, 달라진 촉감, 달라진 감정, 달라진 너와 나. 소리 나게 입을 맞추고 얼굴을 떼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차하나가 보인다.

 

갑자기 왜 이래?”

아니, 그냥 반가워서.”

 

 그리고 그대로 뒤돌아 걸어가자 이번엔 재빠르게 신발을 벗은 차하나가 쫓아오며 말한다. “, 뭐야. 끝이야?” 그 말에 나는 멈췄고, 차하나가 내 등에 머리를 박았다. 빙글 돌자 이마에 손을 댄 차하나가 보였다. 그 손을 그대로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고 말캉한 입술을 입에 물었다. , 언제 해도 새롭다니까.

 

 

 당신의 첫 키스는 언제냐고요?

 

 매일 매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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