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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이즈] 균열 본문

오오후리

[하마이즈] 균열

승 :-) 2017. 1. 11. 21:31

 

 

 

 한 때는 네가 나의 모든 것일 때도 있었지.

 

 

 

[하마이즈] - 균열(龜裂)

 

 

 

 잠에서 깨자 느껴지는 공기가 차가워 나도 모르게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집안은 고요했다. 보일러라도 켜야 할 텐데. 차가운 바닥을 걷기 싫어 오들오들 떨고만 있던 와중에 문득 한 기억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 추워. 넌 안 춥냐?’

 

 그 말에 그는 내가 오는 날이면 늘 없는 돈에도 방을 따끈하게 데워놓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랬다. 오늘은 따듯하네? 나는 딱 한 번 그 말을 하곤, 이 집이 추웠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렸다. 그의 집은 늘 따듯했고 혹시라도 추운 날엔 그가 어떻게든 나를 따듯하게 해주려 애썼으니까. 한 겨울 날에도 추웠던 기억은 별로 없었다.

 

 소용없는 기억이었다. 입이 버석하게 말라 움직일 때마다 안쪽 어딘가가 뻣뻣하게 당겼다.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옆에 놓여있던 컵에 물이 들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들어 올리는 순간,

쨍그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에서 미끄러진 컵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어디 다친 덴 없어?’ , 다시 환청이다. 고개를 살짝 저은 나는 난감해했다. 치우려면, 저 차가운 바닥에 발을 대어야 했다.

 

 차가운 바닥은 눈물이 나게 시렸다. 발끝을 대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올라가있어. 내가 치울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그가 나를 위로 올려 보낸다. 예전에, 그러니까 4년 전 쯤 그의 집에 놀러온 내가 지금과 꼭 같이 컵을 깼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생각에 나는 그대로 쭈그리고 앉아 유리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사방팔방으로 퍼진 유리조각들이 햇살을 맞아 반짝였다. 그 파편들은 도저히 컵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그저, 날카로운 유리조각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더 이상 컵이 아니듯이,

 

 치울 도구들을 찾으려 한 걸음 내딛었을 때 따끔, 하고 발바닥에 깊게 무언가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생경한 고통이었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살펴보니 발바닥 앞쪽 쯔음에 반짝거리는 조각이 깊게 박혀 있었다. 어쩌지, 생각하는 사이에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울컥 울컥 쏟아져 나왔다. 빼내려고 꾹 누르자 안에서 조각이 움직이는지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 났다.

 한 발로 겨우 선반에 다가가 핀셋을 꺼냈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 , 핏방울들이 내가 지나온 길들에 자국을 남겼다. 저것들까지 치울 생각에 나는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상처를 헤집고 그 사이로 유리조각을 집었다. 그리고 슬쩍 잡아 빼자, 그 사이에 유리조각에 들러붙은 살덩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너희도 살겠다고, 그 짧은 시간에 저의 것이 아닌 날카로운 이것을 감싸 안았구나.

사람이 오랜 시간 혼자 있게 되면 쓸데없는 곳에서 감성적으로 변하기 마련이었다. 살짝 머리를 내밀던 유리조각을 몇 번이나 놓친 뒤에야 나는 겨우 제법 큰 유리조각을 꺼낼 수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조그만 구멍이 난 발바닥의 상처에서 이제는 피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주위를 살피면서 가져온 휴지로 상처를 꾹 눌렀다.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타인의 손은 몇 번이나 외면한 채, 오롯이 얼얼하게 아픈 자신의 발바닥의 고통에 집중했다. 둘둘 만 휴지를 몇 뭉치나 버리고 나서야 피는 멈추었다. 침대 맡에 놓여 있는 대일밴드와 약을 이럴 때 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약을 바르고 대일밴드까지 꼼꼼하게 붙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다시 유리조각을 치우려 청소도구를 가지러 갔다.

 멀찍이 서서 유리조각들을 쓸어 담고는 휴지통에 버렸다. , 그러고 보니 저 컵, 500일 기념이라고 커플 머그컵으로 샀던 것 같았다. 이젠 그런 것도 별 의미 없나. 처음에는 아깝다고 장식장에 넣어둔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 앞에 놓여있는 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내 발에 박혔던 것도 포함하여- 유리조각들 뿐이었다. 여전히 발바닥은 뜨끔거리며 아팠다. 그제야 다시 목이 말랐다.

 싱크대에서 다른 컵을 찾아다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이제야 겨우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은 아까 유리조각이 깊숙하게 발바닥을 파고들었을 때 잠은 달아나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롱한 정신에서 깨기 싫었던 이유는.

 

 지극히 생리적인 이유 때문에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이 싫어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색다른 일을 찾아다녔던 적이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결코 깨진 유리조각은 스스로 컵이 될 수 없었다.

뜨겁게 녹아 하나로 모여 형태를 이뤘던 것은 그것이 다시 깨졌을 때 결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뜨겁게 열을 가해도 그것은, 그저 타들어갈 뿐이란 것을 안 것은 얼마 안 되었다.

 삑삑, 누군가 도어락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내가 잠들 때 들어왔다가 잠이 깰 때쯤 다시 나갔다. 어디서 식사를 해결하는지, 잠을 해결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서로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휴대폰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없는 듯 지낸 것이 근 한 달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가 깨진 유리조각이 되었을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 다시 컵으로 하나 되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이미 깨어졌던 상태로 만난 우리는 어떻게든 다시 붙어보려 애를 썼지만, 시간이 지나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무너졌다. 더 작은 유리조각으로 부서지고, 충격에 의해 부스러져 없어진 조각에 컵에는 눈에 띄지 않는 구멍들이 생겼다. 겨우 겉모습이나마 형태를 맞춰놓은 유리컵에 물을 부으면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물이 줄줄 새어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빈 컵이 된다.

 어쩌면 그래서 드는 순간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날카로운 조각들은 깊게 살 속으로 파고든다. 다시 꺼내려면, 이미 살고자 그것이 저인지 조각인지도 모른 채 엉겨 붙은 살을 다시 헤집어 차가운 금속으로 그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 뿐인가. 빼고 나면 구멍이 남는다. 살은 스스로 차올라 아문다지만, 마음은?

 

 그는 아무 말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집에 있을 모양이었다. 벌써부터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 침대에서 몸을 섞었던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얄팍하게, 연인이라고 정의 내려졌던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밥은?”

먹었어. 너는?”

나도.”

 

 조금이나마 이어지던 말의 허리가 뚝 끊겼다. 끝을 알 수 없는 구덩이로 영영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땅이 없다. 빛은 보이는데, 잡을 수는 없다.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이 낙하를 멈춰야 하는데,

 

나 다쳤어.”

 

 겨우 내민 구조 요청이,

 

약 발라.”

 

 이미 무너진 세계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전히 얼얼한 발바닥으로 나는 그의 앞에 다가갔다.

 

그만하자.”

 

 그는 아무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엿 같은 생활 그만 하자고.”

“…무슨 말이야?”

예전 기억으로 다시 잘해보자는 말은 하지도 마.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거 지난 일 년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으니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영원한 암전 속에 갇혔고 그렇게 지난날들이 더 작은 파편으로 흩어져 힘없이 날아갔다.

 

 나는 급하게 짐을 챙겼다. 기껏해야 속옷과 겉옷 몇 개였다. 웬만한 것은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내가 분주하게 내 물건들을 캐리어에 집어넣는 것을 오롯이 보면서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짐을 챙기는 데도 그는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나는 멈춰 설까? 어렴풋이 그와 재회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 때 너는 가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바보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의 재회. 눈물이 흐르듯 컵 밖으로 물이 새는 줄도 모르고. 시시각각으로 비어가는 컵을 보면서도 애써 그것을 외면하며 자위했던 나날들.

 

간다.”

 

 너는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여전히 굳게 닫힌 입술은 열릴 줄 몰랐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근육이 갈비뼈를 조였다. 얼굴이 뜨거워졌고 코가 시큰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나오지 못한 문장들이 목구멍을 긁으며 나가겠다고 애를 썼다. 그것을 삼켜 내리느라 목에서는 끅끅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은 내 물건들은 버려.”

 

 내가 깨진 유리조각을 버렸듯이.

 

 그래, 한 때는 네가 나의 모든 것일 때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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