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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베] 보통의 나날들 본문

오오후리

[하루아베] 보통의 나날들

승 :-) 2014. 12. 22. 21:04

[하루아베] 보통의 나날들

 

"야, 모토키. 가수 J 커밍아웃 한 거 들었어?"

"들었지."

 

나는 나만의 성을 쌓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보여줘서는 안 될 그런 성. 나는 그 성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을 보고 싶었다. 그게 잘못된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걸 목표로 이제껏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그 결말을 함께 맞이하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15년 만에 나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루나 모토키.

 

"더러운 호모새끼."

 

그런데 그 성이, 조금씩 무너진다.

 

 

* * *

 

 

선배, 에너지 드링크 마셨어요?’

.’

몸무게는 재봤어요?’

말 많네. 간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분 나쁜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걸핏하면 시비 거는 거냐며 짜증이나 내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항상 어딘가 비뚤어진 사람처럼 구는 게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아니, 사실은 무서웠다. 인상도 더럽고, 덩치도 나보다 컸다. 이제껏 그런 타입의 사람을 겪어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그의 성격이 더러운 건지 몰라도 나랑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토키 선배, 나이스 볼!’

 

그의 공을 받으면 묘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묘하게 빠져듦과 동시에 느껴지는 평소와는 다른 감정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선배의 공을 성공적으로 받아내고, 칭찬을 들은 날 밤 선배가 나온 꿈을 꾸고 몽정을 했을 때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내가? 남자를? 그렇게 약 한 달간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치열하게 고민했다. 내가 과연 그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경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질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드에 굴복했다. 그리고 결국 인정했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내가 내 자신을 부정하는 게 되니까. 내 자신을 거부하면서 살 수는 없어. 그렇게 나는 너무나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를 받아들였다.

 

그 뒤로 선배에게 대하는 태도가 나도 모르게 어색해졌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다른 선배가 너 요즘 왜 모토키를 피하는 거야? 라던지, 너 모토키랑 싸웠어? 라고 물어볼 때 쯤 나는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되면 나는 다시는 나의 성을 완성시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전의 나를 버렸다. 더욱 선배에게 다가갔고,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별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섣부르게 행동했다가 선배에게 들키는 것 보단 훨씬 나았다.

 

사실 전혀 몰랐다. 워낙에 대인관계도 서툴고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인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 있으니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어디서부터 다가가야 할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최대한 모토키 선배에게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불가능했다. 완벽한 모순이었다.

 

 

* * *

 

 

나는 선배와 그의 친구가 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은 선배에게 감독님의 말을 전해주려고 3학년 교실에 들른 거였지만 선배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얼은 채 선배가 그 더러운 호모새끼’를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보기 위해 그들 뒤에 우두커니 서서 대화를 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도 모르게.

 

". 너가 예전에 말했던 그 2학년 포수 새끼도 너 좋아하는 거 아니냐?"

"씨발. 좆같은 소리해라 진짜."

", 너한테 쨍알쨍알 잔소리하고 참견 많이 한다며. 혹시 관심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한 대 쳐맞고 싶지. 진짜 말만 들어도 소름끼치니까 닥쳐라."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2학년에 있는 포수는 나 한 명 뿐이었다. 그러니까, 저들이 대화하고 있는 주제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그 주제가 일상적이었다면 기뻤을텐데. 나는 모든 것이 행복해 보였을텐데. 아니, 그냥, 하다못해… 공을 못 받는다던지 등의 욕이었다면. 그랬다면.

 

속에서 울컥울컥하고 피가 솟아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대화를 듣고 있다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두 사람은 계속해서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낼만한 말들을 쏟아냈고 나는 맨 몸으로 그 말들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넘어설 만큼 큰 소리의 이명이 들리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나는 더 이상 그 칼날 같은 말들을 듣고 있기가 힘들어졌다.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요."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고, 그 시선은 재미있었다. 극도의 혐오감과 경악이 담겨있는 표정. 나는 그 표정에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었다. 마치 전장에 홀로 남아 날아오는 총알을 받아내는 병사처럼. 그리곤 이내 거칠게 멱살을 붙잡혔다. 그는 나를 사람들이 잘 안 오는 연습장으로 끌고 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를 위한 동선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끌려가는 동안 내 온몸은 여기저기 사정없이 부딪혔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생각 외로 덤덤했다. 물론 성이 점점 무너지고는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외면했다. 아니야. 다시 쌓을 수 있어. 자위했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나는 잔뜩 웅크렸다. 비겁하게도. 지금 이 상황에 그도 혼란스럽겠지. 하고 이해해주는 척 했다. 위선자. 나는 비겁한 겁쟁이 위선자다.

 

"다시 말해 봐."

"좋아하는 거 맞아요."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이내 얼굴 전체가 묵직하게 아파왔다. 아마도 맞은 거겠지. 입안이 터졌는지 피 맛이 났다. 비린내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나는 피를 뱉어냈다. 연습장 바닥에 피가 흩어졌다. 나는 입에 피를 머금고는 그를 봤다. 보여요? 이게 내 마음이야. 그러나 그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지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진짜 여기서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분노로 판단이 흐려진 것 같았다. 나는 그 표정을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미친 새끼."

 

더러운 새끼. 너 같은 새끼랑 같이 합숙훈련 갔다는 것도 더러워. 죽여 버리고 싶어. 그는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가 내뱉는 말들이 마치 채찍처럼 휘둘리는 것 같았다. 그 채찍들이 내 살갗에 부딪혀 다른 살점들도 떼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가면 나는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서 있게 되지 않을까, 뼈대만 남은 채 서있는 나의 성처럼.

 

솔직히 말 해. 평소에 나 보면서 무슨 생각 했어? 호모새끼야.”

…….” 

대답해, 씨발.”

싶다고요.”

 

뭐라고? 그가 되물었다. 똑바로 말을 해 새끼야. 하고 그가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가 이윽고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거칠게 뿌리쳤다. 그리고 그의 표정. 그 표정이 나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나왔다. 아픈 것보다도 내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오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온 얼굴이 뜨거워지며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와 눈꼬리를, 뺨을, 턱을 지나 바닥에 툭, 툭 하고 떨어졌다.

 

말 해.”

선배를 좋아하는 게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잘못된, 일인가요?”

 

그는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아직도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봐도 저런 표정은 짓지 못할 텐데. 나는 씁쓸했다. 동시에, 모토키 선배가 오직 나에게만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에 마음 한 구석에서 묘한 기분이 피어올랐고 다시 한 번 머리가 어질했다. 그리고 찾아오는 엄청난 무게의 자괴감. 얼굴에 눈물과 피가 범벅이어서인지 바람이 닿을 때마다 온 얼굴이 차가웠다. 나는 엉망인 얼굴을 선배에게 보여주는 게 싫어 고개를 숙였다. 아니, 사실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 차가운 눈빛을, 그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도저히 맨몸으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입안이 찢어져 입을 벌릴 때 마다 피가 울컥울컥 넘어왔다. 입을 벌릴 때마다 전해지는 묵직한 동통에 머리까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울음이 터져 나와서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로 그저 끊임없이 되뇌었다. 좋아한다구요. 좋아한다구요. 엉엉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제가, 모토키 선배를,

 

좋아한다구요.”

 

그리고 눈물이 가득 차 일렁이던 내 시야가 어두워졌다. 모토키 선배가 내 앞에 와서 선 것 같았다. 맞을까봐 두렵다고 생각한 것은 모토키 선배가 내 말에 반응을 해주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낀 뒤였다. 단지 그 한 발자국, 내게로 다가와 준 것에 대해 나는 기뻐했고 마음이 놓였다. 부질없는 감정이었지만 그랬다.

 

더러운 새끼.”

 

그러나 나의 성은 천천히 허물어진다. 내 시야가 밝아진 반면 내 마음은 한 없이 어두워져만 갔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허무함에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고슴도치처럼 자신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사실은 그 어떤 것도 나를 보호해줄 수는 없었다. 내가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나를 보호하던 가시들은 일제히 나에게로 돌아서 나를 공격했다. 그 공격에 나는 무방비하게 몸을 내맡겼고 그대로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같은 더러운 놈한테는 이런 결말이 어울린다. 이런 비참한 결말. 주변 사물들은 모두 죽었다. 나는 방금 전만 해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이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성을 짓는 것을 포기했다. 애초에 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어느 곳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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