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Big Wind-up!

[이즈미하] 긍정일기 본문

오오후리

[이즈미하] 긍정일기

승 :-) 2014. 12. 16. 19:53

[이즈미하] 긍정일기

 

'하루에 한 번, 긍정일기를 쓰는 거에요. 집에 가다가 하늘이 예뻤다! 그럼 오늘 집에 가는데 하늘이 예뻤다. 보기 좋았다. 라고만 써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세 개, 일주일만 써보고 다음 주에 뵐게요.'

6월 19일 (수) 날씨:맑음

-집에 가는 길에 고양이를 봤는데 고양이가 너무 예쁘게 생겼다. 귀여웠다.
-엄마가 야끼만쥬를 해주었는데 엄청 맛있었다. 야끼만쥬는 맛있다.
-과제를 하는데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바람이 불면 잘 잘수 있어서 좋다.

...

6월 25일 (화) 날씨: 비
-빗소리가 듣기 좋다. 비는 시원하다.
-학교 가는 길에 사카에구치 군을 만났다. 사카에구치 군은 착하다. 좋은 사람.
-엄마랑 집 앞에 키우는 상추가 많이 자랐다. 비 맞고 더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 * *

"미하시 씨!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아, ㄴ,네!!"

미하시는 허겁지겁 가방을 고쳐 매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그런 그를 보고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미하시 렌. 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 미소짓게 만드는 인물이다. 물론 가끔씩 혹자는 답답하다며 혀를 차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현재 미하시가 상담을 받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중학교 때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환자: 미하시 렌  나이: 만 19세  성별: 남
담당의사: 이즈미 코우스케

-1/25일 첫 방문
-중학교-왕따경험, 대인관계 미숙, 의사소통 미숙, 감정표현 미숙, 자존감 낮음
-긍정일기를 써보게 함. 
-비고: 약 처방x

"미하시 씨, 잘 지냈어요?"
"ㅇ,아, 네!"
"오늘 날씨 더운데, 더위 먹거나 하진 않았어요?"
"네! 괜,찮아요!"
"좋아요. 그럼 봅시다. 일주일 동안 긍정일기 써 봤어요?"
"네!! 여,여기"

미하시는 일기장을 내밀었다. 하늘색 바탕에 토끼가 그려져있는 노트. 퍽이나 미하시다워 이즈미가 픽하고 웃자 미하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검사받을 필요는 없어요. 그냥 미하시 씨가 쓰면서 긍정적인 걸 생각하는데 의미가 있는 거니까!"
"아, 네.."
"그럼 긍정일기를 쓰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말해볼까요?"

미하시는 의사의 눈을 1초 이상 쳐다볼 수가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게지는게 정말 이상했다. 의사,선생님, 좋은 사람. 미하시는 항상 생각했다. 그는 늘 웃었고, 늘 친절했고, 늘 미하시를 걱정해주었다. 중학교 때 얘기를 하며 펑펑 울었을 때도 그는 말없이 휴지를 주며 들어주었다. 그리고 했던 말. 다 울었어요? 좀 괜찮아졌어요? 미하시는 그 뒤로 또 '무서운' 상황이 오면 늘 그의 목소리를 생각해냈다. 괜찮아요. 미하시가 그의 목소리에 대답을 하면 어느 새 마음이 진정되곤 했다.

"그럼, 앞으로도 한 달 정도 써볼거니까, 너무 부담은 갖지 말고, 이번 처럼 가볍게 써봐요!"

진료실을 나오면서 미하시는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천사같다고. 미하시는 병원을 나와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노트와 펜을 꺼냈다.

6월 26일 (수) 날씨: 맑음
-의사 선생님은 좋은 사람. 항상 나한테 좋은 말을 해준다.


* * *

7월이 되고 더위가 절정이 될 무렵, 이즈미는 병원 불을 끄고 계단을 내려갔다. 9시. 항상 이즈미가 퇴근하는 시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7시에 진료가 끝나지만, 환자들의 차트를 정리해보고, 최대한 환자들에게 좋을 만한 치료법을 생각해보느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즈미는 환자들에게 약을 잘 처방하지 않기로 유명한 의사였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데 물리적인 약은 더욱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딱 한 번, 이즈미가 약을 처방한 환자가 있었다. 미하시 렌. 그가 병원에 처음 왔을 때는 도대체 왜 왔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얘기를 나누어보고 증상을 들어본 후에 이즈미는 망설임 없이 약을 처방했다. 보기보다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뭐,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니, 약을 끊어도 괜찮겠지!'

이즈미가 계단을 내려가서 병원 옆 주차장으로 갔을 때,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새끼고양이가 우는 줄 알았다. 이즈미는 가만히 멈춰서서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누구세요?"

어디서 많이 본 실루엣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울고 있는.

"미하시 씨!! 여기에서 왜 울고있어요!"

이즈미는 얼른 미하시를 일으켜 세웠다. 미하시는 언제부터 울었는지 다리가 완전히 풀려 일어나지 못했다. 이즈미는 잠시 머리를 짚었다가 미하시 앞에 무릎을 꿇고 등을 돌렸다.

"자, 업혀요."

다시 불이 켜진 병원 안 진료실에서 이즈미와 미하시는 다시 마주앉아 있었다. 물을 떠온 이즈미는 미하시가 과호흡이라도 오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미하시의 울음은 멈출 줄 몰랐다. 한참이 지났을까, 물을 권하자 두 손으로 물을 받아 꼴깍꼴깍 마신 미하시는 그제서야 한숨을 폭하고 쉬었다. 여전히 호흡은 불규칙했다. 그리고 미하시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약, 약 주세요."

이즈미가 대충 들은 바로는 이랬다. 미하시는 적어도 병원을 나선지 2주 동안은 괜찮았다. 하지만 바로 오늘,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왕따 주동자를 만났고, 그 순간 또 미하시의 '무서움'이 고개를 들었다. 미하시의 '무서움'이 그에게 찾아오는 순간, 몸은 경직되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며, 호흡이 가빠져 정상적인 사고는 불가능하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패닉에 빠지게 된다. 미하시가 집에 오는 시간이 7시 쯤 되었다고 했으니, 미하시는 적어도 두 시간동안 병원 앞에서 울었다는게 되었다.
이즈미는 어쩐지 이를 악물게 되었다.

"미하시 씨, 이제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왠일인지 미하시는 아까와 달리 표정이 밝아져서는 대답했다. 이즈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하시가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미하시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 그럼 집에 갈까요?"
"..야,약, 주시면, 안,돼요?"

이즈미는 한숨을 쉬었다.

"아, 아니, 아니에요, 서,선생님, 안, 주셔도 돼요, 괜,찮아요. 죄, 죄송해요."

"...그럼 갈까요?"

미하시와 이즈미는 병원 계단을 내려왔다. 미하시는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재빠르게 자신의 집 반대방향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아,여기, 아니.. 하면서 다시 반대쪽으로 뛰어왔다.

"미하시 씨, 집까지 태워다 줄게요."

극구 거절하는 미하시를 굳이 차에 태우고 이즈미는 입을 열었다.

"미하시 씨, 내가 약 안 줘서 많이 화났어요?"

미하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즈미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찌나 빠르고 세게 저었는지 앞만 보고 있는 이즈미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미하시 씨, 약이라는건 참 무서운거에요. 지금 당장 약을 먹으면 몸이 편해질 수 있지만, 그게 계속되면 미하시 씨는 약에 지는 거에요. 계속 약만 찾게 될 거에요. 특히 미하시 씨 같은 경우엔 더 그래요."
 
미하시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즈미는 미하시의 집 앞에 도착한 뒤 미하시를 불렀다.
 
"미하시 씨, 핸드폰 좀 줘봐요."
 
 
* * *
 
'이건 제 핸드폰 번호에요. 앞으로 오늘 처럼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침착하고 최대한 호흡을 고르게 하면서 이 번호로 전화를 주세요. 혹시라도 안 받으면 오늘 처럼 병원으로 찾아오세요. 하지만 왠만하면 받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죠? 꼭 그래야 해요.'
 
"의사, 선생님, 이름!"
 
미하시는 핸드폰을 쥐고 배실배실 웃음을 지었다. 미하시가 핸드폰에 이름을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몰라 의사 선생님이라고 저장하려고 하자, 의사 선생님은 미하시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즈미, 코,우스,케..."
 
7월 5일 (화) 날씨: 맑음
-의사 선생님 이름은 이즈미 코우스케였다.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다. 오늘은 많이 힘들었는데 의사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의사 선생님은 운전을 잘한다. 내가 집 주소만 가르쳐줬는데 한 번에 우리집에 도착했다.
 
그 날 미하시는 어쩐지 간질간질한 가슴에 잠을 설쳤다.
 
그 다음 날, 미하시는 생각보다 쉽게 떠진 눈에 약간 의아해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예전에는 잠에서 깨면 머리가 무겁고, 어지러웠는데 오늘은 머리가 너무 가벼웠던 것이다. 렌, 일어났니? 엄마의 목소리도 밝아보였다. 응! 대답을 하자 엄마는 어제는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냐고 물어봤다.
 
"어제, 의사 선생님이, 태워다 주셨어!"
 
"어머, 왜? 렌 무슨 일 있었니?"
 
"ㅇ,아니, 의사 선생님 이름, 알았어!"
 
"렌,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아니,야!"
 
미하시는 아침밥을 한입에 우겨넣고 얼른 학교로 달려갔다.
 
"아침밥을 저렇게 많이 먹고, 왠일이래.."
 
'이즈미 코우스케'
미하시는 노트 한 귀퉁이에 이즈미의 이름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이름을 쓰면 쓸 수록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아까 한 시간 동안 이름을 써보니 노트 한 쪽을 꽉 채워서 당황한 미하시는 이번에는 썼다가 지우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 이름은 나 혼자만 알거야! 하고 마음 먹으면서.
어제 일을 생각하면 미하시는 얼굴이 빨게지는 것 같았다. 조근조근 말해주던 의사 선생님, 아니, 이즈미 선생님의 목소리, 물을 건네주던 다정한 손, 능숙하게 운전하던 모습 모두가 미하시에게 무언가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미하시는 어제로 다시 계속계속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밥 먹었을,까..'
미하시는 아까부터 문자를 보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선생님이 밥은 먹었는지, 환자가 많은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엄청엄청 아파도 선생님이 "괜찮아요?"라고 말하면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미하시! 밥 안 먹어?" 
 
보다 못한 사카에구치가 미하시에게 말을 걸었다. 왜 자꾸 멍 때리고 있어? 누구 생각이라도 하는거야? 미하시는 입을 열었다.
 
"아, 그래서 의사 선생님한테 문자를 보낼까 말까 걱정하는거야?"
 
미하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보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점심시간이니까 그렇게 바쁘진 않으실거야."
 
'조금, 이따가 보내야지.'
 
미하시는 사카에구치와 밥을 먹은 뒤 강의실에 들어와 핸드폰을 꺼냈다. '선생님, 밥 드셨어요?' 라고 썼다 지웠다를 한참 했을까, '이크, 12시 50분이다! 전,송'
미하시를 옆에서 지켜보던 사카에구치는 웃음이 나왔다. 이제까지 미하시라는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들떠보이는 모습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어딘가 시무룩해보이고, 자신이 없었던 미하시와는 딴판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미하시! 의사 선생님이 좋아?"
 
미하시는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사카에구치를 쳐다보다가 얼굴이 새빨게지더니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하하! 미하시 얼굴 빨게졌어! 선생님 진짜 좋아하나보다~ 사카에구치가 놀리듯 말하자 미하시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 진짜 좋은 사람인가 보다. 그치?"
 
미하시는 얼굴을 번쩍 들어 사카에구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응!! 의사 선생님, 좋은, 사람이야! 사카에구치는 생각했다. 미하시가, 저렇게 자기 의견을 얘기한 거 거의 처음 아닌가?
 
지잉하고 진동 소리가 들리자 미하시는 깜짝놀라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네. 먹었어요. 미하시 씨도 먹었어요?
미하시는 또 다시 얼굴이 새빨게져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저는 학생식당에서 먹었어요. 선생님은 뭐 드셨어요?
-간호사들이랑 백반 시켜 먹었어요. 오늘은 기분 좀 괜찮아요?
 
사카에구치는 옆에서 미하시가 소리라도 지르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미하시, 지금 수업시간이라는 거 아는걸까.. 옆에서 미하시는 계속 헤실헤실 웃으면서 문자를 계속했다. 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미하시가 180도 달라진 것 같아. 사카에구치는 흐뭇하게 웃었다.
 
 
* * *
 
7월 19일 (화) 날씨: 맑음
-오늘은 이즈미 선생님이 먼저 문자를 보내줬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오늘은 선생님이랑 문자를 많이 했다! 선생님은 답장 느리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좋다.
-선생님이랑 문자를 하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선생님, 좋은 사람.
 
미하시는 어느 새 하루 종일 이즈미와 문자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즈미는 진료가 바빠 답장이 가끔 한 시간 이후에 올 때도 있지만, 어찌됐든 좋았다. 미하시는 이즈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즈미와 문자를 주고 받은 이후로 미하시는 한번도 '무서움'이 찾아오지 않았다. 잠도 푹 잘잤고, 입맛도 잘 돌았다. 이 모든게 이즈미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미하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하시! 오늘이면 종강인데 이번 방학 땐 뭐해?"
 
사카에구치는 미하시를 불러세웠다. 미하시는 우물쭈물하면서 말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안해? 하고 물어보니 미하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카에구치는 미하시에게 준비했던 선물을 주었다.
 
"미하시! 우리 이모가 이번에 온천을 하시게 됐거든! 거기 놀러갈래?"
 
미하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카에구치를 쳐다봤다. 온,천? 물, 따듯해! 하자 사카에구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선생님한테 같이 가보자고 말해보는 건 어때?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병원 진료 안 하잖아! 내가 이모한테 말씀드릴게."
 
그리고 곧 사카에구치는 머리가 아찔해 주저앉은 미하시를 일으켜 세웠다. 미하시!! 얼굴이 새빨게!!!! 미하시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사카에구치는 괜찮은거야? 하면서도 어쩐지 웃음이 나와 쿡쿡 웃었다. 와, 사람을 저렇게 좋아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럼 미하시! 오늘 저녁에 의사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고 연락 줘!"
 
미하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전, 전화...
 
뻐꾸기가 일곱 번 울자 미하시는 그 뒤로부터 5분을 더 기다린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미하시 씨!!!! 무슨 일 있어요?
"선, 생님! 아, 아, 아니에요!"
-깜짝 놀랐잖아요. 정말 괜찮아요? 무슨 일 있어요?
 
미하시는 우물쭈물거렸다. 선생님이 괜찮다고 할까, 거절하면 어쩌지, 너무 부담스러울까, 수백가지의 생각은 이미 집에 온 뒤 3시간 동안 했다. 그리고는 '미하시, 선생님이 괜찮으시대?' 하는 사카에구치의 문자를 받고 전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서,서,선생님, 온,온천은, 물, 따듯해요."
-응. 따듯해요.
"온천, 좋아하세요?"
-응! 좋아해요.
"저, 저는, 한, 한번,도 안 가봤어요."
 
이즈미는 대뜸 전화해서 온천을 좋아하냐는 미하시의 물음에 당황했다. 하지만 곧,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온천에 가고 싶은건가.
 
-온천에 가고 싶어요?
 
미하시는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네. 가고 싶어요. 선생님이랑. 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새빨게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머리가 어지러울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미하시 씨, 온천에 갈까요?
 
이즈미는 수화기 저편에서 숨소리만 들리는 걸 가만히 듣고있었다. 내가 너무 돌직구로 말했나. 혹시 기분이 안좋았나, 하면서도 이즈미는 미하시의 숨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직은 규칙적이다. 다행이다.
 
-저는 이번주 주말이 괜찮은데, 같이 갈까요?
 
미하시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숨만 쉬고 있었다. 그리곤 곧, 모기만한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미하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뒤 미하시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먼저 온천에 가자고 했다! 미하시는 어떻게 해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찬 물을 두 컵이나 먹고 나서야 겨우 사카에구치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사카에구치 군, 이번 주말에 가도 될까?
-온천 말이야? 이모에게 말해 둘게. 의사 선생님이 괜찮으시대?
-응! 괜찮으시대!! 고마워, 사카에구치 군.
-그래! 그럼 선생님이랑 잘 놀다 와 미하시!
-응, 고마워.
 
 
7월 20일 (수) 날씨: 짱맑음
-오늘은 사카에구치 군이 선생님이랑 온천에 가라고 말해줬다! 사카에구치 군, 좋은 사람!
-선생님이 같이 가자고 말해줬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이랑 온천에 간다!
-선생님이 너무 좋다. 목소리만 들어도 떨린다.
 
* * *
 
미하시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가방에 옷을 챙기고, (사실 넣을 것은 많이 없었지만) 무엇을 더 넣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시계를 보고는 밖으로 튀어나갔다.
 
"엄마, 다녀올게요!!!!!"
 
미하시의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쩐지 요즘 미하시 상태가 너무 좋단말이지.. 하면서도 친구와 온천에 놀러간다는 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하시가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다니! 미하시의 어머니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선,생님!"
 
이즈미는 미하시의 집 앞에 차를 대고 있었다. 미하시가 집에서 나오는 걸 보고 차에서 내린 이즈미는 가볍게 인사를 했다. 미하시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잔뜩 기대한 듯한 눈빛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미하시는 차를 탄지 5분 만에 잠들어버렸다.
 
'분명히 꼿꼿하게 앉아있었는데....'
이즈미는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차를 타고 꼿꼿히 굳어있던 미하시는 초롱초롱한 눈빛과는 다르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다가 5분만에 잠들어버렸다. 왠지 어제 밤에 잠을 못 이룬 것 같았다.
이즈미는 빨간 불에 차를 세운 뒤 미하시를 바라보았다. 땀까지 흘리면서 자는 미하시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머리카락이 에어컨 바람에 흔들리면서 눈을 자꾸 건드리기에 머리를 넘겨주었다. 마치 아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즈미는 어딘가 간지러운 느낌에 퍼뜩 시선을 돌렸다.
 
"미하시 씨, 도착했어요."
 
이즈미는 미하시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미하시는 으응, 하기만 할 뿐 깨어나지 않았다. 이즈미는 당황하지 않고 미하시의 귀에 대고 조금 큰 소리로 미하시를 불렀다.
 
"미하시 씨!"
 
"으앙으으이익!!!"
 
미하시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이즈미와 정통으로 박치기를 한 미하시는 깜짝 놀라 이마를 문지르며 두리번거렸다. 미하시의 눈 앞에서 이즈미가 아야야.. 하면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서, 선생님!!"
 
이즈미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미하시를 바라보았다. 미하시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즈미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이즈미는 풉, 하고 바람빠진 소리를 냈다. 미하시가 너무나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있었기 때문이다. 어딘지 귀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해서 이즈미는 소리내서 웃었다.
 
"푸하하!!!"
 
미하시도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었다.
두 사람의 이마엔 똑같은 부분에 빨간 자국이 나 있었다.
 
"미하시 씨! 여기에요!"
 
미하시와 이즈미는 온천에 들어가서 몸을 풀었다. 미하시는 기분 좋다아.. 하면서 웃었다. 이즈미도 이제까지 학회에, 연구에 쉴 새 없이 혹사시켰던 몸이 풀어지는 기분에 눈을 감았다.
 
"선,생님, 여기서, 잠들면 안 돼요"
 
눈을 뜨자 미하시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걸로는 안 죽어요. 하면서 이즈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여전히 느껴지는 시선에 다시 눈을 떠보니 미하시는 자기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 잘, 생겼다아."
 
잠시 침묵.
 
미하시는 빨개진 얼굴로 허우적 거리며 탕을 나갔고 이즈미 역시 얼굴이 빨개진 채로 머리 끝까지 탕 속에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온 미하시는 걱정스러웠다. 속으로 해야 할 말이 그냥 나오다니! 나는 바보가 틀림 없어! 하면서 머리를 꽁꽁 쥐어박았다. 선생님이 분명히 싫어할 거야. 그런 말을 왜 했을까. 속으로만 생각할 걸! 나는 바보야. 멍청이야. 나 같은건 역시 멍청해.
미하시는 이내 무릎을 끌어안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똑똑-
누군가 미하시의 방 문을 두드렸다. 미하시는 훌쩍거리면서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이즈미였다.
 
"미하시 씨! 왜 울고 있어요!"
 
미하시는 어째 더 눈물이 나왔다. 헌,행임, 돌,아가헤여. 죄,죄송해여, 이즈미는 당황스러웠다. 분명 아까 너무나도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하긴 했지만 울 정도로 매정한 반응을 했던가? 
 
"어, 일단 나, 들어가게 해줄래요?"
 
미하시는 훌쩍훌쩍 울면서 방 한켠에 있던 다과 세트와 차를 내왔다. 이즈미는 그 모습이 귀여워 피식피식 웃었다. 미하시는 재빠르게 차를 세팅한 뒤 컵에 쪼르륵 따라 이즈미에게 내밀었다.
 
"여, 여기요."
"고마워요."
 
이즈미는 차를 마시는 와중에도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눈물이 범벅이 된 미하시를 보고 웃고있자니 미하시는 더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서,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이상,이상한, 말 해서,"
 
고개를 가로저으려던 이즈미의 귀에 와 꽂히는 말이 있었다. '저 싫어하지 마세요. 저는 선생님이 좋단 말이에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하시가 거의 오열하듯이 울면서 말해 잘 못알아들었지만 이즈미는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이즈미는 미하시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미하시 씨. 저 미하시 씨 안 싫어해요."
 
미하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더 울기 시작했다.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하면서 미하시는 엉엉 울었다. 이즈미는 이를 악물었다.
 
"미하시 씨! 정말이에요!"
 
미하시는 여전히 울고있었다. 이즈미는 잠시 생각한 뒤 자기도 모르게 미하시를 와락 안았다. 미하시를 안는 순간 미하시가 빳빳해진게 느껴졌다. 그러고 한 3분이 지났을까, 미하시는 울음이 점점 잦아들었고 몸은 말랑말랑해졌다. 그제서야 이즈미는 미하시를 품에서 뗀 뒤 입을 열었다.
 
"미하시 씨, 저 미하시 씨 싫어하지 않아요. 저도 미하시 씨 좋아해요."
 
이즈미는 말하면서 이상했다. 일단 미하시의 이름을 너무 많이 말한 것 같아 웃겼고, 동시에 기분이 좋아졌다. 미하시는 단지 6개월 정도 자신의 병원에 다닌 환자였을 뿐인데. 단지 처음 봤을 때 귀엽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하고 생각했을 뿐인데. 지금 그런 사람에게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니.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켠이 채워진듯이 따듯해지는 기분에 몸이 녹았다.
미하시는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입을 다물었다. 단지 눈을 깜빡깜빡 거리면서 쳐다보기만 했다. 이즈미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에요."
 
이즈미가 다짐하듯 말하자 미하시가 다시 눈꼬리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았다. 그리고는 다시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저도요. 선생님, 좋아해요.' 하는 말에 이즈미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안고 있었다.
* * *
 
"미하시 씨,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네!!"
 
문을 열고 들어간 그 곳에는 항상 똑같은 자리에 그 사람이 있었다. 함박웃음을 지은 그가 말한다.
 
"렌, 왔어요?"
 
 
환자: 미하시 렌  나이: 만 19세  성별: 남
담당의사: 이즈미 코우스케
-1월 25일 첫 방문
-중학교-왕따경험, 대인관계 미숙, 의사소통 미숙, 감정표현 미숙, 자존감 낮음
-긍정일기를 써보게 함. 
-비고: 약 처방x
-8월 2일 중간 경과
-의사소통 원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짐. 어느 정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됨.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