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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타카 - 겨울, 그리고 두 사람 본문

오오후리

모토타카 - 겨울, 그리고 두 사람

승 :-) 2014. 12. 7. 16:14

[모토타카] - 겨울, 그리고 두 사람

새하얀 눈길 위에 발자국이 찍혔다. 그 주인공은 목도리를 한 소년과 목도리를 하지 않은 소년. 둘 중 하나는 키가 조금 더 컸다. 둘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쌓인 눈 위에 발자국만을 남겼다. 여전히 눈이 왔고, 얼마나 서있었던 건지 키가 큰 소년의 머리 위에는 소복하게 눈이 내려앉았다. 아마 키가 작은 소년을 기다린 듯 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키가 큰 소년이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흩어져 나왔다. 키가 작은 소년은 등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그러자 급박하게 키가 큰 소년이 다른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타카야."

키가 작은 소년의 이름은 타카야 인듯 했다. 이제껏 머리속에서만 뛰어다니던 말들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그저 이름만 불러댄 키 큰 소년이 부들부들 떨며 타카야의 옷깃을 잡았다. 타카야는 그 손을 차갑게 뿌리쳤다.

"볼 일 없으니까 가세요."

그러나 소년은 타카야의 옷깃을 꽉 쥔 채로 놓지 않았다. 타카야는 꼭 잡힌 자신의 팔을 내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몸을 다시 소년에게로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빤히 마주쳤다. 소년은 당황했는지 더욱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눈동자. 달싹거리는 입술. 겉모습만으로도 소년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눈은 내리고있었고, 두 사람의 머리에는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 * *

"선배. 이제 됐어요. 그냥 가요."

타카야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어떠한 동작도 하지 않은 채였다. 못된 말도 아니었지만, 그 어떤 말 보다도 차갑게 들렸다.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말. 나는 혼란스러웠다. 차라리 붙잡거나 화를 내면 속이 시원할텐데. 왜 그 때 자신을 두고 도망갔는지 원망이라도 했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내 앞에 있는 이 바보같은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데다가, 심지어 내가 힘을 주고 있던 손이 왼손이라는 것 때문에 가려던 발걸음까지 멈췄다. 그렇게 착한 면 때문에 싫어했던 건데. 도대체 왜 나는, 다시 그의 앞에 선걸까.

"타,타카야.."

"선배.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니까 이제 그만 가라구요."

어디까지 날 괴롭혀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타카야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괴롭히려는 것도, 지금 이렇게 화를 내게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풀어내고 싶은 말은 많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다. 아니,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아직도 확신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굳은살이 뻣뻣하게 잡혀있었다. 차갑디 차가운 손. 그 손에 내 공이 들어오게 하기 위해 지난 2년간 얼마나 노력했을까. 항상 몸에 공을 맞아 멍이 들면서도, 군말 없이 리드해줬던 타카야인데. 일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확신이 필요해."

타카야가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쳐다봤다. 형용할 수 없는 눈빛들이 허공에서 얽혔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타카야는 그 뒤의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이 나를 재촉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내 입을 틀어막은 것 같았다. 이내 타카야의 눈이 붉어졌고 나는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나는 급하게 입을 떼었다.

"아니, 네가 저번에, 어, 말했던 거, 말이야."

"네."

"확신이 필요하다고."

엉망이다. 여전히 머리 위에 눈이 내리고 있었고 나는 아무말이나 되는대로 내뱉었다. 날씨는 추웠고 방금 나온 내 말 덕에 분위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그리고 계속 된 침묵.

"무슨 확신이 필요하단거에요?"


"네가 저번에 말했던 거."

 

타카야는 한숨을 쉬었다. 지친 눈치였다. 하지만 나로서도 요 며칠 간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단지 투수와 포수, 배터리 관계라고만 생각해왔던 타카야가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타카야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나는 연습에도 나갈 수 없었다. 그냥 뭐, 친한 우정 그런거 아닌가? 헷갈린 거 아니야? 싶었으나 타카야의 단호한 눈빛이 자꾸 떠올라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

 

"내가 미안."

 

타카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때 도망간 거."


"…아, 네. 괜찮습니다. 하긴 남자새끼가 고백하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도 나오는대로 지껄이는 것 같았다. 잔뜩 상처받은 눈을 하고는 그런 식으로 내뱉으면 내가 뭐가 되냐.

 

"나도 그래서 생각해봤어."

 

타카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아마 내가 처음 타카야에게 고백 비슷한 걸 받았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난 아마 더욱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이었을거다. 새삼 그에게 미안해졌다. 진심을 다해서 전한 말이 외면에서부터 거부당했을 때, 이런 기분이구나.

 

"네가 날 좋아한다는게 착각은 아닐지."

 

"…어, 음. 가볼게요."

 

"마저 들어."

 

"……."

 

"그 뒤로 내가 너한테 갖게 된 이 감정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너를 보기가 힘들어. 그 땐 당황스러워서 자리를 피한 것도 있어. 하지만지금 내가 너를 찾아왔고, 너를 붙잡은 건 내가 마냥 너를 거부해서만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추운 날씨에 입은 얼어서 발음은 엉망이고, 눈은 이미 머리 위, 어깨 위에 쌓여 축축하게 젖어가고 있었다. 때문에 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여력이 없었다. 단지 지금, 여기서 타카야한테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추위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장소를 옮기지 않은 이유는 둘 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아주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겠어."

 

"?"

 

"그러니까, 확신이 필요하단 거야. 내가 단지 너를 거부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이런 감정을 갖게 된건지, 아니면… 도대체 뭐 때문에 네가 신경쓰이는건지 알아가고 싶어."

 

"……."

 

타카야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와는 달리 처진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널 좋아하게 될 거야. 라던지, 혹은, …아니. 내가 널  좋아해. 라던지 등의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알아보겠다고 한 건데. 그 마저도 타카야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이겠지. 그 심정을 타카야의 표정을 보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잡혀있던 손이 여전히 차갑고 뻣뻣했다. 그리고 이내 타카야의 손이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나는 그 손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이라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타카야가 고개를 꾸벅 숙이곤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단지, 쌓인 눈에 이제 막 생긴 발자국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 * *

 

 

타카야가 자리를 떠난 뒤 키가 큰 소년은 머리 위에 쌓인 눈을 거세게 털어냈다. 얼마나 오래있었는지 제법 많은 양의 눈이 쌓여있었다. 심지어, 그 소년 주변에는 타카야의 발자국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찍혀있지 않았다. 자신의 발자국이 없어질 정도로 오랜 시간 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곧 소년은 얼굴을 감싸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새빨개진 손이 추위를 알려주는 듯 했다. 더 이상 있으면 감기걸릴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년은 그 뒤로도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그쳤다.

 

소년은 그제서야 일어나 자신이 온듯한 길로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발을 뗄 때마다 운동화가 눈에 잠겼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의 발자국을 새하얀 눈 위에 찍어갔다. 마치 새로운 길을 만드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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