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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하]-émissaire 본문

오오후리

[이즈미하]-émissaire

승 :-) 2015. 1. 20. 19:31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이면 PC로 읽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이즈미하] - émissaire

 

나는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절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빼곡하게 종이를 채워나가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빠르게 눈으로 훑어보았다. 이미 외울 정도로 읽어보고 몇 번이고 다시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던 문서였다. 인쇄버튼을 누른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문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가 찾아간 곳은 S구에 있는 한 구치소. 그리곤 수척해진 얼굴의 남자가 몸이 불편한 듯 절뚝이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마주치는 둘의 시선. 한쪽은 그 광경을 바라보기 힘들었는지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한쪽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어느 새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여긴 왜 찾아왔어.”

 

 

* * *

 

 

미하시는 일주일 째 무릎을 끌어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고’. 그 사고 속에서 일어난 혼란이 모두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걷어차 버린 것 같았다. 이즈미 군이 그랬을 리 없어. 미하시는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사실이었다. 그러나 미하시의 증언은 일관성이 없고 피의자의 측근이라는 사실 때문에 기각되었다.

 

미하시는 본인이 이즈미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갔다. 가장 큰 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증언의 일관성이 없었던 이유는 아마 미하시도 그 사건 이후로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였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미하시는 깨질 듯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들리는 이명과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그날의 기억 탓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뒤척이던 날이 허다했다.

 

그리고 늘 되감기는 기억은 같은 부분이었다. 미하시 도망쳐! 다급한 이즈미의 목소리가 들리고 쿵하고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 그 뒤로 기절해버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던 미하시에게는 그것이 기억의 전부였다. 미하시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 뒤로 미하시는 이즈미를 볼 수 없었다. 부상도 심각했지만 이번 폭발 사고의 용의자가 바로 이즈미였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대로 법원에서 선고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즈미 군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미하시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즈미 코우스케라는 사람은 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미하시는 이즈미를 보며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었다. 동경도 아닌, 사랑도 아닌 묘한 경계에 자리하고 있던 미하시는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미하시는 생각 외로 감정에 둔한 사람이라, 그것이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내리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마음이 가는대로 이즈미를 대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것이 미하시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표현이었다.

 

이즈미가 미하시에게 어떤 속내가 있어서 그렇게 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하시가 느끼기에 이즈미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람 중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미하시가 말을 더듬고 느리게 한다며 답답해했지만, 이즈미만은 달랐다. 늘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대답해주곤 했다. 미하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즈미의 눈동자를 보면 항상 가슴이 떨렸다.

 

,즈미, 군은 내 말, 답답하지 아,않아?’

!’

 

미하시가 천천히 이야기 하면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좋아. 이즈미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 말에 미하시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 학창시절 내내 의사소통문제로 왕따를 당했던 미하시에게 이즈미의 그 말은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던 미하시를 구원해주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미하시가 이즈미의 눈동자만 봐도 가슴 설레던 날들의 시작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하시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어느 새 날이 밝고 햇살이 창문 틈새로 조심스럽게 새어 들어와 있었다. 미하시는 밤새 컴퓨터 앞에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다가 책상 위에서 그대로 엎드리고 잠들어있었다. 뒤척이다 살짝 건드려 다시 켜진 모니터 자판에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시작하는 문서가 열려있었다.

 

 

* * *

 

 

한눈에 봐도 수척해진 이즈미가 눈앞에 내밀어진 종이를 보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움직였다. 미하시는 이즈미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즈미 군 잘못 아니야. 이즈미 군은 잘못 없어. 저 거칠한 얼굴을 매만지며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항상 반짝반짝 빛을 내던 이즈미는 어느 새 회색의 사각형에 갇혀 생명을 빼앗긴 실험체 같았다.

 

이즈미는 자신 앞에 놓인 종이를 읽어보곤 눈물이 나는 듯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미하시는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하시가 밤새 고민해서 쓴 탄원서였다. 여러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탄원서를 조금 더 모아 선고 전에 법원에 제출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즈미 군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생각한 미하시는 애써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

 

, 모아서, ,, 이즈미 군.”

 

이즈미는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달싹였다. 미하시는 이즈미의 얼굴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이즈미는 눈물이 뚝뚝 배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미하시는 목이라도 다쳤는지 쇳소리가 잔뜩 섞인 이즈미의 목소리를 듣고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갈하고 맑은 목소리를 내던 그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 고생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미하시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곤 대답 없이 종이를 챙겨 일어난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당연하잖아, 이즈미 군.

 

좋아하니까.’

 

그러나 차마 그 말은 내뱉지 못하고 미하시는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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