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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쥰하루] 달밤 본문

오오후리

[하루쥰하루] 달밤

승 :-) 2015. 2. 13. 11:49

[하루쥰하루] 달밤

 

*쵸링님께 받은 리퀘입니다!^^

 

 

====================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깜깜한 밤, 하루나는 눈을 비볐다. 분명 의식이 깨어있고 정신이 멀쩡하나 그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들리는 것은 둔탁한 파열음,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그것에 맞는 소리, 비명소리, 신음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였다. 그 수많은 소리 중, ‘의미를 가지는 것은 없었다.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그 사이에 단어는 필요 없었고 소통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았다. 하루나는 그 참혹한 광경에 귀라도 막고 싶었다. 아니, 사실 이미 손이 올라가 그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들려오는 소리에 하루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 붙잡는 손에 소리는 더욱 생생해지고, 손은 귀에서 떨어졌다. 하루나는 놀란 듯 숨을 들이마셨다.

 

, 괜찮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하루나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하루나보다 키가 작았다. 달빛이 슬쩍 비춰 드러난 그의 얼굴을 보고 하루나는 마음을 놓았다. 그리곤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싸움터에서 누군가 자신을 잡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않고 있다니. 선배가 아니라 적이었다면 골로 갔을 것이다. 하루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너 이렇게 정신 놓고 있으면 칼빵 맞는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늘 그랬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쓰고도 웃었다. 그의 처진 눈꼬리가 더욱 아래를 향했고 그는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 환한 웃음과 대비되는 붉은 피가 하루나의 비위를 상하게 만들었다. 거기 있다가 괜히 맞지 말고 저리 가 있어, 신참은. 그가 하루나의 팔을 툭툭 두드리고 다시 그 아수라장으로 뛰어 들었다. 신참은. 하루나가 입 속으로 그 단어를 삼켰다. 그가 이 가시밭길을 걸은 지 딱 한 달 째였다.

 

 

* * *

 

 

 여기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이다. 사회에서 도태된 뒤 열등감에 시달리다 누군가를 해하고, 그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이 조직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조직원의 대부분이었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들어왔기 때문에 그 결합력은 매우 약했다. 또한, 모두가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세상은 살얼음판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릴라 치면 이미 누군가 나에게 주먹을 날리는 세계. 그들의 세계가 그랬다. 구역질이 났다. 그런 폭력적이고 극악무도한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

 적어도 하루나는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루나가 살아온 인생이 그러했고, 그것만을 보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나아질 곳이 없는 생활 속에서 하루나는 하루하루 숨이 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살아있는 지옥.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하루나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리고 들어온 곳이 여기였다. 더러운 바닥이라는 것은 같았으나 분위기가 달랐다. 그 모습이 웃기긴 웃겼다. 똑같이 사람을 죽이는데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신참.’

신참이 들어왔다고?’

야 리오, 이제 너 막내 끝나서 좋겠다.’

 

 언제나처럼 신참이라면 흠씬 두들겨 맞고 일주일 간 밥도 못 먹을 줄 알았던 하루나는 생각과는 다른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순간 손날이 하루나의 머리통으로 날아왔고 하루나는 재빠르게 피했다.

 

쓸만 하네.”

 

 그것이 그와 하루나의 첫 만남이었다. 하루나는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작은 그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순하게 생긴 얼굴인데도 묘하게 얼굴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처진 눈꼬리와는 다르게 비틀어져 올라간 입꼬리 때문인 것 같았다. 온 얼굴로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는 사람. 하루나 역시 입이 비죽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딜 가나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힘들었다.

 처음엔 원래 다 저렇게 대해. 리오라고 불린 사람이 하루나에게 귀띔했다. 하루나는 고맙다는 듯으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다시 주변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10년 전 그곳에 처음 들어갈 때 맞았던 곳들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곧이어 까만 구둣발이 하루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구둣발을 보곤 턱께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무시한 채 시선을 위로 올리니, 아까 그가 눈앞에 서있었다.

 

이름이 뭐야?”

 

 하루나는 곧이곧대로 말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가명을 말해야 할지 조금 고민하다 결국 본명을 말해주었다. 하루나 모토키입니다. 그러자 그가 여전히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쥰타. 타카세 쥰타.

 

밖에서는 타카세라고 불러.”

 

 타카세, 쥰타. 하루나가 입안에서 그 단어들을 천천히 굴렸다. 고개를 끄덕하자 그가 편히 쉬고 있어. 라고 말한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하루나는 앉을 자리를 두리번거리며 찾았고 리오가 의자를 하나 가리키며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선배 파트너가 며칠 전에 죽었거든. 그래서 그래. 넌 아마 선배랑 파트너를 하게 될 거야. 지금은 좀 예민하게 굴어도 곧 예전처럼 돌아올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가 친절하게 말했고 하루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는 말 잘 못해?”

 

 너무 당황한 나머지 하루나는 예? 하고 새된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리오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목소리 듣기 힘드네. 귀여운 면이 없어! 하며 낄낄거리는 리오를 앞에 두고 하루나는 어쩐지 진땀이 흘렀다. 그제서야 하루나는 퍼뜩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이곳 역시 자신이 예전에 있었던 곳과 결국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이곳은 폭력이 우선하는 곳이라는 것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하루나는 내가 지금 이렇게 아무 경계태세도 안 갖추고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제가 있을 방은 어디입니까?”

 

 리오가 정신없이 웃다가 적잖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 2층이야. 라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하루나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리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처음부터 이쪽에서 생활했던 리오는 하루나가 왜 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을 것이다. 하루나가 떠나고 리오도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날 밤이 되자 하루나가 있던 2층 방에 삐걱 삐걱 하고 누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신경 쓰지 않고 각자 하던 일을 계속했지만 하루나만은 그 소리가 신경 쓰여 귀를 기울였다. 곧 문이 열리고, 쥰타가 들어왔다. 모두는 여-하고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역시 적응 되지 않는 분위기.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난 하루나가 머쓱한 듯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쥰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루나 앞에 와서 섰다.

 

할 말 있으니까 잠깐 나와.”

 

 하루나는 아무 말 없이 쥰타의 뒤를 따랐다. 둘은 옥상에 도착하고 어둠이 잔뜩 깔린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쩐지 으슬해진 하루나가 소름이 돋은 팔뚝을 슥슥 문질렀고 쥰타가 고갯짓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하루나가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살피자 쥰타가 하루나의 머리를 붙잡고 꾹 내리 눌렀다. ! 하루나가 이상한 소리를 냈고 쥰타가 한 손으로는 하루나의 머리를, 한 손으로는 담배 한 가치를 탁탁 꺼내며 말했다. 앉으라고, 임마.

 하루나가 가만히 앉자 쥰타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켰다. 희뿌연 연기가 순식간에 피어올랐고 하루나가 조그맣게 기침을 했다. 한 대 필래? 쥰타가 말했고 하루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재미없는 새끼. 조그맣게 말한 쥰타의 한마디에 하루나는 어쩐지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이 사람은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구나. 하루나는 고개를 떨궜다.

 

이제부터 너는 나랑 같이 다닐 거야.”

 

 쥰타가 담배를 문 채 말을 꺼냈다. 그 말은 이미 리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하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쥰타가 하루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눈. 하루나는 그 눈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치 텅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 공허한 눈빛에 하루나 역시 마음 한 구석에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잠깐 시선을 떨군 뒤 쥰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아끼던 후배가 죽었어.”

 

 둥그런 달이 두 사람을 비췄고 쥰타의 이야기는 한참만에야 끝이 났다. 쥰타가 왜 하루나를 그렇게 경계했는지도 알만 했다. 하루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쥰타의 말을 경청하고 가끔씩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뿐이었지만 쥰타는 그걸로 만족한 것 같았다. 하루나가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가만히 까만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 눈 안에는 달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너는 죽지 마라.”

 

 쥰타는 하도 깨물어 끝이 찌그러진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간다, 하고 뒤돌아 선 그의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 보여 하루나는 입안을 혀로 훑었다. 입이 썼다.

 

 

* * *

 

 

 수라장의 그 곳에서 하루나는 쥰타 덕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하루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껏 본인도 나름대로 싸움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싸움은 차원이 달랐다. 다시 저 곳으로 뛰어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벌써 죽어나갔고 반 이상은 바닥에 반죽음 상태로 널부러져 있었다. 달빛만이 간간히 비추는 그 곳에 그가 다른 이들과 엉켜있었다. 밤처럼 까만 머리가 피로 젖어 뭉쳐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공허한 눈. 그는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건 싫어.’

 

 지금 이 곳에 있는 이 사람들은 나한테 다 소중한 사람들이거든.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던 그의 얼굴이 달빛과 함께 겹쳐보였다. 그 순간 하루나의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충성심도, 동경도 아닌 묘한 어떤 것. 그제서야 하루나는 그 가시밭길에 뛰어들 용기가 생겼다.

하루나가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그 곳에 뛰어들었을 때 마침 누군가가 쥰타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하루나는 내리치는 각목을 피해 쥰타를 밀치고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칼을 찔러 넣었다. 단말마를 내지른 그의 몸이 축 늘어졌고 하루나는 그를 발로 툭 차 밀어냈다. 어느 새 쥰타가 하루나의 뒤에 다가와 등을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고맙다, 모토키.”

 

 둘은 서로를 등지고 다시금 그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달이 밝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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