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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공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본문

레트로봇

[또봇/공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승 :-) 2015. 2. 9. 20:52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어주시길 권장합니다.

 

 

 

 

 

 

[또봇/공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날이 춥다. 입에서 뿜어져 나온 입김이 하얀 형체를 허공에 나타냈고 곧이어 날아다니며 흩어졌다. 나는 자꾸자꾸 숨을 내뱉었다. 속 안에 뜨거운 응어리가 져있는 것만 같아서, 그것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 마냥 나는 그렇게, 입김으로 시야를 가리고 또 가렸다. 추워서인지 코끝이 시큰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대로 내 앞에 놓여진 그 길을 걸었다.

 수첩을 들고 나왔다. 잠시 쉬었었지만 글을 다시 써야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첫 외출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날은 여전히 추웠지만 그 추위 속에 흘러드는 햇빛이 2월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의 한달 넘게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기에 나는 2015년의 1월과 마주하지 못했다. 네가 없는 상태로 올해의 처음을 맞이한다는 것, 그것이 두려워서. 나는 겁쟁이어서 그렇다.

 어떤 작가가 글감을 찾으려면 산보를 하라고 했던가.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내게 영감을 주는 것 역시 사소한 산보였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장면들, 광경들 하나하나가 내 글의 주제가 되었고 글감이 되었다. 나는 어떤 광경을 보고 그것이 글의 주제가 되겠다 싶으면 수첩에 적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다. 가는 곳마다 너와 마주쳤고 내 수첩엔 온통 네 모습을 묘사한 글귀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네가 있는 주변은 유독 환하고 빛났다. 내 눈이 네게로 향한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을 네가 잡아 끈 것 아닐까. 정말 이상할 정도로 내 수첩엔 잔뜩 너의 모습뿐이었다.

 

 그렇게 너는 나의 뮤즈가 되었다.

 

 이제는 어딜 가도 온통 회색빛인 도시의 거리를 마주하기가 두려워 나는 시선을 땅으로만 떨어트렸다. , 뚝 하고 회색의 바닥이 검정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검정색의 방울 방울지는 길을 내었다. 그러다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찼다. 옷을 입었음에도 스미는 찬 기운에 나는 앞섬을 여몄으나 마음이 허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얼굴 역시 감정의 누수 탓에 차웠다. 나는 재빨리 얼굴을 대충 문질렀다. 흐릿한 시야 역시 손으로 꾹꾹 눌러 또렷하게 만들었다.

 나는 코트 안 주머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냈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멈춰섰다. 거리에 나온 지 이제 겨우 10여분이었다. 만년필에도 네가 있다. 나는 네가 웃음 지으며 건네던 이 만년필을 기어코 못 버리고 들고 나왔다. 당장이라도 이 만년필로 허한 가슴을 찌르고 싶었으나 나는 참았다. 아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겁 많은 이기주의자였으니.

 마음을 먹고 나는 그 만년필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일종의 커팅식이었다. 네게로 이어진 내 마음을 끊는, 그 행위의 시작을 축하하는 커팅식. 모두가 박수쳐주고 축하해주어야 할 자리인데 내 마음은 울고 있었고 그 아무도 참석해주지 않아 나는 홀로 그 감정의 난사를 고스란히 맞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이 그 추억의 결정체를 소거했다. 쓰레기통에 만년필을 가만히 집어넣었고 단시간에 그것은 나의 손을 떠났다. 1초였다. 1초의 시간을 위해 나는 한 달 남짓을 버렸다.

 주변 가게에 들어가 나는 아무 펜이나 집어 들었다. 평소 만년필로 휘갈겨 쓰는 내 글씨체가 좋다던 네 말이 영수증과 함께 버려졌다. 싸구려 볼펜을 가지고 나는 수첩에 선을 직직 그었다. 역시 잘 나오지 않았다. 끊겼다가 이어졌다가 간신히 글씨를 유지하는 그 볼펜에도 나는 만족한 채 거리로 다시 나섰다. 그리곤 또 다시 시선을 돌렸다. 회색빛의 도시에 또 다시 너와 같은 빛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떤 여자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는 무엇을 쓰는지도 모른 채 그저 수첩에 글씨를 휘갈겼다. 그리고 다시 내딛는 발걸음. 아무 생각 없이 내려다 본 발밑에 누군가가 봤을 영화티켓이 깔려있었다. 너와 나도 인연이구나. 너는 누군가에게서 떠나왔니. 이미 다 밟혀 한쪽 귀퉁이가 나달나달해진 티켓이 어쩐지 안쓰러워 나는 급하게 발을 떼어냈다. 또 다시 거리를 걸어가다 마주친 전자제품 가게에선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이 마지막 회를 장식하고 있었다. 멤버들이 모두 감사했다며, 행복했다며 흘리는 눈물이 부러웠다. 저들은 마지막을 그렇게 즐거워하며 행복해하고 있구나. 도저히 그 앞을 지키고 서 있을 수 없어 나는 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졸업식 시즌인 것 같았다. 모두가 꽃다발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 중에서 내 시선을 빼앗은 것은 깨끗하고 정갈해 보이는 수국. 하얀 수국 다발에서는 은은한 수국 내음이 날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꽃집에 들어가 수국 한 다발을 사고 싶었다. 그 하얗고 정갈한, 그 무엇도 물들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신성함에 네가 떠올랐다. 나는 차마 손 내밀지도 못할 그런 너. 나는 비록 지금 지나쳐가는 수국처럼 너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독한 이기주의자. 머릿속에 그 단어가 쿵쿵 뛰어다녔다.

 

 발걸음은 나를 어디론가 옮겨주고 있었으나 정작 나 자신은 있던 자리 그대로에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단 한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바보같이 혼자 그대로 멈춰선, 모두가 출발선에서 저만치 뛰어갔으나 홀로 남겨진 나는 그저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런 기분.

 더 이상 무언가를 하는 것은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일 것 같아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실로 오랜만의 외출이었고 그 외출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힘겹게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수첩을 열었다. 지나다니며 어떤 것을 메모했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몇 년 간의 습관이 그대로였던 탓에 나는 웃었다. 나는 이다지도 변한 것이 하나 없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 같아 허탈감에 웃음이 나왔다.

 수첩을 열자 거칠거칠한 글씨가 보였다. 늘 쓰던 부드러운 글씨체가 아닌, 거칠하고 투박한 글씨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싸구려 볼펜을 매만졌다. 그리고 그 글씨들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카푸치노

버려진 영화 티켓

수국 꽃

개그 프로, 마지막 회

 

 나는 길거리에서 그대로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웃음이 나왔다. 복잡한 감정들이 전부 뒤엉켜 그대로 웃음소리와 함께 울림이 되었다. 나는 웃으며 그대로 골목으로 들어가 주저앉았다. 적막을 울리던 웃음소리가 어느 새 적막을 찢는 흐느낌이 되었고 나는 몸을 있는 대로 웅크렸다. 마치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마냥.

 

 

 

카푸치노, 영화 티켓, 수국 꽃다발, 하다못해 스쳐지나가듯 흘러가던 TV 프로그램까지.

 

결국엔, 모두 너였다.

 

 

 

 

 

 

=====

 

이런걸 쓰는 성격이 아닌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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