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Big Wind-up!

[또봇/공한셈] Lucid Dream 본문

레트로봇

[또봇/공한셈] Lucid Dream

승 :-) 2015. 2. 2. 20:18

 

[또봇/공한셈] Lucid Dream

 

 

 

 나는 잠에 드는 것이 무서웠다. 밤이 무서웠고 새벽이 무서웠다. 또 다시 찾아올 그것에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고 깨어날 수 없었다. 가위는 아니었다. 꿈속에서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성격 탓이 아닐까.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것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면 며칠 밤낮을 괴로워했고 결국 그것을 얻고야 말았다. 그런 나의 성격이 무의식에 반영되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꿈의 요정이 장난이라도 치는 것인지 요즘 나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소유욕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리는 꿈을 일주일 째 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버티고 버티다 못해 끝끝내 나는 잠에 빠지고 말았다. 옅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깨어있고자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나의 의식은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소용돌이 속에서 나의 몸은 이리저리 내팽개쳐졌다. 그 순간엔 아무리 깨어나려고 노력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 같았다. 소리를 질러보아도 깨지 못했고 몸을 굴려 침대에서 떨어지려고 해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신기함과 호기심에 어떻게 되나 지켜보았지만, 이런 생활을 한지 일주일 째,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 몸은 마치 얇은 종잇장처럼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곧이어 무중력의 상태로 어디론가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쿵, 하고 내가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어딘가에 떨어졌다라는 느낌만 받았을 뿐. 나는 감았던 눈을 살짝 떴다.  또 다시 시작된 암흑. 나는 일주일 째 반복하고 있는 행동을 시작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두발로 땅을 지지한 채 일어섰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바닥의 감촉.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미적지근한 딱딱한 바닥. 앞이 낭떠러지인지, 끝없이 펼쳐진 길인지도 알지 못한 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왜 달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몸이 그렇게 시키고 있었다. 달려. 그를 붙잡아. 그를 붙잡아서 가둬. 귀에서 이명처럼 들려오는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했고 의식은 그 뒤를 간신히 따라가고 있었다.

 일주일 째 꾼 꿈으로 미루어봤을 때 하루에 한번 이 꿈을 꿀 때마다 나는 그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그가 내 앞에 있다. 그래서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오직 그를 붙잡기 위해 바닥을 딛었고 박찼다. 곧 그를 잡을 수 있다. 단지 그 확실하지 않은 사실만이 나의 이 기괴한 행동의 동기가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아닌 다른사람의 체취가 코에 겨우 흩어져 닿았었는데, 오늘은 그 체취가 조금 더 가까이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이 미적지근한 공기 속에서 다른 누군가의 온도가 느껴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온도라기보다는 분위기라고 할까, 온 피부로 와 닿는 내가 아닌 타인의 존재감이 나를 뛰고, 또 뛰게 만들었다. 그가 내 바로 앞에 있다. 나는 당장 저 사람을 붙잡고 확인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대체 날 이렇게 괴롭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지금 여기가 꿈속은 맞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천지였다. 그리고 내 귀에 속삭이는 명령들. 붙잡아, 가둬, 끊임없이 귓가에 맴도는 이 말들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누가 하는 말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더 이상 숨을 쉬기가 버거웠다. 폐의 구석구석이 유독가스가 퍼진 것 마냥 따갑고 아팠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손을 뻗으면 그가 닿는다. 주변의 공기 하나하나가 나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손을 뻗어! 그를 잡아! 양 귀에서 따갑게 울려대는 소리 탓에 나는 헐떡거리며 간신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살랑거리며 닿아오는 섬유가 나의 손가락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어김없이,

 

허억-”

 

나는 눈을 뜬다.

 

 

 

* * *

 

 

 

 이불이 식은땀으로 잔뜩 젖어있었다. 오공은 숨을 몰아쉬며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젖혔다. 침대보와 이불이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천은 찬바람을 만나자마자 차갑게 식어갔다. 머리가 무거운지 손을 들어 머리를 탁탁 두드린 오공의 팔에 추워서인지 소름이 돋았다. 오공은 거칠게 머리칼을 털었다. , 또야. 혼잣말을 한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 알람이 울렸다. 피식 웃으며 그는 알람을 껐다. 기가 막히는 타이밍이네.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 그가 샤워실로 들어갔다. 땀에 흠뻑 젖은 몸 때문에 옷이 쉬이 벗겨지지 않았다. 이내 옷을 벗어던진 그는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샤워기 앞에 서서 뜨거운 물을 맞았다. 오공의 표정이 조금은 풀리고 샤워실 안은 어느 새 증기로 가득 찼다. 호흡기를 통해 들어와 폐부를 잔뜩 채우는 습기. 순간 그가 퍼뜩 놀란 듯 눈을 떴다. 그리곤 급하게 문을 열었다. 샤워실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증기들이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는 마치 산소가 부족했던 사람처럼 뛰쳐나와 허겁지겁 투명한 공기를 마셨다. 얼마가 지났을까, 몸이 차갑게 식었고 오공은 기분이 나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 진짜 짜증나네, 그 꿈.”

 

 샤워실 문 앞에서 물기를 털어낸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마 일주일간 계속된 꿈 때문이리라. 그 꿈을 꾼 뒤로 오공은 어둡거나 답답한 공간을 피하게 되었다. 어쩐지 묘하게 꿈속에서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공의 성격 상 그렇게 소유에 번번이 실패하는 꿈은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 때문에 오공은 웬만하면 그 꿈이 생각나는 상황을 모두 피했다. 왜 안 잡히는 거야. 빨리 붙잡아서 정체가 뭔지 알고 싶은데. 오공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나갈 채비를 마치고 오공은 핸드폰을 보았다. 부재중 전화 1. 차하나. 오공은 핸드폰에 찍힌 그 묘한 글자 때문인지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차하나. 요즘 들어 오공의 눈에 띈 인물이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하면, 평소 어떤 일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 오공이 핸드폰에 찍힌 내용 없는 이름 따위를 보고 웃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가 왜 전화했는지,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오공은 여전히 엷게 웃음 지었다. 얼마나 그 이름을 바라보았을까, 무언가 생각난 듯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낸 오공이 얇고 긴 손가락을 움직여 통화버튼을 눌렀다.

 

 카페로 들어가자 그가 앉아있었다. 오공은 그런 하나를 보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는 그의 얼굴이 비단 빛을 받아서 화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공은 알고 있었다. 하나는 눈을 감고 그 따듯함을 즐기고 있었다. 오공은 똑바로 걸어가던 걸음을 멈췄다. 조금 더 그 얼굴을 보고 싶어서. 여유롭고 따사로워 보이는 그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서. 그러나 밖에서 들어온 찬 기운 때문인지 하나가 눈을 반짝 떴다. 깊고 큰 눈. 오공은 아쉽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또 다시 그의 눈에 빠져들었다.

 왔어? 그가 웃으며 말했고 오공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햇빛이 되게 따듯하다. 그가 말했고 오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냈어? 그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고 오공은 대답했다. . 너무나도 평화롭고 온화한 대화의 연속이었으나 어쩐지 살얼음판 같은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 불안함은 고스란히 둘에게 느껴졌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단지 서로에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먼저 적막을 깬 것은 하나의 침묵에 안절부절 못하던 오공이었다. 여유로워보이던 오공이었지만 사실은 하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독고오공에게 차하나라는 존재감이 그랬다. 할 말이 끝났고 분위기가 루즈해지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성격이었던 오공에게 차하나의 존재는 그를 참을성 있게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먼저 입을 열도록 만들었다.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존재, 차하나라는 이의 있음으로 인해 오공이 스스로 변한 것이었다. 하나를 만나면서 차츰 변해가는 자신이 불쾌하지만은 않았는지 오공은 그의 눈치를 보며 애써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야, 내가 요즘 꿈을 꾸는데

 

 

 

* * *

 

 

 

 오공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나는 조용히 오공의 말을 들어주었다. 누군가의 말을 주의 깊게 잘 들어주는 것. 그것이 오공이 하나에게 빠져든 이유 중 하나였다. 오공이 말을 하는 동안 하나는 그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온몸으로 나는 네 이야기를 잘 듣고 있어. 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태도는 오공으로 하여금 하나에게 더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단 욕구를 갖게 했다. 이것 역시 필요한 말만 하는 평소의 오공과는 다른 점이었다. 오공은 말하면서도 계속 하나의 표정을 살폈다. 하나는 진심으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좋지만은 않은 표정에 오공은 가슴이 아프다가도 하나가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사실에 어딘지 모를 만족감을 느꼈다.

 하나의 표정을 좀 더 오래 보고 싶었던 오공은 자신의 꿈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 했다. 언제부터 꾸게 되었는지,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꿈을 꿀 때마다 내용이 어떻게 변하는지, 최대한 모든 것을 오랫동안 말하고 싶었다. 꿈 이야기의 끝이 다가올수록 오공은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진 않았을지 하나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하나는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이었으나 흥미가 있었는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하나는 턱을 괴고 이야기 했다. 그럼 요즘 잠을 잘 못 자겠다. 오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네가 옆에 있으면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순간 오공은 입으로 내뱉으려던 말을 재빠르게 삼켰다. 어긋난 타이밍 탓에 입술만 우물거리던 오공 대신 하나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오공아,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래.”

 

 조막만한 입술이 오공의 이름을 내놓았고 오공은 눈에 띄게 몸을 하나 쪽으로 기울였다. 마치 어머니의 목소리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갓난아이처럼. . 오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가 꾼 꿈 있잖아. 네가 막 누군가를 쫓아가는 꿈.”

.”

 

 오공은 하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가 잘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나의 걱정스러운 눈빛과는 달리 오공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저 조그마한 입으로 나의 고민에 대한 걱정을 공유하고 있다. 오공은 참을 수 없이 좋아진 기분에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주먹을 있는 힘껏 꽉 쥐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에너지의 표출, 오공은 지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나 앞에서 소리 내어 웃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하나는 장난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오공은 여느 때와 달리 신중을 더했다. 하나의 조그마한 입이 또 다시 소리를 내뱉었다. 오공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네가 그 누군가에게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느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 거 없는데.”

 

 오공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거 없다고. 이제까지 오공은 집안 환경 덕에 부족하지 않게 살아왔었다. 따라서 불안함이나 초조함을 느끼는 건 결코 없었다. 적어도 현실에서는. 오공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 , , , 오공의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것 중 오공이 갖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아한 얼굴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잘 찾아봐. 있을 수도 있잖아. 네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거. 그리고 그는 웃었다. 언제 보아도 환한 웃음. 오공은 그 웃음을 보고 이제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던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하나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고 오공은 눈에 띄게 표정을 구겼다. 오공은 저 벨소리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뿌득,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오공은 어금니를 아득 물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아니길 바랬다. 내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길, 맞다면 조금 더 천천히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차라리 하나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울렸었더라면. 속으로 오만 생각을 다 하던 오공은 진지하게 하나의 핸드폰을 망가트리고 싶단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하나가 전화를 받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누군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 알았어. 이제 나갈게. 하는 하나의 목소리에 오공의 처진 눈썹이 미간으로 잔뜩 모였다. 그리고 하나가 전화를 끊는 순간, 하나가 오공을 바라보았고 오공은 순식간에 눈썹의 힘을 풀었다. 그러나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그것을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는 몰라도 하나는 너무나도 편한 표정으로 오공에게 말을 건넸다.

 

세모가 데리러 왔대. 난 이제 가 볼게.”

…….”

오늘 즐거웠어. 악몽, 그만 꿨으면 좋겠다.”

 

 그래. 오공이 앓던 이를 뱉어내듯 겨우 말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손에 더욱 더 힘을 주었다. 이제 손톱은 오공의 손바닥을 파고들어 자국을 남기기 시작했다. 오공은 하나가 카페 밖으로 나가 그와 만나는 광경을 바라보며 온몸에 힘을 주었다. 분명 아까와 같은 물리작용이 벌어졌으나 오공이 느끼는 감정은 천지차이였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에 오공은 머리가 아찔해졌고 주먹을 쥐었던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나가 그에게 보이는 해사한 웃음을 보자 이제 오공은 격해진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깨물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손가락 마디뼈를 깊게 눌러 내리며 자국을 냈다. 이와 닿은 손가락에 피가 몰려 빨개질 무렵 오공의 핸드폰도 벨을 울렸다. 거래처에서의 전화. 애초에 잡혀있었던 약속이었다. 하나를 위해서 미루기까지 했는데. 오공은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곤 약속을 다시 잡았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하지 않으면 오공은 이 원인 모를 감정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땅과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춤을 췄지만 내 다리는 어찌됐든 땅에 붙어있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대리운전 기사에게 지갑에 있던 지폐 중 하나를 던져주고 집에 들어왔다. 오늘이라면 그 빌어먹을 꿈도 달콤하게 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오늘은 술을 더 많이 마셨다. 거래처 사람들은 좋았을 것이다. 왠지 모를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는 내 마음에 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누군가는 내가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렇게까지 하는데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주 엿같았다.

 그 현실이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술만 들이켰다. 덕분에 지금 어지러운 머리와 메스꺼운 속이 내 몸에게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것이 반가웠다. 고통을 받는 것을 통해 더 이상 잡생각이 나지 않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괴롭든, 즐겁. 어찌됐든 이 망할 꿈도 날 그렇게 만들어주겠지.

 

 나는 사형선고를 받는 죄인처럼 담담히 잠에 빠져들었다.

 

 또 다시 어둠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몸부림을 쳤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죽는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까. 나는 완벽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마치 아주 끈적한 액체 속으로 가라앉듯 나는 느릿하게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 누운 자세에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도착했구나. 이제는, 또 다시 그를 쫓아야 하는 건가. 나는 또 다시 웃었다. 뭐든 오늘 있었던 일 보다는 재미있겠지.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순간 뒷통수가 둔기에 얻어맞은 듯 얼얼해졌다. 확연히 다른 분위기. 온몸으로 느껴지는 존재감.

 

…….”

 

 내가 그렇게 쫓았던 존재. 그가 서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의 모든 공기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 여기 있다고. 그가 바로 내 앞에 서있다고. 그리고 그 순간 암흑과도 같던 주변이 순식간에 동시에 빛을 발했다. 나의 시야는 갑작스런 밝음에 산란해졌다. 너무나도 강렬한 빛이 내 눈을 쏘아대는 탓에 불쾌하고 당황스러웠다. 흐릿하고 어지러운 의식 속에서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는 나를 보고 활짝, 그렇게 웃었다.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렇게 느꼈다. 그 웃음이 어딘가 낯이 익어서, 나는 눈을 비볐다. 그러나 내 눈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에 충격을 받은 탓에 눈물만 흘렸다. 그 와중에, 마치 안개 속에 싸여 사라지듯 그가 뒤를 돌았다. 가지 마. 나는 온몸으로 외쳤지만 목소리는 차마 성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입안에서 흩어졌다. 그러나 그가 그 순간 뒤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나마 또렷해진 시각으로 그를 보았다.

 

차하나?”

 

 

 네가 왜.

 

 그리고 나는 또 그 악몽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이 모든 것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