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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교실 안, 너의 입술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교실 안, 너의 입술

승 :-) 2015. 2. 4. 00:02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이면 PC에서 읽어주시길 권장합니다.^^

 

 

 

[또봇/셈한] 교실 안, 너의 입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교실,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필기에 열중하는 시간. 그리고 나는 너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세모는 하루의 시간 중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하나를 즐길 수 있는 시간. 세모는 주위를 슬쩍 둘러본 후 하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나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서부터 천천히,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기 시작하면, 정갈한 앞머리에 가려진 눈썹, 조그맣지만 오똑한 귀여운 코. 오늘도,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최고인 내 차하나.

딱 한 가지만 빼면.

 

야 차하나.”

 

 세모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나 들릴만한 목소리로, 하지만 잔뜩 불만이 담긴 목소리로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하나는 이미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오른손으론 열심히 필기를 하고, 왼손으로는-

 

 세모가 하나의 왼손을 하나의 입술에서 떼어냈다. 하나는 그제서야 세모의 행동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모를 쳐다보던 하나의 입술이 잔뜩 터있었다. 세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 그러다 입술에서 피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세모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입술 보호제를 꺼내 하나에게 쥐어주었다. 하나는 얌전히 입술 보호제를 받아들고 입술에 문질렀다. 세모는 이 시간도 꽤나 좋아했다. 비록 여자들처럼 섬세하고 예쁘게 바르는 게 아니라 입술 주위까지 뭉텅이로 아무렇게나 바르는 거지만, 그게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 입술 보호제, 세모는 단 한 번도 바른 적이 없었다. 오직 차하나만을 위해 산 입술 보호제.

 

 입술 보호제를 바른 뒤 하나는 다시 필기에 열중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만족스럽네. 세모는 입꼬리를 올려 씩 웃은 뒤 다시 하나에게 집중했다. 얼마나 대충 발랐는지 입 주변이 온통 반짝반짝하다. 다음에는 내가 발라줘야겠네. 거울이 없어서 저러지. 그렇게 생각한 뒤 세모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순식간에 고개를 떨궜다. 하나의 턱을 잡고 그 조그맣고 예쁜 입술에 입술 보호제를, 입술에, 입술에. 아득해지는 머리에 세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두리가 놀러왔다. 자기만 다른 반이라고 툴툴대던 두리는 학기 초에만 징징거렸지, 시간이 좀 지나자 오히려 다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지 요새는 쉬는 시간에도 종종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세모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만. 세모는 두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나와는 달리 솟은 머리칼, 하나와는 달리 진하고 어딘지 강한 인상을 주는 눈썹. 어쩜 쌍둥인데도 이렇게 다를까. 세모는 하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

차하나!”

 

 너 입술 뜯지 말랬지! 두리는 소리쳤고 세모는 하나의 손을 입술에서 떼어냈다. 하나는 갑자기 난 큰 소리에 벙쪄 얌전히 세모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맡겼다. 어리둥절한 표정인 하나에게 둘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 너 자꾸 그렇게 입술 뜯고 그러니까 아빠가 맨날 걱정하시잖아. 입술 고만 좀 뜯어라. 그것도 습관이야 습관.”

입술 안 아파?”

 

 하나는 두리와 세모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세모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세모는 다시 자신의 주머니에서 입술 보호제를 꺼내 하나에게 쥐어주었다. 하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다시 입술에다 문지르기 시작했다. 야 차하나 뭐하냐? 어디다 바르는 거야. 진짜 웃겨! 두리가 낄낄대며 웃었고 하나는 짐짓 미간을 좁히며 두리를 째려봤다. ! 하나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크게 내었고 세모는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꺼내 하나의 입술 주변에 묻은 입술 보호제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하나에게서 입술 보호제를 가져와 하나에게 발라주었다. 하나의 입술을 본 세모가 다시 미간을 모았다. 가까이서 보니 입술이 죄 터있었다. 어느 한 군데에서는 빨갛게 열이 받아 금세라도 피가 날 것만 같았다. 정성스럽게 하나의 입술에 보호제를 발라준 뒤 세모는 보호제의 뚜껑을 닫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야 권세모. 너 입술 보호제 그거 하나 줘라.”

 

 두리가 말했다. , 아니야 세모야. 내가 사면 돼. 당황한 하나의 목소리에 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리가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 수업 종이 쳤고 두리는 아쉽다는 듯 앞문을 향했다. 그리곤 뒤를 돌아 하나에게 야, 너 진짜 입술 뜯지 마라! 하고 쌩하니 나가버렸다. 다시 조용해진 교실. 고요한 교실 가운데서 하나는 세모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 반짝반짝한 입술. 세모는 그 입술만을 바라보다 그제야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절대 못할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그 행동, 하나에게 직접 입술 보호제를 발라주는 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들. 그 사실을 깨달은 세모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세모야 왜 그래, 어디 아파? 걱정스레 세모의 얼굴을 바라보며 묻는 하나의 목소리에 세모는 이제 미칠 지경이었다. 건드리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세모는 조용히 가디건을 벗어 자신의 앞섬을 덮었다.

 

 이어 세모는 주머니에 있는 입술 보호제를 만지작거렸다. 원통형의 그것이 맨질맨질하게 손바닥에 와 닿았다. 이내 그것을 꽉 쥔 세모는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안 줄 건데. 차하나 입술 내가 맨날 챙겨줄 건데. 맨날. 올라가는 입꼬리에 세모는 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교실, 반짝반짝한 너의 입술. 반짝반짝한 내 차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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