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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환상통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환상통

승 :-) 2015. 3. 20. 22:27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또봇/셈한] 환상통

 





 

 은은하게 봄바람이 불어오며 손끝에 강아지풀이 와 닿아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간지럽다. 그러나 그 생의 환희가 느껴지는 감정은 동시에 나에게 있어서 죽음이 드리워지는 것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손의 감각이 살아 움직여 약동하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봄의 느낌.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는 손을 들어 왼손을 긁적였다.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감각은 계속됐다. 무엇인가 왼손에 와 닿는 불쾌한 느낌. 이제는 없음에도 계속해서 느껴지는 간지러움’.

 어릴 때는 잠결에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서 왼손을 긁다가 인공피부가 다 벗겨진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지만 정작 나는 어떤 기분도 들지 않았다. 아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오히려 담담해보였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주변에 누군가가, 혹은 내 과거가 의수를 했었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왼팔과 왼다리에 내 살이 아닌 차가운 고철덩어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구역질이 날 정도로 이질감이 드는 것이라 나는 왼팔을 나의 몸에서 뜯어내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철덩어리는 겉에서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팔인 행세를 하고 있어 볼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이게 진짜 내 팔이라고?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팔을 꾹꾹 눌렀을 때, 오른 손가락에 와 닿는 느낌은 차갑고 딱딱한 고체의 그것이었고 나는 늘 좌절했다.

 생각해보니 의수를 달지 않은 날이 단 날보다 많아진지 오래였다. 이렇게 하루하루 혐오하고 떼어버리지 못하는 것을 후회하며 살아가는데, 어느 새 이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렸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바로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따듯한 날이 되겠습니다. 봄나들이 가시는 분들은 얇은 옷을 입고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뉴스 일기예보에서는 그렇게 떠들어댔다. 오늘이 올해 들어 가장 따듯하다고. 그런데 왜 내 왼팔은 차가운 거지. 가만히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정이 안가는 내 몸의 한 조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그 조직에 어떤 감각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흠칫할 때가 있었다. 차갑디 차가운 그 고철덩어리에 신의 숨결이 불어 넣어지듯 따듯하게 감싸지는, 봄바람이 부드럽게 입 맞추는 듯한 그 감각이 다시 한 번 왼팔에 와 닿았고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세모씨!”

 

 아, 그 사람이다.

 

 

* * *

 

 

참 신기해요, 그쵸?”

 

 앞에서 재잘재잘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그가 나는 더 신기했다. 이제까지의 내 삶이 흑과 백 단 두 가지 색만 존재하는 인생이었다면, 그의 삶은 아니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나도 많은 색을 뿜어내는 생명력 그 자체의 존재.

 

그러게요.”

 

 별것 아닌 그 말에도 그는 화사하게 웃었고 그 웃음에서 흩어져 나오는 따듯함이 왼쪽 팔을 짓누르고 있던 차가움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이제까지 따끔거리거나 간질거리는 고통스러운 감각만이 왼팔에 존재했다면, 지금은 마치 피가 흐르고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각이 왼팔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왼팔을 따듯한 이 감싸는 감각이 느껴져 바라보니 그가 팔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분명 남자들끼리는 살과 살이 맞부딪히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불쾌함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는 거의 잊을 정도로 희미해진 따듯함이라는 감각이 지금 왼팔에 잔잔히 요동치고 있었다.

 

세모 씨,”

 

 세모 씨! 귓가에 들려오는 큰 소리에 흠칫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생생하게 귀에 와 닿는 감각. 마치 교향곡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카페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휘몰아쳐오는 감각의 소용돌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른 곳과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내 앞에 있다는 것. 과연 그것 때문일까,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내가 왼팔에 어떤 감각을 느낀 적, 그리고 온 세상이 색채로 물들었던 적은 이 카페에 들어왔을 때뿐이었다. 그것을 알아채자 나는 그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내 시선 안에 가두었다. 그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지금 감격과 환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생긋 웃었고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이제까지 좁고 차가운 스펙트럼 안에서 갈 곳을 잃어 방황했던 나의 삶이 그가 가진 넓고 따듯한 스펙트럼 안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

 

 내가 대답하자 그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세모씨, 손 따듯하네요.”

 

 나는 맞잡은 손을 쳐다봤다. 왼손. 손이 살짝 떨리자 그가 다른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왔다. 따듯해요. 다짐하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 속에서 나는 비로소 왼손에 완전한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제껏 어떤 두꺼운 암막을 두르고 더듬었던 것만 같아 희미했던 모든 사물들이 내 지문에, 내 피부에 직접 와 닿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 따듯함을 전해주는 그것은, 차하나 씨의 손.

 

 이제까지 불쾌하고 차가운 감각들만 의수 언저리에서 언제나 으르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듯한 감각은 너무나 생경했다. 기분 좋은 따듯함과 함께 느껴지는 맥박. 기계덩어리로 이루어져 자세히 들어보면 톱니소리가 나는 것만 같았던 그 왼팔에 쿵, , 쿵 하고 피가 돌고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맥박소리는 어디서 나온 걸까, 아마도 온 몸 전체에서 울려대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피부가 나의 피부와 맞닿아 포근하게 감싸진 그 느낌. 그 감각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이제는 손이 저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분 좋은 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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