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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공] El dorado 下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공] El dorado 下

승 :-) 2015. 4. 20. 20:04



[또봇/셈한공] El dorado 下



* 오메가버스 AU로 쓰여진 글입니다.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꽉 찬 교실에 단 두 자리만이 비어 있었다. 그 날 이후 차하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보통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과 관계를 가진 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걱정을 하는 것이 맞겠지만, 독고오공은 아무 생각 없이 교실 뒷자리에 긴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다른 알파들은 그의 눈치만 보았다. 더러운 오물에 모여드는 날파리들처럼 그들은 오랜만의 가십거리에 수면 밑에서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 차하나가 안 왔어. 독고오공이랑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씨발, 당연히 잤겠지. 걸레 같은 새끼. 작지만 날카롭게 누군가를 향한 욕설들이 교실에 퍼졌다. 그 말들은 고스란히 독고오공의 귀에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쭉 내밀고 휘파람을 불 뿐이었다. 그 소리에 흠칫한 다른 알파들은 그의 눈치만 보다가 금세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차하나가 학교에 모습을 감춘 지 정확히 1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 누구도 차하나의 결석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물밑에서야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었지만, 수면 위에서 그에 대해 공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 지금까지는, 적어도 담임이 저 교탁 앞에서 차하나의 행방에 대해 말하기 전까지는.

 

하나가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학교를 오래 못 나온다고 하네. 걱정하지 말고, 회장은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유인물들 잘 보관하고 있다가 하나한테 전해줘라. 이상.”

 

 그리고 교실에 있는 모두는 차하나가 언제 다시 학교에 나올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20일 뒤. 권세모가 학교에 다시 돌아오는 날.

 

 학교 내에 또다시 폭풍전야와도 같은 분위기가 휘몰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로서 꼭 30일 째 되는 날이었다. 권세모가 학교 대표로 경기에 나갔던 것이. 권세모, 차하나, 독고오공이 모두 학교에 모이는 날이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썸씽들은 모두 잊혀지기 마련이었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이런 시한폭탄과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그 주제는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교실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권세모였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듯 비틀려있었다. 늘 함께 등교하던 차하나가 없어서인 것 같았다. 둘이 어떤 경로로 함께 등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랬다. 지금 당장의 권세모 옆에는 차하나가 없었다.

 자습 시작 5분여를 남겨두고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로 밀려들어왔다. 권세모는 그럴 때마다 힐끔 교실 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권세모가 찾는 그 누구도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번에는 눈을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긴다리가 휘적휘적 교실을 가로질러 권세모 앞에 멈췄다.

 

, 오랜만.”

 

 눈동자만을 그대로 들어 독고오공을 응시한 권세모가 대답했다.

 

, 오랜만이다.”

이겼냐?”

 

 장난스런 표정으로 물어보는 독고오공의 의중을 도저히 알 수 없었는지 권세모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딴 건 왜 물어보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마치 표정으로 말하는 것 같아 독고오공의 입꼬리 한쪽이 말려 올라갔다. 쿡쿡 웃던 그가 고개를 숙여 권세모의 눈을 맞추며 말했다.

 

졌나보네.”

 

 권세모가 이를 악물었다가 금방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 같은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양 손을 들어 그에게 손바닥을 보인 독고오공이 워,워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곁을 빠르게 떠나갔다. 권세모의 꽉 다물린 이에서 뿌득, 하고 단단한 것이 마찰되는 소리가 났다.

자습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고,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두의 눈이 한곳으로 쏠렸다. 차하나였다.

 

차하나.”

 

권세모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차하나가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권세모를 보았다.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얼굴이었다. 차하나는 권세모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이질적인 감정을 느꼈다. 어떤 관계도 아닌 어떻게 보면 단지 섹스 파트너일 뿐인데 도대체 왜,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 왜 이렇게 감정이 북받치는가. 왜 저 목소리 하나에 눈물이 흐를 것 같은가.

 왜.

 차하나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무한으로 증식하여 사고를 뒤덮었고 그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그 광경을 본 권세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하나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래.”

 

 권세모가 그의 어깨를 붙잡자 그제서야 차하나의 눈빛에 권세모가 담겼다. , 아무것도 아니야. 반가워서. 차하나가 웃었고 권세모가 어딘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차하나는 더욱 미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다. 너와 나는 어떤 관계야? 너는 지금 나를 왜 부른 거야? 너는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거야? 물어볼 것이 산더미 같은데 정작 입은 열리지 않았다. 입만 뻐끔이던 차하나가 한숨을 내쉰 채 자리에 앉았다.

 

나 없을 때 무슨 일 있었어?”

 

 다정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차하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깨물고 참아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권세모가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 있는 얼굴인데.”

 

 차하나는 자신의 상태를 생각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권세모의 눈썰미에 놀랐다. 자신에게 어떤 관심도 없을 것 같던 권세모가 자신의 상태를 물어오고 있었다. 조금 더 복잡해진 머리에 차하나는 할 말을 잃었고 동시에 담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모도, 하나도 오랜만에 학교에 왔구나. 회장한테 밀린 유인물 받도록 하고. , 오늘 1교시랑 3교시가 바뀌었으니까

 

 담임의 말은 귓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권세모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차하나의 머릿속에 가득 차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담임이 나갔는지 주위가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차하나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오랜만이네.”

 

 권세모와는 다른 알파향이 차하나를 휘감았다. 생각하기 싫어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며칠 전의 일들이 떠올랐고 차하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상대가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차하나를 올려다보았고 그를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가 차하나의 옆에서 느껴졌다.

 

그동안 왜 안 왔어?”

 

 다정한 목소리가 차하나의 귓가에 닿았고 그 순간 그 날의 장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뛰어다녔다. 더욱 들 수 없는 고개에 자괴함과 동시에 한편으론 왜?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권세모를 의식하는 거야? 답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권세모에게 그 때의 일을 들키기 싫다는 것.

 

네가 알게 뭐야.”

 

 권세모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고 독고오공이 쭈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그대로 눈만 돌려 목소리를 낸 이를 쳐다보았다. 위로 말려 올라간 눈꼬리의 눈동자가 위를 향하고 있으니 제법 사나워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볼 뿐이었는데도 그 눈빛엔 여러 형용할 수 없는 언어들이 담겨있었다. 복잡한 감정들의 충돌이 일어났고 누구 하나 꼼짝할 수 없는 함정에 갇혀버린 듯 순식간에 주위가 고요해졌다. 독고오공이 굽혔던 다리를 일으켜 책상에 손을 얹고 차하나를 내려다보았다. 아까와는 다른 포지션이었다. 마치, 이젠 예전처럼은 대하지 않겠다라는 중압감이 차하나를 내리 누르는 것만 같아 차하나는 숨을 참았다.

 

그 때 그 일 때문이라면,”

 

 아, 제발 그만. 옆에 있던 권세모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간 것을 차하나는 놓치지 않았다. 독고오공의 입이 제발 다물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차하나가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올려다본 독고오공의 표정을 보고 차하나는 절망했다. 무언가 재미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듯한, 아니, 그것보단 조금 더 순수하게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표정. 말하다가 그대로 멈춘 기묘한 입모양과 내려다보는 탓에 빛이 전혀 들지 않은 그림자진 그의 얼굴이 차하나를 공포에 빠트렸다.

 

신경 안 써도 돼.”

 

 끝끝내 꾹꾹 말을 눌러 뱉어낸 독고오공이 씨익 웃었고 그와 동시에 축 늘어져있던 차하나의 팔을 권세모가 붙잡았다. 무슨 일 있지. 낮게 깔린 목소리에 차하나는 이제 울고 싶어졌다.

 

 

 

* * *

 

 

 

 수업이 모두 마친 다음이었다. 교실 뒤쪽에서 긴 인영이 휘적휘적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주저할 틈이 없었다. 권세모는 저도 모르게 그 인영을 따라갔다. 옆에 있던 차하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반면 차하나는 우물쭈물 하다 그냥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아니,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는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라는 것을 차하나는 알고 있었다. 이미 아까 그 둘의 표정을 본 뒤로 그는 깨달았다. 더 이상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 좀 해.”

 

 교실 뒤에서 권세모가 독고오공을 붙잡은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모두는 뭔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권세모의 눈썹이 더욱 꿈틀거렸다.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서 불쾌했다. 그래서 독고오공을 붙잡는 손길에 더욱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얘기?”

 

 여유로운 말투로 독고오공이 말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 이상하게 느긋한 표정. 독고오공의 팔을 꽉 붙잡은 권세모의 손이 떨렸다.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하는 독고오공의 표정에 잠시나마 웃음기가 스쳤다.

잠깐 이쪽으로 와. 권세모는 독고오공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갔다. 이미 종례까지 다 마친 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말해. 나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

 

 마치 자신은 그 자리에 없었단 양 말하는 그의 표정이 가증스러웠다. 권세모의 이마에 핏대가 울컥 섰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우성 알파의 팔을 붙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고 살짝 인상을 쓴 그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이내 그 팔을 더 센 힘으로 뿌리쳤다.

 

차하나가 이상해. 특히 네가 말 걸었을 때는 더 그랬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랑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저렇게 반응하는 거 아냐. 평소라면 저럴 애 아니야. 말 해.”

 

 권세모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독고오공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더욱 몸이 달은 권세모가 독고오공의 옆에 있던 벽을 주먹으로 치기에 이르렀다. 쾅 하는 소리가 교실에 파열음을 내며 울렸고 그 소리는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독고오공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예의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권세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데?”

 

 차하나가 뭔데. 마지막 말에 권세모가 입을 꾹 다물었다. 차하나가 무엇인지는 이제까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성향이 성향인지라 본능적으로 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권세모는 그때마다 참아냈다. 이런 식으로 관계가 흘러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권세모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독고오공이 흥미가 돋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을 모아 휘파람을 짧게 분 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 차하나 좋아하냐?”

 

 능글거리며 내뱉은 그 말에 권세모의 얼굴이 어쩐지 달아올랐다. 이제까지 그런 유치한 감정에 휩싸일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그러나 지금 자신이 이곳에 이렇게 서 있는 이유는 단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자신이 차하나를 좋아하기 때문에. 권세모는 이를 아득 물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리에 손을 짚고 가만히 서있는 권세모를 보고 독고오공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진짠가 보네.”

 

반박할 수 없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권세모의 성벽이 조금씩 풍화되어갔다. 이제까지 알파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무서워하던 차하나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게 기쁜 것이었는지, 좋아하는 사람이여서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었는지 권세모는 알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종족번식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근데 차하나 나랑도 했는데.”

 

 풍화되어 파스스 바람에 날려가던 권세모의 벽이 왈칵 하고 깎여나갔다.

 

 

 

* * *

 

 

 확인을 받아야 했다.

 

 무작정 달려 도착한 곳은 차하나의 집이었다. 교실 그 어디에서도 차하나를 만날 수 없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그걸 왜 자신에게 묻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권세모는 알 수 있었다. 자신도, 차하나도 이 학교에서는 뼈저리게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권세모는 차하나의 집으로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딱 한 번 가봤지만 몇 만 번을 헤매더라도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차하나의 집에 한 번에 도착한 권세모가 급히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몇 번이나 벨이 울렸을까, 잔뜩 부은 얼굴로 문을 열 차하나가 땀에 흠뻑 젖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권세모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권세모.”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그 말에 차하나는 들켰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권세모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독고오공과 잤는지 자지 않았는지는 사실 자신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차하나가 괴롭다면, 자신이 없을 때 힘들었다면 그것을 해결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것이 독고오공이었을 뿐이었고 권세모는 오히려 독고오공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고마움과 질투가 범벅된 이 감정의 웅덩이가 생긴 이유가 무엇인지. 권세모는 그것을 알기 위해 차하나를 찾아 달려왔다.

 너 그 새끼랑 잤어? 라고 물어보면 차하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저절로 올라가는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던 차하나가 권세모가 입을 여는 것을 보고 눈을 꾹 감았다.

 

너는, 나 아니어도 괜찮은 거야?”

 

 비난이나 조롱이 아닌 진심어린 걱정이 귓가에 와 닿자 차하나가 눈을 깜빡이며 권세모를 쳐다보았다.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권세모가 물어보았다.

 

내가 아니어도 그, 너 힘든 거, 해결해 주는 거 괜찮은 거냐고.”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말 그대로 차하나는 지금 권세모가 내뱉는 말들이 무슨 의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단 권세모가 나오는 대로 말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서로에게 있어 터부시되던 잠자리가 권세모에게 있어 힘든 걸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표현되는 것도 의아했다. 혼란스러웠다. 이제까지 단지 쾌락 때문에 나랑 자는 게 아니었나? 싶은 마음에 차하나의 머리가 윙윙 울렸다.

 

나는, 너라서 그렇게 하는 거야.”

 

 차하나의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깜빡이지 않았지만 눈이 아프지도 않았다. 눈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너라서 그렇게 한다는 의미가 내가 아니면 안 할 거라는 의미인가?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차하나는 일단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

 

 권세모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그냥 단순히, 네가 힘들어 하니까, 그러니까 그걸 도울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건데. 지금은 모르겠어.”

 

 차하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모르겠다. 차하나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모른다는 것. 차하나가 이제까지 자괴감에 시달리던 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도와주지 않았을 거야.”

 

 너라서 도와준 거야. 차하나여서. 권세모의 입에서 나온 단호한 마지막 말이 차하나의 귀에 와 닿는 순간 마지막 퍼즐조각이 알맞은 자리에 들어간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끼워 맞춰졌다. 혼란 속에 살던 지난날들이 스쳐지나갔다. 차하나는 이제까지 자신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왜 자신이 오메가로서 살기 위해 비겁한 선택을 했음에도 그런 감정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차하나가 권세모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차하나 역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나는 너라서 도와달라고 말했던 거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여서. 말을 마치고 차하나가 입을 꾹 다물었고 권세모가 차하나에게 다가왔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내민 팔이 그를 끌어안고 있었고 그 역시 권세모 품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둘은 한참동안 그러고 있었다. 권세모의 품에서 눈물을 닦아낸 차하나가 그의 몸을 밀어낸 뒤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

그럼 왜 하고 나서는 그렇게 곧바로 가버렸던 거야?”

 

 이런 걸 묻는 자신이 소심해보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차하나는 확신을 받아내야 했다.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차하나가 권세모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널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권세모가 입을 열었다. 이제까지 권세모가 차하나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일찍 자리를 떴던 것은 차하나가 오메가였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고 안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가 자신이 오메가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권세모는 더욱 그 관계에 있어 감정을 지우기로 했다. 차하나가 힘들 때 도와주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끼기로 했다. 그 의미였을 뿐인데. 자신의 감정을 섣불리 담았다가 차하나가 도망가 버리면 어쩌나, 그 생각 탓에 오히려 쌀쌀맞게 대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차하나가 지금 서운하게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권세모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을 마치자 차하나 역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둘의 눈동자에 비친 서로의 모습이 너무나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어 둘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너 얼굴 이상해.”

너도.”

 

 이번에는 차하나가 권세모를 안아왔다. 그쪽이 먼저 스킨십을 해오는 건 처음이라 당황한 권세모의 팔이 갈 곳을 잃었다가 이내 차하나의 어깨에 안착했다.

 

고마워.”

 

 그 한마디였다. 차하나의 입에서 나온 의미가 담긴 그 단어가 권세모의 귓가를 간지럽혔고 이내 따듯한 기운이 되어 두 사람을 감쌌다. 둘 다 서로에게 닿은 팔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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