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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지오] 바이클론즈 전력 60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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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지오] 바이클론즈 전력 60분

승 :-) 2015. 5. 3. 23:04

<바이클론즈 전력 60분에 참여한 글입니다.>


 너네 집엔 이런 거 없지? 능글대는 오나전의 얼굴이 두둥실 떠올라 쉬이 가시지 않는 5교시였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지오에게 있어 퍽 유난스런 날이었다. 친구들은 죄다 어린이날 선물이랍시고 다들 장난감을 하나씩 손에 쥐고 학교에 오곤 했다. 오직 지오만이 빈손이었다. 나도 작년엔, 작년까지는 받았었는데. 어린이날 선물. 지오는 티나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오나전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지 않을 일이었다. 하여간 도움이 안돼요, 도움이. 지오는 애써 우울함을 떨쳐버리려 고개를 도리질했다.
 수업이 끝나고 어쩐지 뜨거워지는 뒷통수에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나전이 손에 최신 장난감을 든 채 지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 놀리나, 괜히 울컥해진 마음에 잔뜩 째려보자 나전은 장난감을 내려놓고 양 손을 들며 실실 웃었다. 나쁜 새끼. 지오는 울 것같은 기분이 되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아, 자존심 상한다. 이런 기분은 정말 엉망이었다. 지오가 핏기가 가신 입술을 한 채 나전을 쳐다보자 그의 표정이 조금은 심각해졌다. 그가 가방에 장난감을 주섬주섬 넣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지오는 교실을 돌아나왔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와."
"아!!! 말 걸지 마. 오늘 형 기분 나쁘니까 건들지 마라. 이거 백 퍼센트."
"아, 형.. 진짜!"

 괜시리 피오에게 버럭 화를 낸 뒤 지오는 마구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피오가 잘 쫓아올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나쁜 새끼. 오나전 진짜 개나쁜 새끼. 사실 열 한살은 아주 어린 나이였다. 아무리 강한 척해도 아픈 곳은 있는 법이었다. 지오의 경우 부모님이 그랬고, 금전적인 부분이 그랬다. 나전은 정말 교묘하게 지오의 약점만을 괴롭혔다. 꾹꾹 찌르는 걸로 모자라서 잘근잘근 밟기도 했다. 평소 같았다면 지오 특유의 유쾌함과 오만함으로 웃어넘길 일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어린이날' 이었다. 지오는 페달을 밟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랬다.
 우당탕탕-! 큰 소리가 들리고 지오의 몸이 붕 떠올랐다가 엄청난 압력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이고 가다가 앞에 있던 보도블럭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한 것이었다. 말도 못하게 아팠다. 악 소리도 못할 정도로 온몸이 아팠다. 지오는 당장이라도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엄마를 찾아야 하지? 지오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몸이 수면에 점점 잠겨드는 듯, 마지막 기억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허억-"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물 밖에 있다가 이제 겨우 물 속으로 들어온 금붕어처럼 지오는 숨을 몰아 쉬었다.

"움직이지 마, 지오야."
"지오야, 정신이 좀 들어?"

 여기저기 울리는 소리에 지오의 머리가 다 웅웅 울렸다. 다들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 줘. 하고 말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숙해 달라는 의사의 말에 그제야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미오는 숫제 흑흑거리면서 울고 있었고 래오는 그런 미오를 토닥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죽은 줄 알겠네. 지오는 입이 썼다.

"환자분, 이거 보여요?"

 의사가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고 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 속도로 달리다가 넘어졌는데 이 정도인 게 다행입니다. 헬멧을 써서 머리는 잘 보호 했는데, 온몸에 타박상을 입어서 당분간은 움직이기 힘들 거에요. 일주일 정도는 입원하고 경과 지켜봐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지오의 머릿속을 병원비라는 단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 괜찮아요.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온몸이 아파 신음이 먼저 튀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태오가 말했다.

"오지오. 병원비 걱정은 하지도 마. 무조건 낫는 게 먼저야."



* * *



 지오가 병원 생활을 한 지도 이제 4일째였다. 처음에는 학교에 안 가도 된다고 좋아했지만, 딱 삼일 뿐이었다. 정확히 삼일이 지나자 지오는 아무것도 없는 병원생활을 지루해 했다. 링겔을 끌고 병원 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 없었다. 옆 침대 할머니와 점당 10원 내기 고스톱을 했다가 쫄딱 털리고 래오형의 잔소리를 하루 종일 들은 이후로는 다른 걸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이 생활을 삼일이나 더 해야 한다니. 지오는 나오는 하품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피오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오는 기지개를 켰다. 마침 피오도 올 시간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이 시간에 들어올 사람은 피오 뿐이라 지오의 눈이 신나게 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야 오지오. 너 다쳤다며?"

 나전이었다.

"야. 넌 왜 왔냐?"

 지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저 새끼 때문에 다친건데. 병원비 청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럼 학교 못간 값도 청구해야지. 지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나전은 어느 새 지오 앞에 서 있었다. 링겔을 꽂고 있는 지오의 손을 보고 조금은 겁먹었는지 늘 짓고 있던 능글맞은 웃음기도 싹 가신 상태였다. 그 표정을 보고 지오는 뭔가 고소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밀려오는 우월감에 지오는 링겔을 맞고 있는 손을 조금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위로 올렸다.
그것을 본 나전이 시선을 돌리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지오에게 내밀었다. 지오에게 자랑했던 장난감이었다. 지오는 갑자기 불쑥 화가 치밀었다.

"야 이 미친, 장난 하냐???"

 지오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옆 침대에 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지오를 쳐다보았다. 나전이 입술을 깨물곤 말했다.

"아, 창피하게! 그냥 군말 하지 말고 받기나 해!"
"내가 거지 새끼냐? 니가 주는 걸 받게. 차라리 죽고 말지!"

 소리를 지르자 옆구리가 얼얼했다. 옆구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내자 나전이 살짝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여전히 들고 있는 장난감은 지오에게 내민 채였다.

"내가 너 주려고 산 거니까 그냥 받으라고 멍청아!!"
"날 왜 주는데!!!"

 진심이었다. 오나전이 나한테? 지오는 불쾌함과 의아함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나전을 바라보았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에 나전이 한쪽 눈썹을 치켜 들었다. 나전도 고작 열한 살인 어린 아이였다. 이제 슬슬 한계에 도달했는지, 나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 나도 몰라!!!"

 나전이 지오의 침대에 장난감을 던지듯 내려놓고 그대로 몸을 돌려 병실 밖을 나갔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큰 소리에 지오가 몸을 움찔했다. 저 새끼 뭐야! 하고 소리를 지르자 옆 침대에 있던 할머니가 지오의 머리를 꽁하고 쥐어 박았다. 예쁜 말 써야지. 친구가 선물도 줬는데. 지오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쟨 내 친구 아니에요!"

 그러자 할머니가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

"친구도 아닌데 그런걸 썼으려구?"

 그제야 지오가 할머니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장난감 위에 한 종이가 나비처럼 앉아있었다. 지오가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뭐야? 하얀 종이 위에는 삐뚤 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빨리 나아라. 그래야 학교가 시끌시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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