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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태래] 이끌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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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클론즈/태래] 이끌림

승 :-) 2015. 5. 9. 19:42

[바이클론즈/태래] 이끌림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어주시길 권장합니다.

*1년 전에 부모님이 실종되었다는 설정입니다.

 

 

믿으세요. 희망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멍하니 발걸음을 옮기다, 시야 안으로 쑥 들어온 전단지에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희망이 우리 곁에 있다고. 내가 모르는, 어떤 누군가. 쉽게도 말한다. 조소가 얼굴 근육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속으로 욕지거리가 끓어올랐다. 다들 내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애써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감정을 쓸어 담으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으신지 이주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이 되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으나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실종되던 그 날, 두 분은 따로 나가셨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직장에 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흘째가 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울어대는 동생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그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했다. 어렸다. 나도, 동생들도, 우리는 모두 어렸다. 나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 때, 겨우 열아홉이었다.

 일주일이 넘어가자 여러 감정의 스펙트럼을 넘어 분노라는 감정에 이르렀다. 무서움, 두려움, 죄책감, 그리고 후회, 슬픔을 넘어선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인 내 자신은 내가 봐도 무서웠다. 동생들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미간을 구긴 채 남은 시간을 살았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왜, 어디로 떠났는가.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나 어렸고 부족했다. 네 명의 동생들을 떠맡기에는 나는 아직 한참 어린 한낱 청소년일 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착한 형은 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울어 제끼는 동생들을 등 뒤에 두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 이런 일이 나에게. 마치 파도가 넘실거리다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바위에 부딪히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넘실대며 밀려왔다. 끅끅거리며 참아보려고 해도 헛수고였다. 나는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제서야 숨을 내뱉었다실로, 오랜만에 길게 하는 호흡이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고 나서부터 나는 단 한 번도 편하게 숨을 쉬어보지 못했다.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울음이 터졌다. 화장실 바닥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감정을 뚝뚝 떨어트리곤 나는 지끈대는 머리를 짚었다. 부모님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첫째란 자리를 감당하기엔 나는 너무나 어렸다.

 막막했다. 그래, 막막하단 감정이 먼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치, 현관문을 열자 그 바로 앞에 벽이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벽을 아무리 부수려고 애를 써도 그것은 내 주먹보다 훨씬 단단했다. 깨지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것을 치울 수도 없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뻔히 질 수밖에 없는 게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하고 어깨를 두드려줄 누군가도 없다는 것에 나는 다시 한 번 더 좌절했다. 부모님의 실종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보이지 않는 벽과의 싸움.

 

.”

 

 화장실 문 밖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래오였다. 지금 이 시간에 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래오 밖에 없었다. 다른 동생들은 울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 우느라 거칠어진 호흡에 대답을 바로 할 수 없었다. 심호흡을 했다. 간헐적으로 숨이 떨렸다. , 숨을 내뱉은 뒤,

 

.”

 

 최대한 운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꼴에 첫째랍시고. 형이랍시고 힘든 모습 보여주기 싫다는 감정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우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떨리는 호흡을 진정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애기 좀 해.”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에 문을 열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 잠깐만. 짧게 말한 뒤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얼굴이 엉망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형, 울었어? 하고 놀려댔을 둘째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분명 걱정하고 겁먹을 텐데.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 세면대에 물을 잔뜩 받은 뒤 얼굴을 담궜다. 이렇게라도 해서 눈 붓기가 좀 가라앉았으면 좋겠는데. 숨도 진정시킬 겸 숨을 멈추고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그자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들고 물이 잔뜩 묻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 문을 열었다.

 

.”

.”

형 울었

할 말이 뭔데.”

 

 래오의 말을 잘랐다. 요즘 우리의 대화 패턴이 전부 이랬다.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나와 그것을 두려워하는 동생들. 대화는 점점 없어져 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말을 많이 하면 그들에게 불안함을 내보일 것만 같았고 나조차 약해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약해빠진 형이 되느니, 무서운 형이 되는 것이 나았다.

 래오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래오는 화가 날 때마다 입을 꾹 다물곤 했다. 그리고 일정 정도가 지나면 모든 것을 터뜨리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래오가 그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직전에 도달했다는 것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래오가 잠시 간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 이번엔 내 말 좀 들어.”

  

 이번에는 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긍정의 표시도, 부정의 표시도 하지 않은 채 나는 그저 래오를 바라보기만 했다. 

 

부모님은 오실 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래오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반문이 비어져 나왔다. 래오의 표정을 보아하니 순간의 감정으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겨우 중학교 삼학년이었다. 한참 부모님이 필요할 나이였음에도 하는 판단은 너무나 냉정했다. 마음 한켠이 아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주나 지났어. 부모님이 오시면 그 때 좋아하자. 지금은 다른 대책을 세워야 돼.”

 

 래오는 항상 그랬다. 우리 중에 가장 이성적이었고 두뇌회전이 빨랐다. 가끔은 정 없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번 일에는 래오 판단이 더 옳은 것 같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먼저 추스르고 동생들을 잘 이끌어줬어야 했는데. 래오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나는 무방비해 보였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

 

 숙인 고개의 시야 안으로 래오가 들어왔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래오가 무릎을 살짝 굽히고 나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작은 머리통에 담긴 표정에 나는 오만 감정들이 교차했다. 이리저리 서로를 가로지르는 감정의 8차선 속에서 나는 무엇인가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도와줄게.”

 

 네가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건데. 키도 쪼끄만 게. 그렇게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이주 만에 짓는 웃음이었다. 피식 웃자 래오가 아, . 하고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니 또 웃음이 나왔다. 무언가 이제껏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던 긴장의 끈이 탁 풀린 기분이었다.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러자 래오가 놀란 토끼눈을 하곤 내게로 다가왔다.

 

!”

 

괜찮아? 래오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도와준다니까 기뻐서 다리가 다 풀린다, .”

 

 사실 그것보다는,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든든함이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래오 역시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을 붙잡자 온기가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다른 사람의 온기였다. 이제까지 오직 나 혼자서 무언가를 이끌어나가려 했던 오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래오가 힘을 주어 나를 끌어당겼고 나 역시 그의 손에 이끌려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혼자서 일어서기 어렵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면 된다는 것을. 가만히 래오를 쳐다보자 마음이 뭉클했다. 희망은 언제나 곁에 있다. 낮에 듣고 코웃음을 쳤던 문구가 어느 새 마음 안에 쑥 들어와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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