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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미하] 9회 말 투 아웃 (전력 60분) 본문

오오후리

[아베미하] 9회 말 투 아웃 (전력 60분)

승 :-) 2015. 10. 3. 23:07



[아베미하] 9회 말 투아웃



 

 잔뜩 달아오른 경기장에는 흙먼지가 날아다녔다. 어느덧 9, 그리고 투아웃. 이 타자만 잡으면 우리는 이번 대회에서 1승을 기록한다. 너는 완봉 승을 거두게 되겠지. 비록 첫 번째 승리에 불과하겠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첫 단추를 꿰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첫 발자국을 내딛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공을 매만지는 손길이 다른 때와는 달리 조금은 길어, 너도 어지간히 긴장했구나 싶었다.

 이번 경기를 승리로 마치고 나면 어떻게 할까.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네게로 달려가 수고했다고 어깨를 감싸 안아줄까, 잔뜩 차가워졌을 손가락을 감싸줄까 생각하다가 이내 글러브 안에서 차갑게 굳은 손가락을 뻣뻣하게 움직이곤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런 나의 움직임에 흠칫 놀라는 너.

 너는 항상 내 행동 하나하나에 놀라고 움찔거렸었지. 워낙 목소리가 크고 버럭 성질을 잘 내는 나의 성격 탓에 울기도 많이 울었던 네가 이제는 내 앞에서 제법 고개도 잘 젓게 된 한 팀의 어엿한 에이스가 되었다.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너의 모습이 누구보다 듬직해 보여서, 더 이상 예전의 네 모습이 아닌 것 같아서 나도 사인을 보내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정확히 미트에 꽂히는 첫 번째 공. 스트라이크! 심판의 외침에 네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내쉬었다. 남들은 모르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너만 빼고 다 알아보는 너만의 감정표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알아채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던지. 갑자기 울컥해지는 마음에 나는 잠깐 고개를 위로 들었다가 너를 보았다. 확신으로 가득 찬 눈동자. 이겼다. 나는 한 점차로 뒤쫓아 오는 상대의 타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그렇게 생각하고 마스크 속으로 미소를 감췄다.

 

 왜냐면, 네가 있으니까.

 

 힘이 잔뜩 들어간 타자 탓에 생각보다 적은 투구 수로 아웃을 잡아낼 수 있었다. 타자는 너의 공에 손도 대지 못했다. 그만큼 교묘하고도 깔끔한 공이었단 뜻이다.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너. 당장이라도 마운드로 달려가 너를 끌어안고 싶었으나 너는 이미, 내야수들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너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재주가 있는 틀림없는 에이스야.

 아, 네가 내게로 달려온다. 마스크를 벗는 나에게 네가 달려온다. 네 얼굴에 가득 담긴 기쁨이 네게로 오롯이 스며든다. 내 앞으로 온 네가 웃음이 가득한 입가에서 목소리를 뱉어낸다. 웃음기 담긴 목소리. 실로 오랜만에 보는 너의 그 모습. 나는 그것을 보고 싶어서 더욱 이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 이겼어, 아베군!”

그래. 수고했어.”

 

 목구멍에서만 맴돌고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 말을 끄집어내어 네게 보여주고 싶었다. ‘고마워.’ 단 세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차마 나오지 않는 말. 바보같이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던 나는 그저 너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내 쪽으로 조금 더 세게 잡아당기는 것으로 표현을 그만 두었다. 힘없이 내게 딸려오는 너. 네가 나를 바라본다. 승리에, 희망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가 나를 담는다. 네 눈동자 안에 나는 무슨 모습으로 비춰져 있을까.

 

, 아베군, !”

?”

 

 네가 내게로 손을 내민다. 말뜻을 알아들은 나는 급하게 글러브를 벗어 네 손에 맞댄다.

 

아베군, , 따듯, .”

 

 어느 새 말랑해진 손가락들이 너와 나의 눈높이에서 맞닿았다. 그와 동시에 얽히는 시선. 함성으로 가득 찬 경기장이 순식간에 진공상태가 되었다.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더디게 갔으면, 더디게 갔으면.

 

이긴, , 다 아,아베군, 덕분이야.”

 

 너는 경기가 끝나면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던 나는 이제야 그 말뜻을 알았다. 이제야. 실없이 칭찬하는 말이 아닌, 진정한 존경을 담은 너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가슴이, 머릿속이 경기장을 비추는 햇살과 같이 찬란하게 부서져 내렸다. 나는 그 말을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을까. 얼른 대답해야 하는데. 저마다 나오려고 하는 단어들에 결국 입 안이 잔뜩 막혀 나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하려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없어지는 너.

 

--!”

최고야!”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와 사랑을 받는 너. 나는 비록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해줄 수 없는 표현들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해주었으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단 둘의 공간에서 단 둘의 대화를 통해 너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일까. 너의 존경으로서의 칭찬에 비하면 나의 마음은 너무 속된 것일까.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경기가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좀체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 * *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은 경기가 끝나고 지쳐 잠든 선수들을 위해 깜깜하게 커튼이 쳐져 있었다. 모두는 저마다의 자세로 곯아떨어져 있었다. 나 역시 무언가가 눈꺼풀을 잡아 내리는 듯 피곤했으나 억지로 눈을 크게 뜨며 버텼다. 왜냐하면, 네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창가 쪽으로 고개를 꺾고 잠든 네가 색색거리를 숨소리를 낸다. 너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오늘 경기를 다시 한 번 재생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너의 꿈에 등장하는 나는 너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결 이어서였는지, 승리에 취한 기쁜 마음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힘없이 내 옆에 놓여 있는 너의 손에 나의 손을 갖다 댔다. 손가락을 살짝 벌려 내 손을 깍지 끼우자 너의 손이 말랑하게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마디마디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굳은살에 울컥한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단단한 손과는 다르게 세상모르게 잠든 네 얼굴이 너무 평화로워서,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만, 네 뺨에 입이라도 맞추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달아오르는 얼굴. 고요한 버스 안에 나의 심장소리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내 손에 부드럽게 감겨있는 네 손의 감촉이 너무 좋아서, 나는 손을 뺄까 말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혹시라도 네가 깰까봐 손을 빼고 싶으면서도,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해서 빼고 싶지 않은, 그런 말 그대로 복잡한 마음.

 어디쯤 가는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버스 안에서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차마 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하려고. 너의 손을 잡고, 나의 진심을 말하려고. 네 손을 잡은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마워.”

 

 나는 항상, 너에게.

 

좋아해.”

 

 포수로서가 아니라, 아베 타카야로서.

 

 고요한 버스 안에서 듣는 이 없는 고백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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