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Big Wind-up!

[하루아베] Gloomy Monday 본문

오오후리

[하루아베] Gloomy Monday

승 :-) 2015. 4. 23. 15:42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하루아베] Gloomy Monday

 

 

1. 피그말리온 효과

 

헤어져요, 우리.”

 

 입 밖으로 줄달음친 단어가 그대로 뇌리에 박혀 파스스 흩어지는 그 순간 그의 이마에 핏대가 불뚝 섰다. 저 얼굴.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겠다는 저 얼굴이 나는 늘 무서웠다. 지금도, 사실은 무서우면서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와 나는 완전히 떨어진 관계이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 진짜.”

 

 거칠게 올라간 손에 움찔하고 한쪽 눈을 감았으나 그 손은 그의 뒷머리에 가 있었다. 아직 덜 마른 뒷머리를 탈탈 턴 그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가득 담긴 나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가. 두려움? 무서움? 혹은 허탈함?

 

 만족감?

 

그거 말하자고 머리도 안 말린 사람을 나오라고 한 거야?”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사실 이렇게 거부당한 이별 통보가 몇 번인지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안 돼. 싫어. 단 두 마디로 거절당한 나의 의견에 나는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많은 사랑하는 이들 중 누구나가 그렇듯이 이별 통보는 좀 더 나를 사랑해달라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조금 더 나를 사랑해 줘요. 나를 보살펴 줘요. 나를 돌아봐 줘요. 나는 끝없이 되뇌었고 그것은 곧 안 좋은 방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잦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말을 한 적도 있었다. 헤어져요. 싫어. 헤어집시다. 안 돼. 헤어지면 어떨까요. 싫어. 단 두 마디의 반복이 마치 진자에 매달린 추처럼 끊임없이 우리 둘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마치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그것은 어느 정도의 효력을 갖고 있었다. 헤어지기 싫어도 계속해서 그 말을 하다보면 어느 새 그와 나를 더 이상 애인이 아닌 남으로 보게 된다.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까, 아마 맨 처음 잘못된 방향으로 그에게 애정을 갈구했을 때부터 아니었을까. 애초에 시작을 잘 매듭지었더라면 지금처럼 모든 감정의 실이 엉켜 엉망이 되진 않았을 텐데. 약간의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둘 사이에 대한 조금의 후회. 아주 조금의,

 마치 지금 내 앞 테이블에 떨어져있는 물방울처럼. 얼음이 담겨있던 컵은 뚝뚝 눈물을 떨궜고 나는 그것이 마치 내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입이 썼다. 보다 못한 나는 냅킨을 가져와 컵의 표면을 정성스레 닦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다시 표면에 물방울이 맺혔고 나는 그 행동을 반복했다. 일정 시간 이상 정적이 흘렀고 그 동안 나는 컵의 물기가 생길 때마다 닦아내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본 그가 짜증이 치밀었는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언제나 내 손목을 휘감고도 남을 정도로 큰 손이었다. 왼쪽 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손으로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것이 조금 감격스러워 나는 또 허탈하게 웃었다. 당신도 아는 모양이지, 지금의 내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그는 급한 상황에만, 혹은 중요한 상황에만 왼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야구에 있어서도, 실생활에서도 같았다.

 짜증이 가득 담겨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나는 얼굴을 펴고 웃었다.

 

장난치지 마.”

 

 그가 으르렁 거리면서 말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어 뺨 쪽에 근육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었다. 이를 악물고 피칭을 하는 그 모습. 단단하게 맞물린 어금니. 나는 그것에 반해 약 3년간의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그의 얼굴에서 나의 과거를 보았다. 힘들고 힘들고 힘들었던 지난 나날들이 스쳐지나가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황급히 시선을 떼었다. 그러자 그가 이제는 잡았던 내 손목을 자신의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타카야.”

 

 나는 몸을 움찔했다. 그가 나를 그렇게 불러줄 때면 나는 마치 혀에 닿는 솜사탕처럼 녹아버렸었다. 그 어떤 감정의 반목도 그대로 사라질 만큼 그 자리에서 그대로 녹아버렸었는데, 그러나 지금의 나는 꽝꽝 얼어붙은 감정의 냉골 안에 갇혀있었고 그가 아무리 피나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려도 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내가 미안해.”

 

 웃음이 나왔다.

 

미안하면 그러지 말았어야죠.”

 

 왜 그랬어요. 나는 덜덜 떨리는 턱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우스꽝스럽게 허공에서 부서져 내렸다.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그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자신의 잘남을 표출하기 위한 무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나는 그와 내가 동등하게 같은 무대에 서서 함께 박수를 받고 손을 잡고 내려오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단지 무대를 꾸며주는 보조역할에 불과했다. 커튼콜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무대 밑에서 묵묵히 그를 향해 밝은 조명을 비춰주는 일 따위를 하는 보조자. 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슬프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1. 누구나 아픈 것은 두렵다

 

.”

 

 그의 공은 받으면 받을수록 무서웠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힘이 붙은 그의 공은 타자가 때리기 어려운 공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포수가 받아내기 가장 까다로운 공이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에 입단하면서 나는 단 한가지의 계약조건을 걸고 들어갔다.

 

하루나 모토키의 공을 잘 받아낼 것.’

 

 그 때는 그것이 부당한지도, 혹은 나에게 불리한지도 몰랐다. 나는 프로에 들어간다는 것에 기뻐했고 당시 나와 만나고 있었던 모토키 선배와 함께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그것에 직접 내 손으로 사인을 마쳤고 그렇게 지옥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모토키 선배와 그라운드 안에서 바라보는 그는 또 달랐고 마운드에서 직접 바라보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프로에 입단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와 하는 통화가 즐거웠고 주말에 잠깐 그의 공을 받는다는 것이 행복했다. 밥 먹었냐는 문자에 답장이 없어도 바쁘겠거니 생각했고 저녁 즈음 단답형의 답장이 날아와도 나는 웃었다.

 

 그러나 입단한 뒤로 나는 그의 모습에서 언뜻언뜻 광기를 보았다. 광기와 더불어 너무나 나태한 모순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그가 내가 아는 하루나 모토키가 맞는지 의심스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운드에서는 다른 포수에게, 특히 나에게 완벽할 정도로 자신에게 맞추는 사인을 요구했다. 그것이 옳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직 그에 대한 사랑만으로 그의 피칭에 응했고, 그것은 곧 안 좋은 방향으로 발현되기 시작했다.

 공에 맞는 것은 일상이었고, 뒤로 빠지던 옆으로 새던 나는 그것을 몸으로 막아야만 했다. 150km가 넘는 구속의 직구를 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두렵다. 특히, 타자의 배트에 살짝 맞아 공이 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은 특히 그랬다. 그러나 나는 꽤나 성실히 그것을 받아냈다. 그것이 성공할 때마다 나의 머리 위에 올라오던 그의 커다란 손을 잊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단지 그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하찮은 이유 탓에 나는 고통을 이겨내면서까지, 몸의 고통을 무시하면서까지 그의 공을 받았다. 그 땐 그것이 즐거운 생활인줄로만 알았다. 멍청하게도.


 나는 무식하게 노력했다. 내가 야구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느꼈던 그의 커다란 손의 감촉을 잊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말도 안 되는 가시밭길을 선택했고 나의 여린 살을 그라는 태양에 전부 노출시켰다. 내가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러나 그의 광기는 내가 공을 받아내지 못했을 때 나타났다. 온갖 폭언과 위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다른 모습에 나는 겁에 질리면서도 그의 그런 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경기에 졌으니 화가 나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누구나 아픈 것은 두려운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나 여유롭고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 나는 혼란을 느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 그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 시작했던 때가.

 

 그는 포수로서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아베 타카야라는 애인으로서의 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이 정해져있다고 느꼈지만 애써 그것을 철저히 외면했다. 마치 가위바위보에 졌음에도 그 결과에 굴복하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유치하게도 현실을 외면했고 더더욱 그에게 매달렸다.

 그런 생활이 계속될수록 그는 나에게 지친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고 그 모습에 나는 스스로를 더욱 옭아매고 다듬었다. 모토키 선배에게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된다. 라고 스스로를 단속시켰지만 그 때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또 다시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고 있었고 그는 단 한마디의 말로 나의 마지막 애정갈구를 잘라냈다. 안 돼. 싫어.

 그 모습에 묘하게 안도감을 느꼈던 내 자신이 미친놈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허황된 꿈을 달콤한 사랑이라 믿은 채 그와 함께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했던 과거들이 모두 미친 짓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이제, 나만의 피그말리온에 혈색이 도는 것을 느꼈고 이윽고 그것이 무겁게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2. 영원 회귀

 

 한참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헤어지자는 말 밖에 다른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고 그는 별다른 변명을 할 수 없어서였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자기 전마다 내가 이렇게 진지하게 헤어지자고 말하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해왔었다. 지금 보이는 반응은 나의 모든 지난 상상을 비웃듯 허무한 것이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그저 테이블 위의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허탈해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할 말 없으면 갈게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 일도 티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같은 구단이라 필연적으로 마주치고, 배터리로서 수많은 만남을 이룰테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나와 사귀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티내지 않았듯이, 이별 역시 아무에게도 티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우리 둘의 3년간의 짧은 만남이 없었던 것으로 영원 속에 허물어져 갔으면 좋겠다고.

 나는 몸을 일으켰고 그가 그런 나를 보고 급하게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 그리고 말해줘.”

 

 우스꽝스런 변명이고 이 상황을 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 여러 감정들이 얽혀있는 것이 보였다. 차라리, 슬픔이라던지 두려움 등의 단 한가지의 감정이었다면, 나는 그에게로 다시 돌아갔을까. 지금 그의 눈빛에선 잔뜩 복잡하게 엉켜있는 감정의 실을, 어디에서부터 풀어낼지 엄두조차 낼 수 없어 아예 포기해버리고 마는 감정까지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헤어져요.”

 

 망설임 없이 나는 관계의 끝을 선고하는 말을 내뱉었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맑은 공기 속에 타들어가는 피부를 다시 물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자유를 되찾은 금붕어처럼 나는 그렇게 그라는 태양이 없는 어둠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오오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베미하] 9회 말 투 아웃 (전력 60분)  (0) 2015.10.03
[카노루리] 여름날  (0) 2015.07.30
[모토타카] 봄의 왈츠  (0) 2015.03.24
[모토타카] 속죄(贖罪)  (0) 2015.02.17
[하루쥰하루] 달밤  (0) 2015.02.1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