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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미하] 오오후리 전력 60분, '뒤를 돌아봤을 때 너는' 본문

오오후리

[하루미하] 오오후리 전력 60분, '뒤를 돌아봤을 때 너는'

승 :-) 2015. 12. 12. 23:38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yQQNP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오후리 전력 60, ‘뒤를 돌아봤을 때 너는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나와는 다른 강속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미트에 꽂혀 울리는 소리에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복잡한 감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부럽다. 저렇게 되고 싶다. 저 사람이, 최악의 투수? 라는 생각과 동시에 멋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한 쪽 마음을 물들여 가서, 마운드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고개를 들어 마운드를 쳐다보면 그가 있다. 경기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가 서 있다. 그리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모습으로 제일 멋진 공을 던진다.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는 오롯이 그에게로 향한다.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 멋지다.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마운드 위의 나는 저 사람처럼 카리스마를 내뿜지도, 그 자체로 에이스라는 기운을 풍기지도 않는 그저 느린공의 투수일 뿐이다. 야유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지금이야 아베 군이 사인을 주어서 그나마 아웃을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베 군이 사인을 주지 않는다면 그저 쓸모없는 투수일 뿐인데. 그에 비해 하루나 모토키라는 투수는 너무나 멋있었다.

 

 그래. 그에 대한 첫 인상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이었다.

 

 

 

 

[하루미하] 닿을 수 있어

 

 

 

미하시. 어제는 잘 잤어?”

 

 수분 섭취는? 배고프진 않고? 스트레칭은? 타카야의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많아진 걱정이 귓가를 울린다. 하나하나 열심히 대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쩐지 정신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곳과는 다른 듯한 공기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조금이라도 오래 이 곳과 함께 있고 싶었다. 왜냐하면, 여기는 갑자원이니까.

 갑자원 구장에 들어가자 똑같은 흙과 잔디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냄새가 나는 그곳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운데-보다는 조금 앞쪽-에 위치해 있는 마운드가 보인다. 내가, 있어야 할 곳. 다른 곳은 보이지 않았다. 딱히 햇빛이 그쪽만 비추는 것도 아닌데 나는 갑자원의 마운드에 눈길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그 동안 그저 꿈같은 소리라고 생각했던 갑자원이라는 무대에 지금 니시우라 야구부가 서 있었다. 모두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한 마디씩 내뱉었다. “, 여기가 갑자원이구나. 관중석에서 관람할 때랑은 다르네.” 신타로. “으아, 벌써부터 떨려. , 아니. 이러면 안 되지. 다들 오늘 집중하자.” 하나이. “화장실 다녀와도 돼?” 유우토. “너는 아직도 화장실 타령이냐. 미하시, 불펜부터 가 보자.” 타카야. 아무 말 없이 집중하고 있는 코우스케와 유이치로, 카즈토시, 쇼지까지 모두가 갑자원에 함께 왔다.

 우리와 상대할 학교는 J학원이라고 했다. 이제까지 갑자원 우승을 총 5회나 했으나 올해에는 갑자원에 진출한 학교 중 최약체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도 만만치 않게 저평가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분석을 하고, 훈련을 했다.

 거의 한 달 전부터 특훈을 했기 때문에 타자가 좋아하는 공, 보통의 타율, 그리고 배팅 습관까지 전부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 어느 때보다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니, 이겨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기고 와.’

 

 이제까지 나는 이기고 싶다는 것에 대해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왜 이기고 싶어? 라는 질문에 대해, ‘팀원들과 오래 야구할 수 있어서?’ 라고 확신 없는 대답을 했을 것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왜 이기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단지 저 한 마디 때문에. 갑자기 가슴 한 쪽이 싸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무사시노는 갑자원에 오기 전에 탈락하고 말았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모토키 선배의 폭투 때문에. 갑자원을 위해 무리했던 팔꿈치가 말썽이었다. 그 이후로 모토키 선배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찾아간 병원에서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이기고 오라고.

 

너는 이길 수 있어.’

 

 왜냐면 너는 너만의 무기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웃는 선배의 표정이 애처로워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울고 싶은 사람은 난데, 너는 왜 우냐?’ 침대 끝에 앉아 훌쩍이던 나를 오른손으로 살짝 잡아끌며 선배가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얼른 나아서, 같이 야구를 하자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무책임해. 바보 같아. 내뱉어 놓고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위로에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나,

 

이기고 오면 해 줄게.’

 

 그 말에, 나는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고, 아베가 지시하는 것에도 잘 따랐고, 누구보다 J학원의 배팅 영상을 자주 돌려보았다. 이기기 위해서. 선배를 위해서. 영상을 계속해서 복습하면서, 머릿속에선 내내 무사시노와 붙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마운드에 서 있는 선배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그 경기라면 이기고 지는 것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팀을 위해서는 오히려 이게 잘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내딛은 발걸음에는 어느 때보다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모자를 벗어 챙 안쪽을 보았다.

 

이겨라.’

 

 모토키 선배가 흰 색 마카로 쓴 글씨가 보였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다시 모자를 꾹 눌러 썼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 선배는 왔을까? 어제 메일을 보냈을 때 선배는 답장이 없었다. 일찍 잠들었나,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메일을 보내지도 못했다.

 나라면 오고 싶었을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밟는 마운드를, 그저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싶었을까? 그것이 하루나 모토키 선배라면, 나는 아마 기꺼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실수로 오지 못한 갑자원, 그리고 부상까지 얻은 상황에서 선배 성격이라면 분명 분해서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잠들었던 것이 어제 밤.

그러나 관중석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해놓고 결국은 이렇게 제일 먼저 선배를 찾고 있었다.

 

미하시. 웜 업해야지.”

 

 그리고 이어진 웜 업에서, 나는 새까맣게 그의 존재에 대해 잊고 경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이기면 돼. 이겨서 선배에게 돌아가야지. 정해져 있는 답이 하나로 모인 내 머릿속은 더 없이 차분해졌다.


 이제, 드디어 갑자원이다. 1차전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는 갑자원의 흙을 밟았다.

 

 

 

* * *

 

 

 

오늘은 다들 정말 잘 해줬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경기가 끝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우승한 것도 아니다. 이제 겨우 막 1차전이 끝났을 뿐이지. 오늘은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지만, 내일부턴 뭘 해야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겠지?”

!”

 

 

 다들 흙을 뒤집어쓴 채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쿨 다운이 끝나고, 우리는 가방을 둘러매고 지친 몸을 이끌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세 시간, 연장 10회까지 간 경기에 모두들 입도 뻥끗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쿨 다운을 했음에도 팔꿈치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태워다줄까?”

 

 유이치로가 말했다. “형이 데리러 왔거든.” 그 말에 나는 차에 올랐고, 그 뒤론 기억이 없었다. 승리를 자축할 틈도 없이, 유이치로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일어난 것은 타지마의 형이 나를 깨웠을 때였다. “미하시 군, 집 앞이야.” 그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꾸벅 인사를 했다. 유이치로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 합니다!”

 

 조용히 말하고 나는 차 문을 살살 닫았다. 자고 일어난 탓인지 조금은 피로가 가신 것도 같았다. 평소라면 어머니가 오셨을 테지만, 그저께부터 이어진 지방 출장에 오지 못하셨다. 미안해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활약한 경기를 누군가 봐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다.

 

!”

 

 머릿속에 누군가 빠르게 떠올랐다. 모토키 선배, 경기 봤을까? 왔을까? 혹시 내가 두고 온 건 아닐까? 선배는 나를 기다렸을까? 정리되지 않는 생각에 집을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던 나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멍하니 뭐 하냐?”

 

 반사적으로 돌아간 고개의 끝에는 선배가 있었다.

 

,!”

 

 보호대를 차고 있는 왼쪽 팔에 나는 또 다시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아서 나는 말을 할 수도, 발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팔꿈치는 어때요? 내 경기는 봤어요? 이겼는데, 봤어요? 쏟아내고 싶은 질문을 간신히 억누른 채 선배를 보았고 선배가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봤어.”

 

 그리고 그 한 마디에 나는 어쩐지 감정이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뿌옇던 눈앞이 단숨에 깨끗해지고, ,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점을 찍었다.

 

이겼으면서 뭘 울어.”

 

 네. 이겼어요. 이제 선배랑 야구할 수 있어요. 얼른 나아서 같이 야구해요. 하는 말들을 차마 내뱉을 수가 없어 나는 그저 고개만 크게 끄덕였다.

 

, 갑자원 1차전 승리. 대단하네.”

 

 선배가 말했다. 어쩐지 쓸쓸한 목소리여서 나는 선배에게로 다가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점점 네가 멀어져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말에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무슨 말이에요? 되물어보지도 못한 채 나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방울들을 떨어트려댔다.

 

나는 이 모양인데.”

 

 선배가 왼쪽 팔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에요!”

 

 나는 한 걸음 다가섰고 선배는 한 걸음 물러섰다. 선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선배는 몰라요.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이 오늘만큼 야속한 적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닿을 수 없을 만큼 네가 멀어진 것 같아서 두려워.”

 

 나를 뒤로 하고 멀리 떠나가 버릴까 봐. 그 말에 나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단호한 발걸음으로 선배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늘어져 있던 그의 오른손을 잡고 내 손에 마주 대었다.

 

,을 수, 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배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

,, ,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 주세요. 라는 의미의 말을 하고 나는 주저앉아 울어 버렸다. 선배는 생각지도 못했단 표정을 하곤 같이 쭈그리고 앉아 나를 달랬다. “잘못했어. 그런 말 하지 않을게.” 연신 눈물을 닦아내는 손이 오른손이라 나는 더 울었다.

 

그러니,, 얼른, ,아요!”

 

 평소와는 달리 조금은 화난듯한 나의 목소리에 선배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보통 때의 선배 같아서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미안해.”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선배가 말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 정말 끝내주더라. 4번을 삼진으로 두 번이나 아웃시킨 건 정말 대단했어.”

……!”

 

 급하게 화제를 돌리려는 모습에 짐짓 인상을 쓰고 선배를 바라보려고 하는 순간,

 

다음 경기는 직접 보러 간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선배를 끌어안았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선배도 나도 뻣뻣하게 굳었고 곧 어색하게 떨어졌다. 우리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둘 다 입만 뻐끔거리다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 , 그러니까 다음 경기도 이겨. 지면 야구 같이 안 해준다.”

,, ,번만, ,기면!”

기왕 올라간 거 우승은 해봐야지 않겠냐.”

 

 선배가 씨익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나 이제 가봐야 해. 병원에 말 안하고 몰래 왔어.”

.”

경기 끝나자마자 있는 대로 눈치보다 도망쳐서 너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죽는 줄 알았다. 갈게. 오늘은 푹 쉬어.”

 

 유이치로가 태워다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했으려고! 오는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동안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까?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선배가 발걸음을 돌렸다. 선배의 등이 보인다.

 

 선배가 뒤를 돌아본다면, 나는 항상 여기 있을 거예요. 선배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나는 내내 집 앞에서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항상, 여기에.

 

다음, ,기도, 이겨,, !”

 

 혼자 중얼거린 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쓰러져 아무것도 못한 채 잠이 들었고 어렴풋이 들리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우승까지 힘 내. 오늘 승리 축하해.’

  

 발신인, 모토키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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