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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공한셈] A Wonderful Day 본문

레트로봇

[또봇/공한셈] A Wonderful Day

승 :-) 2015. 12. 28. 14:06


RT이벤트에 당첨 되신 21ra님의 리퀘입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지루하다.

 

 수학은 완전 젬병인데. 자기가 안보는 사이 칠판 가득 적힌 수식들을 보며 권세모는 완전히 책상에 엎드려버리고 말았다. 엎드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한 군데에 꽂혀있다. 목적, 그러니까 이건 목적 때문이라니까. 권세모의 시선 끝에는 한 남학생이 걸려 있었다. 열심히 필기를 받아 적는, 수업시간에 조는 것이라곤 본 적도 없는 그런 모범생. 권세모의 외모나 수업태도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명령이어서 쳐다보는 것뿐이야. 어쨌든 수행해야 할 목적이 있으니까. 그럼 그럼. 권세모는 이제 본격적으로 소년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쪽 팔로 턱을 괴고, 마치 예술품을 구경하는 양, 시선을 거두지 않고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칠판을 쳐다봤다가 잘 모르겠다는 듯 연필로 머리를 긁적이기도 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조금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권세모는 그 생각을 한 순간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그러나 슬금슬금 다시 돌아가는 고개는 멈출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곳에 시선이 머물렀는데, 정확히 소년을 가운데 두고 반대편에 앉아 있던 다른 남학생이었다. 권세모와는 달리 조금은 연한 인상의, 그러나 결코 만만치는 않아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주근깨가 눈에 띄는 남학생 역시, 가운데의 소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독고오공.’

 

 그 때는, 그래 그런 줄 알았지. 회장님의 본부를 지독하게도 잘 지키는 놈이라고, 너도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또봇/공한셈] A Wonderful Day

 

 

 

세모야, 오공아!”

 

 차하나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교실 문을 걸어 나오는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업 태도가 불량한 탓에 둘은 종종 교실 청소를 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벌점이 쌓여 출석 정지를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세모와 독고오공 모두 출석을 정지당하면 곤란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물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수행평가를 내지 않거나,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둘이 수업시간에 하는 것이라곤 차하나를 쳐다보는 일이었다. 그게 그들의 임무였고, 그렇기 때문에 둘은 아무 죄책감 없이 수업시간 내내 차하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차하나는 아는지 모르는지, 칠판과 책만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게 어찌나 망충해보이고 귀엽던지.

 

, 하나야.”

 

 둘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청소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

 

 환하게 웃는 차하나를 본 둘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이제 가자!” 하고 둘의 손을 붙잡은 하나가 신이 난 듯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내일부터 수업시간에 자면 1년 동안 네 숙제 대신 해준다.”

나도.”

 

 둘의 소곤거림이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차하나는 여전히 둘의 손을 잡고 거의 끌다시피 교문 앞에 주차되어 있는 세단으로 다가갔다. , 이거 곤란한데. 권세모와 독공이 다른 한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큰 손 아래 숨겨져 있는 얼굴은 잔뜩 빨개져 있었다.

 

 차하나의 특징은, , 그러니까. 스킨십이 많다는 거였다. 그게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훅 들어와서, 차하나를 모신1년 반이 지났지만 독고오공과 권세모는 여전히 적응할 수 없었던 탓에 얼굴을 붉히곤 했다. ‘누군 먼저 건드리지도 못하는데.’ 다른 얼굴을 하곤 같은 생각을 한 둘은 조금만 더 하나의 손을 붙잡고 있기로 했다.

 늘 앉던 대로 권세모는 조수석에, 차하나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독고오공은 그런 차하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권세모와 독고오공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차하나는 뒷좌석의 왼쪽과 오른쪽에 상관없이 앉곤 했으나, 그들이 오고 나서는 이 포메이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너를 제일 안전한 자리에 배치하는 건 당연한 건데. 멍청한 것들. 차하나의 이야기를 들은 독고오공이 조용히 혀를 찼다.

 

너희 수행평가 했어?”

 

 침묵. 독고오공과 권세모는 말이 없었다. “?” 차하나가 한 번 더 되묻자 그제야 꾸물거리며 대답들이 기어 나온다. 어엉. 마뜩찮은 대답에 차하나가 짐짓 인상을 쓴다.

 

너희가 자꾸 수행평가 안하고 그러니까 선생님들한테 혼나잖아.”

 

 딱히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권세모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꿀꺽 삼켰다. 독고오공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 하나야. 앞으로는 열심히 할게.” 그러자 차하나가 독고오공의 손을 잡았다.

 

내가 도와줄게.”

 

 백미러로 그 모습을 흘긋 본 권세모의 눈썹 한쪽이 슬쩍 들렸다. 다음엔 꼭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야겠다는 다짐을 하던 와중 집에 도착했고, 권세모는 늘 하던 대로 먼저 문을 열고 나가 차하나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

 

이렇게 까진 안 해줘도 된다니까.”

 

 

* * *

 

 

 

 권세모와 독고오공이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다시 고등학교를 들어가기로 맘먹게 했던 것은 의뢰인의 사진 한 장이었다. 같은 회사에 있었던 둘은 수십 명의 경쟁자를 뚫고 당당하게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 권세모는 체력 점수에서, 독고오공은 상황 판단 점수에서 각각 일 등을 차지한 수재였으나,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던 차 회장의 집을 선택했다. 동료들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너네 정도 스펙이 왜 그쪽으로 가? 권세모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독고오공만이 씨익 웃으며 지나갔다.

 그리고 만나게 된 차회장이 제시한 조건은 딱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차하나에게 자신이 경호원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 것. 두 번째, 친구처럼 대해주며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줄 것. 이 두 가지만 지켜준다면 차하나가 결혼할 때까지 전속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 차회장의 계약 조건이었다. 둘은 얼굴만 보고 무작정 왔는데, 그럼 적어도 십 몇 년은 여기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거야? 하고 고개를 갸웃했으나,

 

, 안녕?”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차하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계약하겠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라고 동시에 이야기 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년 과정을 이미 마쳤던 그들은 마치 차하나의 집에 하숙하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들인 척,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내내 차하나만 바라보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차하나의 성격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독고오공이었다. 독고오공이 바라본 차하나는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착한, 누구에게나 상냥한 아이였다. 그러나 가끔씩 드러나는 차하나의 본모습은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서, 독고오공은 흠칫 놀랄 때가 있었다. 누구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였지만 독고오공은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 심리전에 특화되어 있던 독고오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련님. 시험은 잘 보셨어요?’

, ! 당연하죠!’

두리 도련님은 어제 시합에서 두 골이나 넣으셨대요.’

정말요?’

. 회장님도 참 좋아하셨어요.’

 

 눈치 없는 노인네. 나불거리긴. 독고오공이 백미러로 흘긋 기사를 쳐다보았다. 차하나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뒤로 독고오공은 왜 차회장이 차하나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본인들이 차하나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거면서, 집 안에만 들어오면 고슴도치처럼 몸을 숨기는 차하나 때문에 애를 먹는 차회장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그저 사춘기는 지난 것 같은데 왜 저러지 싶어 우리에게 떠밀었겠지. 독고오공은 입이 써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열심히 수업을 듣던 차하나가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을 보더니 입을 모아 숨을 후 뱉고는 손가락으로 엑스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한숨 쉬지 말라는 뜻인가. 독고오공은 방긋 웃어보였다. 차하나 역시 방긋 웃고는 다시 칠판으로 고개를 돌려보였다.

 

큰일 난 건 내 쪽인 것 같은데.’

 

 독고오공이 빨개진 뺨을 숨기기 위해 차가운 책상에 얼굴을 대었다. 책상 끝과 맞닿아 있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 * *

 

 

 

 경호원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사적인 감정의 배제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에 다니면서, 내내 배웠던 것이었다. 셋이 언제 같이 보러 갔던 K 영화를 보고 나서, 차하나는 어떻게 같이 키운 개까지 죽이라고 할 수가 있어? 하고 툴툴거렸지만 권세모와 독고오공은 별 말이 없었다. 그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둘의 경우라면 아무 망설임 없이 동고동락한 개에게 총을 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사적인 감정의 개입은 경호원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었다.

 차하나가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한 날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차하나는 티를 안낸다고 애를 썼지만 흘러나오는 흥얼거림은 막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권세모와 독고오공은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었다. 그렇게 바라던 전교 1등이었다. 그렇게 자면서 하라고 해도 한 달도 더 전서부터 새벽까지 스탠드를 켜놓고 공부를 하던 차하나였다. 그 모습을 지켜봐왔기에 더욱 값진 전교 1등이었다. 차하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회장의 서재로 달려갔다. 둘도 뒤를 따랐다.

 

아빠!”

하나 왔니?”

, 이번 시험 전교 1등 했어요!”

그래? 정말 잘 했구나. 아빠는 내일이 두리 시합이라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밥은 아주머니가 차려 주실 거야.”

, .”

 

 독고오공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챈 순간 온몸의 힘을 풀었다. 쓸데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옆을 바라본 순간 온몸으로 적대감을 표출하는 권세모가 보였다. 팔꿈치로 툭 치자 그제야 고개를 살짝 흔들고 표정을 고치는 권세모를 본 독고오공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오공아, 세모야. 내가 없는 동안 하나 잘 봐줄 수 있지?”

.”

.”

부탁한다.”

 

 나가보라는 손짓을 보고 셋은 한꺼번에 서재에서 빠져나왔다. 그 아무도 차하나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차하나의 어깨를 향해 권세모가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손짓으로 권세모의 손을 쳐낸 차하나가 저도 놀란 듯 권세모를 쳐다보았다.

 

, 미안.”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차하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일종의 말버릇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독고오공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를 달고 다니던 자신의 과거가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전교 1등은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축하해!” 권세모가 아무렇지 않게 말한 뒤 차하나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에 차하나의 어깨가 더욱 쳐졌다.

 

신경 쓰지 마.”

 

 독고오공이 차하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려던 손을 허공에서 끌어내린 채 나갔다. 오늘처럼 경호원이라는 신분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독고오공이 차하나의 방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하나야, 들어가도 돼?”

 

 침묵.

 

 독고오공은 조심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침대에는 차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소리가 안 나게 문을 닫은 독고오공이 차하나에게로 다가갔다. 울다 방금 잠들었는지 관자놀이와 콧대에 아직도 눈물길이 나있었다.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문 독고오공이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울다 지쳐 세상모르게 잠든 차하나를 보자니 자신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눈물조차 닦아줄 수가 없어서 독고오공은 더 울고 싶었다.

 

꼭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어.”

 

 중얼거린 독고오공이 다시 얌전히 밖으로 나갔다.

 

 

 

* * *

 

 

 

 시험기간은 다시 돌아와 교실은 학생들의 학구열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단 두 사람만 빼고. 독고오공과 권세모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차하나. 둘은 귀마개를 꽂고 열심히 문제를 푸는 차하나를 아예 턱까지 괴고 관람하고 있었다. , 역시 의뢰인 기가 막히게 골랐어. 생긴 건 달라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둘이 차하나의 뒷통수께로 마주친 시선에 이번에는 똑같이 인상을 썼다.


차하나 어깨도 못 만져본 새끼가.’

지도 만지려다 못 만졌으면서.’

…….’

 

 킥킥거리며 독고오공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권세모는 괜히 독고오공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게 되었다. 사각사각 들리는 연필 소리 속에서 둘의 입이 계속해서 뻥긋거렸고 결국 교실 뒤로 쫓겨나게 되었다. 수업 시간이 끝날 까지 서 있던 그들에게 차하나가 다가왔다.

 

그러게 왜 떠들어서 쫓겨나고 그래.”

 

 차하나가 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전혀 다른 둘이었지만 이렇게 차하나의 손길이 닿으면 똑같이 반응하는 모습이 볼만 했다. 빳빳하게 굳은 둘은 차하나가 자리로 되돌아갈 때까지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음 수업이 시작되고, 두 남자의 경호활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교실의 그 누구도 둘이 차하나의 경호원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 다른 건 몰라도, 교실에 있는 전부가 그건 알고 있었다.

 

 저 덩치가 산만한 두 남학생이 차하나를 좋아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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