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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미유] 길 위에 흩날리는 추억 上 본문

다이에이

[후루미유] 길 위에 흩날리는 추억 上

승 :-) 2014. 12. 13. 01:48

 [후루미유] 길 위에 흩날리는 추억 上

 

 "하아~"

 

한숨을 푹 쉰 미유키는 더운 차 안의 공기에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아까 직장동료들과 함께 마신 술 한 잔 때문일 것이다. 창문을 살짝 열자 밤공기가 훅 하고 밀려왔다. 차가운 공기에 코끝이 약간 아린 것도 같았다. 바깥은 짧아진 해 탓에 벌써 어두워진지 오래고, 덕분에 미유키의 시야 안에는 빨간 정지등들이 더욱 선명하게 들어와있었다.
문제는 그 정지등들이 20분째 안 움직이고 있다는거다. 미유키는 좁아터진 차 안에서 몸을 쭉 뻗었다. 179cm의 크다면 큰 몸집이 그 작은 경차 안에서 시원하게 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노래라도 틀어볼까, 하고 라디오의 전원을 켰지만 나오는 말이라곤, "57분 교통정보입니다. 현재 서울 시내가 전체적으로 정체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곳곳에 내리는 눈 때문인 것 같은데요-" 등의 말 뿐이었다. 미유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라디오를 꺼버렸다.

"엑, 진짜 눈 오네."

바깥을 보니 어느 새 눈이 사근하게 내리고 있었다. 까만 밤에 흩날리는 눈발들은 아름다웠지만 이미 군생활과 사회생활에 찌들대로 찌든 미유키는 눈을 보며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저런 것들 어차피 다 쓰레기 밖에 더 되나... 또 차 엄청 밀리겠구만. 하면서 고개를 든 미유키는 순간적으로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아… 망했다."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빨간색 등은 자동차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미유키는 그 빨간 봉이 어둠 안에서 춤을 추는 짧은 시간 동안, 오만생각을 다 했다. 그대로 유턴해서 도망갈까? 아냐, 그러다 가중처벌 되면 어떡하지? 아 미친. 세상에. 이렇게 운이 안좋을 수가. 아니야, 단순히 불심검문일 수도 있잖아.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는 생각들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여대는지 미유키는 눈 앞이 뿌얘질 지경이었다. 미유키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지잉, 하고 창문을 올려 바깥과 안을 차단했다. 그러나,

똑똑-

"음주 검문이 있겠습니다."

야속한 목소리가 창문을 통해 한층 조그맣게 들렸고, 미유키는 창문을 열기 전 차 안의 모든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크게 숨을 쉬고 내뱉었다. 이렇게라도 알코올을 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할텐데. 그 와중에 다시 한 번 똑똑, 하고 손가락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미유키는 그 소리가 마치 저승에서 자신을 데리러 온 사자의 노크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 젠장. 망했다. 흡, 숨을 들이 마신 미유키는 천천히 버튼을 눌러 차창을 내렸다.

"음주검문입니다. 후 불어주세요."

고개를 들어 쳐다본 경찰은 기껏해야 스무살 정도밖에 안 되어보이는 앳된 청년이었다. 미유키는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고, 차 창문 밖으로 몸을 빼고는 말했다.

"하하, 꼭 해야 합니까? 제가 바빠서 가봐야 할,"

"그러실 시간에 불겠습니다. 불어주세요."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꽤나 강단있는 말투에 미유키는 머리가 아파왔다. 어째 제대로 걸린 것 같다.

"제가 진짜 바빠서 그래요. 한 번만."
"내리시겠습니까?"

으아! 미유키는 속에서 천불이 들끓었다. 맘 같아선 저 놈의 얼굴을 찰싹 때려주고 싶은데 지금은 철저하게 을인 자신의 위치 탓에 미유키는 모든 것을 참고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 번 더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그냥 불고 편하게 면허 취소? 아니, 겨우 맥주 500인데? 면허 취소정돈 아니지 않을까? 정지?

이윽고 철컥철컥, 하고 차 문 손잡이를 잡아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으로 차 대시고 문 여십쇼."

그리고 더 망했다. 아 거 사람 진짜 빡빡하게 사네! 한 번이라도 더 불응했다간 총이라도 맞을 것 같아 미유키는 결국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경찰과 마주 선 미유키는 생각보다 큰 경찰의 키에 놀랐다. 얼굴은 그렇게 앳되게 생겨놓고 뭘먹고 키가 이렇게 자랐나 모르겠네.

"불응하면 가중처벌되는거 모르십니까. 서로 가기 전에 부시죠."

미유키는 흘끗 경찰의 얼굴부터 스캔했다. 앳되보이기는 하지만 쭉 찢어진 눈이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연한 인상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호리호리한 몸이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았으나 그와는 다른 단호한 눈빛에 미유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망했다. 망했어.

"하나, 둘 셋 할 동안 후-하고 부세요. 그 동안 입 떼시면 안 됩니다."

진짜 깐깐하구만. 차라리 차로 슬금슬금 지나가면서 훅 불고 끝낼 걸 그랬다. 괜히 이런 딱딱한 애늙은이한테 걸려가지고, 미유키는 눈을 딱 감고 음주 측정기에 입을 대고 숨을 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됐습니다."

삐삐-하는 기계음이 들리고 미유키는 시선을 땅으로 떨궜다. 이러니까 진짜 범죄자 같잖아. 마치 지나가는 차들이 자신을 한 번씩 쳐다보고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게 진작 부시면 편하지 않습니까. 핀잔섞인 경찰관의 말에 미유키는 그러게 말입니다 이 새끼야. 라고 생각한 뒤 입이 씁쓸해 손을 들어 얼굴을 북북 문질렀다.

"0.48. 훈방조치합니다. 술은 드셨나보네요?"

훈방! 훈방이란 말에 미유키는 술이 번쩍 깨는 기분이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 미유키는 어쩐지 모든 것이 행복해보이며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술을 드시고 운전하시면 어떡합니까. 다음부턴 대리 부르고 운전하세요. 위험합니다. 혼자만 위험한게 아니라… 등의 잔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미유키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경찰관의 명찰을 쳐다봤다.

"후루야, 사토루."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경찰관이 예? 하고 반자동적인 대답을 했다.

"몇 살이에요?"
"그런건 왜 궁금하십니까? 훈방조치 되셨으니 귀가하세요. 다음부턴 대리 부르시고."

자기 할 말만 마치고 휙 뒤돌아 가는 그 뒷모습이 야속하리만치 단호했다. 긴 다리로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가는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미유키는 다시 자신의 차로 돌아가 엑셀을 밟았다. 다시는 이런 경험이 없기를. 꽤나 오래 시간을 끌어서인지 정체가 어느 정도 풀린 상태였다. 잘 나가는 구나, 잡혀있던 보람도 있네. 미유키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 * *


오늘 하루도 정말 엿같은 하루였다. 상사한테 깨지고 저녁엔 의자에 정강이까지 부딪혀 만신창이가 되었다. 김대리 개새끼. 미유키는 멍하니 컴퓨터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앞에 놓여있던 커피는 다 식은지 오래였다.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 미유키는 커피는 시킨지 10분 안에 마시자는 주의였다. 즉 미유키가 앞에 커피를 두고 식을 때 까지 남겨두었다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그 집 커피가 맛이 없던지, 아니면 커피를 마시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뺏기는 일이 생긴다던지.
오늘 같은 경우엔 후자였다. 하루종일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얼른 이 보고서만 끝내고 자주 가는 술집에 가서 한 잔 하고 싶었다. 이번엔 대리 불러야지…. 아, 김대리 개새끼.

세이브 버튼을 누른 뒤 인쇄까지 마치고 탁탁, 종이를 소리나게 정리한 미유키는 김대리 자리에 보고서를 올려놓고 잠시 김대리 자리를 흘겨봤다. 개새끼!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네. 자리로 돌아온 미유키는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인 뒤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밤 공기가 찼다. 사무실의 후끈한 공기와는 다르게 차디 찬 밤공기가 어째 생경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미유키는 잠시동안 회사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곤 주차장으로 들어가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까짓거, 대리 부른다 내가. 미유키는 네비도 찍지 않은 채 익숙한 길로 운전했고 익숙한 발걸음으로 한 바에 들어갔다. 들어간 바는 아직 북적이긴 이른 시간대여서인지 한적했다. 이런 분위기가 훨씬 좋단 말이지, 평소엔 너무 시끄러운데. 미유키는 인사를 하는 바텐더에게 고갯짓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둘 공간을 찾느라 두리번 거리던 미유키의 눈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벌써 한 잔 했는지 약간 발개진 얼굴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와서 먹어야 이 시간에 저 지경이 되냐? 미유키는 혀를 차며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 사내도 미유키 쪽을 바라보았고, 미유키는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 뭔가 저 재수 없는 눈꼬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와 진짜 재수 없는 인상인데. 어디서 봤지. 그 와중에 사내는 아무일도 없었단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술을 홀짝였다.

 

말을 걸어볼까.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문을 떼려는 순간 주문한 술이 나와서 미유키는 입을 다물었다. 뭐 어디선가 스쳐지나가듯 봤겠지. 미유키는 나온 술을 들이켰다. 아, 오늘 술 잘 받는다. 미유키는 애써 쓴 술을 삼키며 생각했다. 오늘 이렇게 술 마시고, 내가 내일부턴 일 열심히 한다. 김대리 욕도 좀 덜 할거고. 아, 그리고 오늘은 대리도 부를거고. 다시는 음주단속 걸리나 봐라.

 

'음주단속?'

 

미유키가 문득 이상하게 뒤끝이 남아있는 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옆자리의 사내가 일어났다. 얼굴이 벌개졌길래 취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법 멀쩡하게 걸었다. 그리고 그가 미유키에게로 걸어왔다. 미유키는 그저 그를 지나쳐가는 취객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곧장 미유키에게로 걸어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대리 부르십쇼."

 

저번처럼 저한테 걸리지 마시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걸어나갔다. 미유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라고? 그리고 따라가는 시선. 그 사내의 큰 키에 미유키는 비로소 깨달았다. 마치 마지막 퍼즐을 맞추듯 모든 사고가 하나의 이름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후루야!"

 

그가 뒤를 돌더니 피식 웃었다. 그는 고갯짓으로 까딱, 눈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술집을 빠져나갔다. 미유키는 어떻게든 그를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저 무작정 그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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