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Big Wind-up!

[메이미유] 팔각형의 공간 본문

다이에이

[메이미유] 팔각형의 공간

승 :-) 2014. 11. 27. 22:39

[메이미유] 팔각형의 공간


"와.. JSP쩐다."

화면 안에선 우람한 남정네 둘이 링에 피칠갑을 하며 서로의 얼굴을 두드리고 있었다. 링 내에 피가 고여 슬슬 비위가 상해갈 때 쯤 5라운드의 종이 울렸고 그렇게 두 선수는 각자의 벤치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저딴게 뭐가 재밌다고 저렇게 보고있는거야? 하여간 보는 것도 지 같은 것만 본다. 완전 악취미.

"미친... 사람 저 안에다 가둬놓고 개싸움 하듯이 싸움 붙이는게 정상이냐?"

들은 척도 안하네. 이미 마음은 저 관중석에 가 있겠지. 그러나 입을 잔뜩 내밀고 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저 사내의 모습이 꽤나 의외의 모습이어서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 승자는 조니 핸릭스입니다!! 정말 완벽한 경기였는데요. 티비에서는 그렇게 말했으나 내 앞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이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아니 저렇게 잘했는데 무슨소리야!! 심판 눈이 삔거 아냐? 하고 부들거리는 모습은 가관이었다. 미친. 저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세이도로 보내야하는데. 그럼 최소 1년간 놀림감이다.
아, 아니지. 나만 보고 나만 놀려야하는데.

"야, 너는 야구만 좋아하는거 아니었냐?"

내 쪽으론 시선도 안주고 계속 UFC만 보는 카즈야 탓에 괜시리 툴툴댔다. 안 그래도, 1라운드서부터 슬슬 건드렸는데 째리기만 하고 반응도 안하더라 이거지. 괜히 밀린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는데 생각보다 좋은 구경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메이. 이 UFC란 말이지. 아주 아름다운 운동경기야. 봐. 남자들이 본인의 육체적 능력만 가지고 서로를 평가하잖아."

아이고 격투기 전문가 나셨다. 그래봤자 맨날 나한테 깔리는 주제에.

"근데 넌 왜 맨날 나한테 깔리냐? 나보다 키도 큰게?"

"엉???"

카즈야가 당황했는지 뒤로 펄쩍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침대 끝으로 몸을 옮겼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시선은 티비에서 떼지 못한다.
그 모습이 꼴뵈기 싫어 나는 슬슬 몸을 낮춰 그에게로 다가간다.

"야, 대답을 해 봐. 체급으로 보면 너는 미들이고 나는 웰턴데, 니가 맨날 깔리는게 말이 안 되잖아."


그러자 꼴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티비에서 눈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이 때의 카즈야의 눈빛을 좋아한다. 자존심이 잔뜩 상한 눈. 깔고 깔리는거야 애저녁에 합의 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남자라고 박히는게 썩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종종 이 주제로 말을 꺼내면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나는 카즈야의 저런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먹히기 직전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세우는 초식동물 같달까.

"뭐 시발. 그럼 뭐 니가 깔려줄래?"

그러면 나는 마치 사자가 토끼를 덮치듯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숨통을 끊을 것 처럼 카즈야에게 달려든다.

"내가 미쳤냐."

이렇게 좋은 걸. 누구한테 양보하라고. 괜히 불쌍해서 깔려줬다가 맛들이면 어떡하라고?

"야. 카즈야 너 암바 할 줄 알아?"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즈야의 얼굴은 항상 하는 말이지만 최고다. 세상에 이런 모습이 있을까. 아. 세이도 고교 4번타자에, 주장에, 포수에, 정신적 지주인 미유키 카즈야가 지금 내 밑에 깔려있다니.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머리 속에 퓨즈가 끊기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시간도 많으니, 조금은 천천히 할까.

​"어. 쿠라모치한테 배웠어."

나도 모르게 눈썹이 움찔했는지 카즈야가 묻지도 않은 말에 답한다. 아, 원래 걔가 그런데에 관심이 많잖아. 나는 카즈야가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좋다. 내 일거수 일투족에, 내 표정 하나하나에 움찔거리며 반응하는 카즈야가 좋다. 카즈야가 근데 암바는 왜? 하고 물어봤고 나는 왼팔을 내밀었다.

 

"해 봐."

 

내가 생각해도 난 성격이 참 나쁜 것 같다. 카즈야는 적잖이 당황하더니 이내 미간을 찡그렸다. 싫어. 왼팔이잖아. 그 모습이 기특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바람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카즈야가 약이 올랐는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라고 덧붙였다. 하여간 덩치는 산만한게 귀여워서 미치겠다.

 

"야. 너는 왜 이렇게 귀엽냐?"

 

그러자 카즈야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얼굴이 새빨개졌다. 푸흐흐, 나는 또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고 카즈야는 이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뒷모습이 세이도에게는 든든한 주장으로 보였겠지만, 지금 나에겐 마냥 귀여운 미어캣 같아서 어쩐지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래도 맘먹고 싸우면 내가 너 이길 걸."

 

카즈야가 뒤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를 쳐다봤고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기는 사람이 까는걸로, 어때?"

 

푸하하.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참 배를 잡고 웃고있자니 카즈야가 예의 못마땅하단듯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 앉았다. 야. 뭐가 그렇게 웃겨. 내가 이길 수도 있잖아. 침대 한켠이 내려앉고 나는 그 쪽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옮겼다.

 

"그러니까 해보라니까?"

 

다시 왼팔을 내밀자 카즈야가 재빠르게 오른팔을 잡았고 나는 그 손을 빼서 다시 왼팔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 과정이 약 두 번정도 반복되고 결국 우리는 뒤엉킬 수 밖에 없었다. 별 힘도 주지 않았는데 헥헥거리는 카즈야를 두고 나는 웃었다. 네가 퍽이나 이기겠다. 야구 빼고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는 놈이.

 

"야 너는 야구 빼고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어떡하냐."

 

발끈한 카즈야가 내 어깨를 붙잡고 누르려고 했고 나는 그대로 그 힘을 이용해 반대로 카즈야를 밑에 깔았다.

 

"그러니까 나한테 시집올래?"

 

미친새끼! 눈 앞이 번쩍하더니 그대로 시야가 깜깜해졌고 정신을 차리자 카즈야가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너무 건드렸나 싶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5분만 있으면 다시 돌아올테니까. 나는 킥킥거리면서 웃었고 오랜만에 혼자가 된 침대 위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누웠다. 카즈야 냄새. 비록 우리는 이 밖으로 나가면 적이 되겠지만 이 위에서만은 온전히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구나. 격투기 선수들에게 허락된 공간이 저 팔각형의 공간이듯이.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오직 이 방 안 뿐이다. 그러니까 얼른 돌아 와, 카즈야.

 

나한테 시집오게.

 

'다이에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루미유] 무제  (0) 2015.01.01
[쿠라하루] 지워지지 않는 흉터  (0) 2014.12.30
[후루미유] 길 위에 흩날리는 추억 上  (0) 2014.12.13
[메이미유] 유리잔 속의 얼음  (0) 2014.11.28
[후루미유] 햇빛  (0) 2014.11.2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