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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미유] 무제 본문

다이에이

[후루미유] 무제

승 :-) 2015. 1. 1. 22:27

[후루미유] 무제

 

신입사원이 들어온 회사는 시끌벅적했다. 후루야의 팀에도 신입사원이 배정됐다. 이름은 미유키 카즈야. 생긴 것과는 다르게 회사 수석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흐음후루야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나이도 대리인 나보다 많은데 어떻게 수석이 됐지? 하지만 가뜩이나 인력부족이 극심했던 영업팀이라 지금은 이것저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이 많은 건 싫은데. 하고 후루야는 입을 삐쭉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신입사원 미유키 카즈야입니다!”

 

, 후루야는 눈인사를 했다. 사실 후루야에게 미유키의 첫인상은 매우 안 좋았다. 언뜻 보면 준수하고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날티나는게 후루야는 미유키가 자신과 안 맞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원래도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잘 못했던 후루야는 미유키와 사적으로 친해지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대리님, 커피드실래요?”

 

미유키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됐습니다. 후루야가 차갑게 말해도 미유키는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모르겠네. 후루야는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거슬리는 사람이었다. 감정표현에 서툴고 대체로 감정이라는 것 자체에 굉장히 무딘 후루야에게는 무슨 일이든 싱글거리며 웃는 미유키가 생소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후루야는 항상 무언가 이유가 있어야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웃고 다니다니, 실없는 사람이네. 후루야는 미간을 찡그렸다.

 

미유키가 들어온 지 약 한 달이 지나고, 영업팀의 회식이 있었다. 회식자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침울하고 가라앉아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후루야는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는데, 미유키가 과장님께 말을 걸었다.

 

과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분위기가 좀.”

 

후루야는 자신의 차례가 뺏겼다는 생각보다는, 참 아무에게나 말을 잘 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후루야가 누군가에게 맘을 열고 쉽게 말을 걸기 위해서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입사원에서 대리가 된지 약 4년이 지났지만, 윗사람이나 회사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자신의 성격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후루야는 가만히 미유키를 바라보았다.

 

그게, 하고 과장님이 운을 떼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번에 K물산과 계약을 해야 하잖아?”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은 그 뒤로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셨다. 미간을 찌푸린 채 술잔만 연거푸 비우신 뒤 취기가 얼큰하게 오르신 얼굴로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 거래처 사장이,”

 

 

* * *

 

 

D-2. 결전의 날을 딱 이틀 남기고 씁쓸한 감정을 삼키며 미유키와 후루야는 함께 밥이나 한 끼 하자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둘은 조용히 국밥집에 들어가서, 순대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사실 한 달이 넘게 같이 있었음에도 이렇다할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둘이라 후루야는 지금 이 시간이 미치도록 어색했다. , 곤란한 일을 미유키에게 시켜서 더했다. 후루야는 도대체 그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난감했다. 나온 국밥에는 손도 대지 않고 후루야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지?

 

국 식겠습니다, 얼른 드십쇼 대리님!”

 

이번에도 미유키였다. 미유키는 김치를 후루야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후루야는 뒷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턴을 뺏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후루야는 폭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국밥을 뜨려다 우연히 간 시선에는 미유키의 손목이 들어왔다. 손목 안쪽에 흉터가 가득했다. 후루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놀랐다가 후다닥 시선을 피했다. 미유키도 눈치를 챈 듯 왼쪽 팔을 테이블 아래로 숨기듯 내렸다. 그리고 정적, 두 사내는 그저 열심히 밥을 먹었다.

, 드시겠습니까? 미유키가 후루야에게 물었다.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을 먹지 않고는 도저히 한마디도 말을 붙이지 못할 것 같았다. 소주가 나오고 미유키와 후루야는 한잔씩 잔을 나눴다.

 

, 그 일 말입니다.”

, , 미유키씨.”

 

이번엔 둘의 말이 겹치고 미유키는 후루야에게 먼저 말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후루야는 입을 떼었다.

 

미안합니다.”

 

후루야는 사과했다. 후루야와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던 미유키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는 듯이. 후루야는 당황스러웠다. 감사합니다. 미유키는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목소리라 후루야는 더 당황했다. 남의 표정에 무심한 후루야가 보아도 저 웃는 표정은 절대 기쁜 얼굴이 아니었다. 후루야는 어찌할 줄 모르다가 그저 술을 건넸다. 미유키는 꾸벅하고 술을 받고 다시 후루야의 잔을 채웠다. 건배! 둘은 두 번째 잔을 나눴다.

 

무슨, 일 있었어요?”

 

술이 좀 들어가자 자신감이 생긴 후루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미유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요, 미안하다는 말을 거의 처음 들어봐서, 그래서요. 몇 시간 전만 해도 능글맞게 웃던 사내가 그렇게 말했다. 후루야는 무슨 말인지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유키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짓곤 입을 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집에 들어가던 후루야는 도저히 이 기분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캔 맥주를 하나 사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너무 엄청난 이야기들을 들은 것 같아 후루야는 머리가 띵했다. 복잡한 머리를 차가운 캔맥주에 대고 있자니 오늘 들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후루야는 기본적으로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왔다. 원체 감성이 풍부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은 성격이었던 탓에 누군가와 트러블이 일어나는 일도 없었고, 그렇게 무난하게 학창시절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미유키는 아니었다. 미유키는 말을 꺼내며 아까 숨겼던 자신의 손목을 드러냈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데요. 하고 미유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손목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후루야가 슬쩍 봤던 것 보다 더. 마치 칼로 북북 그은 듯한 흉터에 후루야는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 죄송해요. 비위상하실텐데. 미유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비위가 상한다고. 자신의 몸이.

 

 

* * *

 

 

제가 하겠습니다.’

 

미유키가 손을 들고 말했다. 회식자리에 있던 모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유키를 쳐다봤다. 과장님은 미유키의 눈앞에 손을 갖다 대고 휘휘 저었다. 자네 취한 거 아니야? 미유키는 하하,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번 계약 따내야지요. 무지 중요한 계약 아닙니까!’

 

미유키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후루야는 그 모습이 놀랍기도 하면서 저 남자는 수치심이란 걸 못 느끼나, 하고 약간은 경멸했다. 자존심도 없나? 후루야는 아무 말 없이 술을 들이켰다. 미유키는 여전히 실실 웃으며 저희 집 지금 무지 어렵거든요. 이렇게라도 해야 영업팀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되면 보너스도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고 가볍게 말했다.

 

후루야는 캔맥주를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빈 캔을 한 손으로 우그러트리며 후루야는 어금니를 빠드득 깨물었다. 미유키에 대해서 가볍고 실없는 남자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이제야 이해가 갔다. 미유키가 왜 회사에 늦게 들어왔는지, 듣자마자 욕부터 나오는 제안을 흔쾌히 자신이 한다고 했는지.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후루야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남 얘기 하듯 말했던 미유키의 표정이 너무나도 초탈한 사람의 그것이어서, 후루야는 마음이 아팠다.

진짜 더럽다. 후루야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빈 캔을 주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저녁 6시가 되자 부장님까지 내려오셔서 미유키를 독려했다. 힘든 일 시켜서 미안하네. 미유키는 하핫, 아닙니다! 하고 유쾌하게 대답했고 후루야는 어딘가 마음 한쪽이 뻐근하게 아팠다.

후루야가 미유키를 붙잡으며 말했다. 같이 갑시다. 미유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쪽엔 저 혼자 들어가야 하는데요. 하고 말한 미유키 보다 후루야는 앞장서서 걸었다. 같이 못 들어가면 밖에서 기다릴 겁니다. 끝날 때쯤 되면 연락 줘요. 하고 후루야는 미유키가 들고 있는 짐을 뺏어 들었다.

 

삐까뻔쩍한 조명이 빛나는 건물 앞에 두 사내가 섰다. 더러웠다. 이렇게 밝은 빛을 내는 건물 안엔 더러운 사람들이 가득했다. 후루야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미유키를 쳐다봤다.

 

같이 들어가도 됩니다.”

하하, 그게 더 수치스러울 것 같네요. 그냥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뇨. 기다릴 겁니다끝날 때 쯤 연락해요.”

 

뒷머리를 벅벅 긁은 미유키가 마지못해 대답하고 짐을 잔뜩 든 채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에 후루야가 미유키를 붙잡았다.

 

술을 최대한 빨리 먹여서 보내버려요.”

 

미유키는 그 말을 듣고 푸하하! 하고 배를 잡고 웃었다. 후루야가 왜 웃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미유키는 눈꼬리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채 말했다. 감사해요, 대리님. 빨리 K.O시키고 연락드릴게요. 너무 늦으면 먼저 가십쇼!

그리고 미유키는 호객행위를 하던 남자들에게 붙잡혀 건물로 빨려 들어갔다.

 

후루야는 근처 까페에 자리를 잡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아무리 거래처 사장이 변태여도 그렇지, 그런 짓을 어떻게후루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수치심과 조롱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후루야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었다- 자신이라면 도저히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후루야는 씁쓸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안락한 자리에서 편하게 커피나 마시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오늘처럼 원망스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었다. 후루야는 그 때부터 핸드폰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오버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후루야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할 행위들이 그 안에선 일어나겠지. 후루야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밤을 새더라도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20분여가 지나고, 문자음이 울렸다. 후루야는 놀라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조금만더 먹음므녀 끝낳것 같아요. ㄱㅡㄴ데 저도

 

그만큼 취했다는 말이겠지. 오타가 가득한 문자에 후루야는 인상을 썼다.

 

미유키 씨는 먹지 말고 그 사람이나 많이 먹여서 보내버려요.

 

후루야는 그렇게 보내고 깔깔 웃던 아까의 미유키를 떠올렸다. 그 때는 그렇게 웃었는데, 지금 미유키는 어떤 심정일까? 어떤 기분일까? 후루야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앞으론 그런 거래처가 걸리면 아예 거래를 끊자고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못할 짓이야. 후루야는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도 약 한 시간이 지나고, 12시 반 정도가 되었다. 이미 막차는 아슬아슬하게 끊겼고, 미유키에게 연락도 오지 않았다. 후루야는 커피를 한 잔 더 시킬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문자음이 들렸다. 후루야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다.

 

낫어요

 

후루야는 빠르게 일어나 아까의 그 건물로 걸음을 옮겼다.

호객행위는 절정에 이르러있었다. 삐끼들은 후루야에게까지 와서 추근덕거렸다. 놀다 가시죠~ 좋은 애들 많습니다. 후루야는 그 삐끼를 가만히 쳐다보았고 그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다 똑같은 사람들이야. 후루야는 삐끼에게 잡힌 옷자락을 탈탈 털어내었다.

번쩍번쩍한 조명이 빛나는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정상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외관과는 달리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추했다. 후루야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미유키를 찾았다. 그만은, 추하지 않아. 후루야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추하지 않다고.

그리고 곧 미유키와 비슷한 외관의 남자가 다른 뚱뚱한 남자와 엉켜서 나왔다. 둘 다 엄청나게 많이 취한 것 같았다. 후루야는 빠르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뚱뚱한 남자는 미유키의 허리를 붙잡고 2차는 호텔이냐며 더럽게 웃고 있었다. 후루야는 인상을 썼다. 속이 미식거렸다. 더러워그 와중에 미유키가 후루야를 쳐다보고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대리님

 

후루야는 미유키를 그 남자에게서 떼어내고 자신이 그 남자의 어깨를 부축했다.

 

아이고 사장님, 이제 댁에 돌아가셔야죠.”

 

후루야는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말해보지 않은 말투. 미유키는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낄낄거리고 웃었다. 남자는 너무 취해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는지 반쯤 눈을 감고 집에 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집에 아내분이 기다리시잖아요.”

 

후루야가 거래처 사장의 몸을 부축하며 택시를 잡을 생각으로 대로로 나갔다. 남자도 피곤했는지 얌전히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 겨우 택시를 잡아 그 거구를 택시에 태웠다. 거래처 사장이 택시의 문이 닫히기 직전에 소리쳤다.

 

다음에도 나랑 하는 거야! 오늘 아주 끝내줬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

 

후루야는 못들은 척 택시 문을 쾅! 하고 세게 닫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미유키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서있었다.

 

죄 지었습니까? 갑시다.”

 

후루야가 미유키의 팔을 잡으니 미유키가 깜짝 놀랐다.

 

차가 끊겼더라고요. 많이 취한 것 같으니 오늘은 저기서 잡시다.”

 

후루야가 근처의 호텔을 가리키니 미유키는 펄쩍 뛰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하고 손을 크게 휘젓는데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그도 역시 비틀비틀댔다. 후루야가 미유키의 팔을 잡고 호텔로 끌고 갔다. 나도 차 끊겨서 집에 못가고, 미유키씨도 이렇게 못 보냅니다. 방 따로 잡을테니까 걱정 말고 저기서 자요. 내 성의입니다. 후루야가 진지하게 말하자 미유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한 후루야가 미유키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다. 미유키는 이제야 술기운이 확 오르는지 주저앉았다. 후루야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내 미유키에게 주었다. 미유키는 갑자기 차가운 물이 들어와 속이 놀랐는지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후루야는 미유키를 부축해 화장실로 들어가 뒤치다꺼리를 해주었다. 후루야는 그 와중에도 전혀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미안할 뿐이었다.

 

미안합니다.”

 

변기에 얼굴을 박고 있던 미유키가 고개를 들어 후루야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퉁퉁 부어 엉망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후루야는 또 마음이 아팠다. 이제 괜찮아요? 하고 후루야가 수건을 적셔 미유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술이 좀 깨는 것 같아요. 미유키는 그렇게 말했고 후루야는 미유키를 부축해 침대로 데려갔다.

 

죄송합니다, 대리님. 저 때문에 집에도 못 가시고.”

아닙니다. 이런 일 시켜서 내가 더 미안합니다. 고생 많았어요.”

 

미유키에게 물을 건넨 후루야가 미유키의 겉옷을 벗겼다. 움찔한 미유키는 이내 자괴감이 든 듯 고개를 숙였다. 후루야는 말없이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미유키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였다.

 

더럽죠.”

 

더럽다. 그 말 한마디였다. 모진 일을 겪고 나와서 하는 말이 진짜 거지같네요. 하는 욕도 아니고, 또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말이라니. 후루야는 마음이 아팠다. 후루야가 미유키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 잡았다. 놀란 미유키가 후루야를 쳐다보고 후루야가 말했다.

 

아니요, 장합니다. 고생했어요.”

 

미유키가 고개를 들었다. 후루야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중 가장 단호하고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미유키는 가만히 후루야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더니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 죄송합니다. 이런 말 듣는 게 처음이어서요. 미유키가 울음을 참으며 말했고 후루야는 미유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미유키의 어깨가 살짝 떨리더니 곧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미유키는 어디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그 동안의 과거를 씻어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고작 오늘 하루만으로 10년간의 괴로움을 떨쳐낼 수 없다는 것을 후루야는 알고 있었다.

후루야는 가만히 미유키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뿐이었다. 미유키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되뇌며 계속해서 울었다. 후루야 역시 괜찮습니다, 미유키씨는 잘해냈어요. 고생 많았습니다를 반복하며 그를 위로해주었다.

 

그저 위로를 통한 카타르시스만이 가득한 방이었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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