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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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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2-

승 :-) 2015. 1. 8. 22:53

[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2-

 

 

중간고사 대체 발표는 1010일에 할 예정입니다. 그 때까지 준비하세요.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학생들은 한숨을 쉬었다. 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수님들은 항상 자기들 수업만 듣는 줄 알지하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슬쩍 본 세모가 하나를 툭툭 쳤다. 하나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 순식간에 강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를 향했다.

 

벌써 주 2회 강의를 들은 지 2주가 지났다. 즉 세모와 하나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강의를 들은 게 벌써 네 번째나 된 것이다. 하나는 괜시리 다이어리에 붙여둔 시간표의 이 교양과목에 살짝 볼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곤 부끄러워했다. 그런 의미였다, 이 교양 과목은.

하나가 느꼈던 혼란과 비논리는 이미 감성에 의해 지배된 지 오래였다. 하나는 그저 맘 편히 이 두근거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22년 동안 두근거림 같은 것도 잘 못 느껴봤는데, 이렇게라도 느껴보면 좋지 뭐! 하나는 애써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

 

, 미안해요.”

 

부끄러워 자세를 낮춘 하나와 얼결에 함께 자세를 낮춘 세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는 갑자기 가까워진 둘의 거리에 다시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이라면 하나의 얼굴이 빨개진 것이 세모 때문인지, 상황 때문인지 세모가 알아채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수업 몇 시까지 있어요?”

 

교수님의 발언에 웅성거리던 학생들의 목소리를 비집고 단 한명의 목소리만이 하나의 귀에 들어왔다. 저는 이 수업이 끝이에요. 하나는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세모는 자기는 이 다음에 바로 수업이 있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별 발표, 얘기해봐야 할 텐데 어쩌죠. 그가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기다릴게요.”

 

하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했다. 기다린다고. 세 시간짜리 수업이에요. 세모가 말했지만 하나는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았다. 학교 앞 까페에 있을게요. 거기서 주제 정하고 스케줄도 정하죠. 하나는 그렇게 말하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제까지 그렇게 오래 대화를 나눈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화라 해봤자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정도가 끝이었던 이 둘에게 1분도 채 안 되는 이 대화가 하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럼 끝나고 연락할게요. 어디 까페?”

, 정문 앞에

알았어요.”

 

세모는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하나도 다시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까페에서 어떤 커피를 시켜야 호감을 살 수 있을까, 마끼아또? 그건 남자답지 않다고 싫어하려나? 아메리카노? , 근데 그건 너무 써서 못 먹는데. 하나가 이렇게 고민하는 주제는 단지 커피였다. 세모씨에겐 내가 무엇을 먹든 마실 것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하겠지. 하나는 세모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을 폭 쉬었다.

 

 

* * *

 

 

권세모입니다. 수업 끝났어요. 그쪽으로 갈게요.

 

사실 하나는 수업 끝나기 30분 전부터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봤지만 막상 문자가 오자 핸드폰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은 하나는 마치 전공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는 듯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전공책에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문이 열리는 소리엔 귀를 활짝 열어둔 채였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하나 앞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하는 세모의 웃음에 하나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아니에요. 하고 대답하곤 깜짝 놀라버렸다. 세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나를 쳐다보았고 하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 커피 시키셔야죠!”

 

아아, . 하고 세모가 가방을 내려놓고 카운터로 걸어갔다. 하나도 미리 시켜둔 커피를 다 마시기도 했고 세 시간 동안 앉아있었기도 해서 새로 커피를 시키려고 세모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나란히 서보긴 처음이네, 하고 하나는 옆을 힐끗 쳐다봤다. 자기보다 머리하나는 족히 커 보이는 세모에 하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저 때문에 기다리신 거니까 제가 살게요.”

 

세모의 말에 하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세모는 완강했다. 세모가 순식간에 하나의 어깨를 잡고 원래 하나가 앉아있던 자리로 살짝 밀었고 하나는 뒷걸음질 쳤다.

 

자리에 앉아 계세요. 뭐 드실 거예요?”

 

가까운 시선 내에 세모가 잡히고 하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 , 카라멜 마끼아또요. 하고 하나는 재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지금 무슨! 심지어 하나는 자신이 시킨 것이 이 까페에서 가장 비싼 메뉴 중 하나였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세모가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오자 하나가 안절부절 못하며 일어났다. 세모가 나지막하게 그냥 두세요. 라고 말했고 하나는 그 말에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쟁반에는 커피 두 잔과 티슈, 스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세모는 하나 앞에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려놓고 스틱 드릴까요? 하고 물어봤다. 하나는 원래 스틱을 쓰는 편이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세모는 스틱의 비닐을 찢어 하나에게 건넸다. 스틱을 받는 하나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세모는 자신의 스틱도 비닐을 뜯어 커피에 던져 넣고는 쟁반을 카운터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하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세모가 시킨 커피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메리카노네, 세모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은 잘 못 먹는 것을 잘 먹는 게 신기해 하나는 웃었다.

 

, 그러고 보니 무슨 과세요? 이제야 물어보네요.”

,는 경영학과요.”

 

하나는 본인이 굉장히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고작 이렇게 짧게 대화를 나눈 걸 가지고 들뜨고 심장이 뛰다니. 저는 물리학과에요. 세모가 얘기하고 나서야 하나는 되묻지 않은 것에 대하여 기분 나쁘진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물리학과, 잘 어울린다. 하나는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는 세모를 상상했다.

 

몇 학번이세요? 이렇게 물어보니까 무슨 소개팅 하는 것 같네요. 그래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 저는 12학번이에요.”

 

동갑이네요! 다행이다. 하며 중얼거리는 세모의 모습. 이제까지 느꼈던 거지만 세모의 모습 중에 하나의 얼굴을 빨개지게 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개팅이라는 단어에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인 하나는 걱정스러웠다. 이러다 갑자기 세모가 돌발적으로 스킨십이라도 한다면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나는 잊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세모가 앞에 있을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세모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지 않으리란 걸 하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는 고개를 들어 세모를 똑바로 쳐다봤다.

 

주제는 뭘로 할까요?”

 

세모 역시 하나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하나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천천히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러다간 심장마비로 먼저 죽겠어. 하나는 강의 계획서를 펴들었다. , 이 주제 괜찮을 것 같아요. 진화론과 우생학…. 하나는 강의 계획서 중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모는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고 있다가 대답했다. 좋아요.

좋다는 의미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막상 들으니 마음이 간질간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두 좋아요. 하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럼 자료 조사 다 되면 이쪽으로 보내주세요. 저도 자료 찾게 되는 대로 하나씨한테 연락드릴게요.”

!”

 

그럼 가볼까요? 세모가 말하고 하나는 허겁지겁 짐을 챙겼다.

 

어디 사세요?”

 

세모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하나는 당황한 나머지 아, , ,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어디라고 말해야 하지, 주소를 말해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하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J역을 말했다. 그 근처 살아요.

 

지하철 타시겠네요.”

 

하나가 세모씨는요? 하고 되묻기 전에 세모가 또 다시 말했다. , , 지하철. 하나는 재빨리 물었다.

 

세모씨는, 어디 사세요?”

저는 지하철 역 근처 살아요. 자취하거든요.”

 

하나가 아하고 대답했다. 자취하시면 밥 잘 못 챙겨 드시겠네요. 라고 말하자 세모가 씨익 웃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사실 밥 먹는 거에 별로 신경 쓰는 편이 아니어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그래요.”

 

세모가 웃는 모습에 하나는 또 다시 머리가 어질해졌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어느덧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세모와 하나는 지하철역 앞에 멈춰 섰다. 조심히 가세요. 저는 여기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세모가 말하고, 하나는 잠시 눈을 꾹 감은 뒤 소리치듯 말했다.

 

, 밥 잘 챙겨 드세요! 혼자 드시기 싫으시면, 저 부르셔도 괜찮아요! 저는 학교 맨날 오니까!”

 

그리고 커피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하나는 세모의 대답도 듣지 않고 지하철역으로 뛰어 내려가 버렸다. 지하철 계단을 쫑쫑 다 내려가고 나서야 하나는 주저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심장이 얼굴에서 뛰는 것 같았다.

 

세모는 하나가 도망가듯 들어가 버린 지하철역 입구를 잠시 바라보다 쿡쿡 웃었다. 그리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알았어요. 나중에 밥 혼자 먹게 되면 연락할게요.

 

지하철 역에서 핸드폰을 들고 혼자 얼굴이 빨개진 채 헤실헤실 웃고 있는 남자. 바로 차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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