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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공한] - enchaînement 본문

레트로봇

[또봇/공한] - enchaînement

승 :-) 2015. 1. 14. 20:58

[또봇/공한] - enchaînement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BGM을 끄시려면 그림을 클릭해주세요!

 

 

 

 

방 안에 두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 남자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남자는 어쩐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머리를 왁스로 고정한 정장을 입은 다른 남자가 손을 들어 울고 있는 남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그 손을 멈춘다. 허공에 멈춰버린 손이 갈 곳을 찾는 듯 미세하게 떨리다 결국 힘없이 내려앉고 말았다. 뿌드득, 남자는 이를 갈았다. 화를 참는 것 같기도 했다. 꾹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나야.”

 

울고 있는 남자의 이름이 하나인 듯 했다. 하나의 머리칼이 땀인지 무엇인지 모를 액체에 젖어 가닥가닥 갈라져있었다. 자세히 보니 손이 뒤로 묶여있었다. 방 안에 찬 기운이 남아있는 걸 보니 남자가 돌아온 지는 얼마 안 되어 보였고, 그렇게 되면 하나는 손이 묶인 채 오랜 시간을 견뎌왔다는 말이 된다. 땀을 그렇게 흘린 것도 이해가 갔다.

 

생각은 해봤어?”

 

광경과는 달리 너무나도 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남자의 목을 통해 방 안을 울렸다. 하나는 움찔하더니 이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는 묻는 말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거, 풀어.”

 

하나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가 숙였던 몸을 꼿꼿하게 세우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호리호리한 몸이 돋보이는 수트를 입은 남자가 천장을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하나를 쳐다보았다. 주목해봐야 할 것은 그의 표정이었다. 한없이 메마른 얼굴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얼굴을 담은 그의 표정은 소름끼칠 정도로 이중적이었다.

 

그는 다시 하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이제야 말을 하네, 하나야. 목소리 듣고 싶었어. 그는 역시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표정과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하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빈 공간에서 얽히는 둘의 시선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한쪽은 너무나도 차갑고, 한쪽은 너무나도 뜨거운. 그 모순적인 관계. 그러나 재밌는 것은, 그 온도차이가 우리가 상상하는 그들의 분위기와는 반대라는 것이다.

 

독고오공.”

 

오공은 하나의 목소리에 눈을 휘며 웃었다.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에 대해 감동한 눈치였다. 너무나도 순하게 휘는 눈과 처진 눈썹과는 달리 그 시선과 눈동자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표정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분위기를 담고 있었으나, 그의 눈에서는 시선이 닿는 곳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싸늘하디 싸늘한 눈빛.

반대로 하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쇳물처럼 뜨거웠다.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의 오공과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하나의 외관에서 그들의 온도차가 느껴졌다.

 

짤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공이 한 손가락에 열쇠 대여섯개 정도가 달린 꾸러미를 끼우고 천천히 하나의 눈앞으로 가져갔다. 하나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이제 하나는 이빨이 아니라 입술을 깨물었다. 하얗게 질렸다가 슬슬 피가 배어나오는 아랫입술에도 오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렸다. 길고 긴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열쇠 꾸러미가 오공의 손과 함께 바닥으로 내려갔다. 다시 짤랑, 하는 소리를 낸 열쇠는 보란 듯이 바닥에 얌전히 누워있었다.

 

하나야, 여기 열쇠.”

 

네가 풀어. 오공이 나직하게 말하고 하나는 욕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공은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관자놀이를 짚고는 살짝 뒷걸음질 쳤다. 바닥과 구두가 맞닿으며 차가운 소리를 냈다. 약간은 이질적인 소리인 걸 보니 아마 일부러 낸 것 같았다. 순간 하나의 얼굴이 하얘졌다. 하나는 다시 발목이 시큰해지는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부러진 줄 알았던 발목의 통증이 조금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피가 통하지 않아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하나는 이런 육체적인 고통에 굴복하는 자신이 역겨웠다. 저 반짝반짝하게 닦인 구두에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언젠가 자신이 이 방을 나가게 된다면 저 순하디 순한 얼굴을 지금 그가 신고 있는 깨끗한 구두로 망가트리겠다고 생각한 하나는 그의 구두만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오공은 다시 하나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하나의 턱을 잡아 올렸다.

 

아니, 하나야. 나를 봐야지. 또 부러지고 싶어?”

 

발목. 오공은 일부러 천천히 음절을 늘려 발음했고 하나의 턱께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보았다. 말아 올렸던 깔끔한 입꼬리의 균형이 깨지고 오공의 얼굴이 조소로 뒤틀렸다. 하나의 입에서 뿌득, 하고 이빨끼리 맞부딪혀 내는 소리가 났다. 주변의 공기가 한없이 차가워져 하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 반면, 하나의 눈동자는 형형하게 빛났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하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미 입술과 이빨엔 피가 배어나 있었다. 말을 하느라 피가 잔뜩 번진 입가를 보고 오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모였던 미간은 재빠르게 흩어지고, 오공의 처진 눈썹 중 하나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저도 모르게 올라간 것 같았다. 가면을 쓰듯 순식간에 표정을 정리한 오공이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 네가 죽여줬으면 좋겠다.”

 

하나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이코 같은 새끼.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은 것은 하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 말을 들은 오공의 얼굴이 활짝 핀 꽃처럼 피어났다.

 

, 맞아 하나야. 그럼 행복할 텐데.”

 

하나의 자존심이 수렁으로 떨어졌다. 마치 꽃이 지듯 그렇게 하나가 고개를 떨궜다. 하나는 알고 있었다. 이 관계는 누군가 완벽하게 망가지지 않으면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서로에게 상처를 내지만 그로 인해 더욱 서로를 옭아매는 굴레가 씌워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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