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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차하나씨에게.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차하나씨에게.

승 :-) 2015. 1. 17. 21:33

[또봇/셈한] 차하나씨에게.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하나 씨에게.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바람이 마치 볼을 에는 것 같군요. 하나씨는 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진 않으셨나 걱정이 됩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항상 하나씨 걱정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며칠 전에 독고 군을 만났습니다. 독고 군에게 그대의 근황을 물었으나 대답해주지 않더군요. 이해합니다. 내가 만일 독고 군의 입장이었어도 대답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이 서러웁디다. 하지만 꼴사납게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한심하게 보일 일도 없지요.

 

하나씨가 떠난 이후로 나는 마치 북극성을 잃은 북두칠성처럼 황망히 헤매었습니다. 이리 저리 휘몰아치는 은하수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 했지요. 나는 그렇게 아직까지도 북극성을 찾지 못해 이러고 있외다.

 

문득문득 화가 치밀기도 하였으나 그 또한 역시 당신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것임을 알기에 나는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물론 당신은 나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슬픈 상황은 애써 머릿속에서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중입니다.

 

내가 당신을 잃게 된 이유가 오롯이 나에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다 오히려 편하게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다른 고통이 나를 찾아옵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내 잘못 때문에 그대를 잃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가슴속에 가로새겨질 때마다 나는 가슴에 찬바람이 훅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가슴께의 옷을 여미곤 합니다.

 

그쪽의 생활은 만족하십니까. 하나씨가 행복하다면야 그걸로 저는 좋습니다만 가끔씩 몰아쳐오는 허망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디다. 몇 달간은 아침에 눈 뜨는 게 어려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눈을 뜨면 텅 빈 하루가 내 앞에 서있어 무서웠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대로 인해 꽉 찬 하루였는데 말입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대의 얼굴이 둥실 떠오릅니다. 둥글게 정돈된 눈썹, 조그맣지만 귀여운 콧망울, 볼 쪽으로 올라와 항상 웃는 낯이라는 인상을 만들어주는 입꼬리. 그 무엇 하나 나에게는 이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오묘하게 빛나는 눈동자. 남들에게는 갈색과 검은색의 단순한 조합임에 불과할지 모르나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나는 사파이어 같았습니다.

 

그 눈동자를 보면 어머니의 품에 있는 것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허나 지금은 그런 편안함을 얻지 못해 나는 늘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입니다.

 

편지가 너무 당신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신과 함께 있었던 나날들이 나에게는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차하나씨. 나에게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어 고맙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앞날이 저리 빛나는 달처럼 밝기만을 기도합니다.

 

110

권세모.

 

편지를 다 써놓고 뒤에 덧붙이게 되어 미안합니다. 사실 오늘 편지를 부치려고 우편함까지 갔습니다만,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까닭에 도저히 편지를 넣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편지를 부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앞날이 밝기만을 기도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 위선일지도 모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은 하나씨가 나에게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져 편지를 부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 역시 욕심이겠지요. 이미 하나씨가 당신의 행복한 생활을 찾아간 이상 지나간 인연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일지도 모르나, 나는 그렇습니다. 하나씨가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대가 백발이 되었다 해도, 주름투성이 노인이 되었다 해도, 혹 힘든 병에 걸렸다 해도 나는 괜찮습니다. 예전처럼 당신을 품에 안고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습니다. 혹시 독고 군이 그대에게 잘해주지 못한다고 하면 내게 달음질쳐 와도 좋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 독고 군이 해를 끼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마는, 내 본심이 어쩔 수 없어 적습니다.)

나는 언제나 떠 있는 해처럼 당신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마음이 당신에게 가지 못할 정도로 산산이 흩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이 편지를 부칠까 말까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일도 시내에 나가볼 생각입니다. 오늘처럼 눈물이 쏟아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용기 있게 우체통에 이 편지를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올 생각입니다. 집에 와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겠지요.

 

이만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군요. 손가락에 힘이 쪽 빠져 펜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앞날에 나 같은 오점이 아닌 찬란한 빛만이 그대를 비추어주기를 바라겠습니다.

 

111

권세모.

 

 

 

* * *

 

-그것뿐이야? 유류품이.

-.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그러게 말이야.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같구만.

-그나저나 이걸 항상 품속에 품고 있었나 봐요. 편지 같은데. 연도는 안 쓰여 있는데 되게 낡았네요.

-. 차하나씨가 누군지 찾아서 연락해 봐야겠어. 먼저 들어갈 테니 현장 수습하고 돌아와.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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