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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봇/셈한] Stuck 본문

레트로봇

[또봇/셈한] Stuck

승 :-) 2015. 6. 7. 22:14

[또봇/셈한] Stuck



 

.”

…….”

모야.”

 

 세모야! 귓가에 울리는 조금은 큰 목소리에 세모는 눈을 번쩍 떴다. , . 하나야. 하고 어벙벙한 얼굴로 하나를 쳐다보자 하나는 짐짓 인상을 쓰고 세모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불렀는데.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부루퉁하게 부어있는 입술, 그리고 곧 하얘질 정도로 힘을 주어 앙 다물리는 입술. 그러다가 다시 열려 목소리를 내뱉는 입술. 그래서 우리 동물원 가는 거야? 하고 오물오물 발음을 만들어내는 입술. 입술. 입술.

 

 아, 진짜 미치겠네.

 

 

* * *

 

 

 이젠 손을 잡아도 될까? 아님, 언제? 지금? 아냐, 나중에? 수많은 자신과의 질문 속에서 겨우 붙잡았던 손가락 하나였다. 하나와 닿았던 손가락 끝부터 짜릿짜릿하게 전기가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아서, 세모는 이대로 감전되어 죽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후로 이주일이 넘게 지났고, 여전히 세모는 하나와 손을 잡기 전에 수없이 고민하곤 했다. 잡아도 되나? 피하진 않을까? 물론, 세모도 이런 자신이 찌질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맘 같아서는 그냥 맘껏 손도 잡고, , 입도 맞추고 싶었지만, 막상 하나 앞에 가기만 하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어제 밤까지만 해도 오늘은 하나와 손을 잡고 거리를 돌아다녀야지! 하고 결심했다가도, 하나를 만나기만 하면,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 손과 손의 거리가 세모로 하여금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손이 잠깐 맞닿기라도 하면 파직하고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아서 세모는 가뜩이나 빳빳하게 세운 머리가 더 바짝 서는 것만 같았다.

 하나가 먼저 손이라도 잡는 날엔 어떤가. 평소엔 하나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손가락만 살짝 붙잡는 정도였지만, 하나가 자신의 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꼭 잡는 날이면 세모의 심장은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 세모의 속도 모르고 하나는 따듯한 손으로 세모의 손을 감싸곤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빨개지는 얼굴에 세모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남몰래 쉬는 한숨을 하나는 알고 있을까. 그런 줄도 모르고 해맑게 자신을 보며 웃는 그의 얼굴을 보고 세모는 당장이라도 다리를 꼬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손만 잡고 다닌 지 이주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하나는 어느 날부터 세모에게 동물원을 가자고 졸라댔고, 그 동안 시간이 나지 않아 골머리를 썩던 세모는 기말고사가 끝난 오늘이야말로 하나를 동물원에 데려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자마자, 세모는 하나의 반으로 가 그의 종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세모야!”

 

 세--! 하나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이 한없이 찬란하다고 생각해 입가에 잔뜩 미소를 짓던 세모였다. 하나가 손을 흔들며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평소엔 거치적거린다며 쓰지 않던 안경까지 다 쓰고, 역시 시험기간의 차하나였다. 그런 모습까지 귀여워보이는 자신을 깨닫고 세모는 이 이상 가다간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동물원까지는 거리가 제법 있어 둘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동물원에 가요~ 하나는 음도 제멋대로고 의미도 제멋대로인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잔뜩 신나 있는 하나 옆에서 세모는 단지 하나와 맞닿아있는 무릎에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 세모는 얌전히 옆에 놓여있던 자신의 가방을 들어 끌어안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하나는 옆에서 계속 재잘거렸다. , 재밌겠다. 세모야! 그치! 하고 종알거리는 하나의 입술이 너무나 가까워 세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젠 아랫배가 뻐근하게 아파올 정도였다.

 마음속으로 정류장 개수만 세고 있던 세모는 정류장이 가까워져오면 올수록 애국가만 불러댔다. 이대로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하나 진짜. 팽팽 돌아가는 머리 때문에 하나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버스가 점점 속력을 줄이고, 세모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하나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먼저 내려.”

!”

 

 하나는 팔랑거리며 버스에서 폴짝폴짝 뛰어내렸고, 그 뒤를 쫓는 세모는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걷기도 힘들 정도로 온 근육이 팽팽해진 감각에 세모는 까칠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런 속도 모르고 하나는 세모의 손을 붙잡고 어린 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세모야! 드디어 도착했어! 진짜 좋다! 하고 웃는 모습에 세모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6월임에도 싱싱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들이 둘을 반겼다. 와아! 감탄사를 내뱉은 하나가 꽃밭으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향기를 맡았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작아져버린 하나를 보고 세모는 입꼬리를 올렸다. 데려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뿌듯해져 세모는 고통을 이겨내고 하나 옆에 같이 앉았다.

 

향기 진짜 좋아, 세모야!”

 

 하던 하나가 갑자기 다가온 벌에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세모야! 너도 빨리 와! 벌에 쏘여! 울상을 지으며 소리를 지르는 하나를 보며 세모는 킥킥 웃었다. 난 왼팔은 상관없는데. 세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긴장이 조금 풀린 탓인지 몸도 조금 유연해져 있었다.

 사실 세모는 동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우리와 생태계를 함께 살아가는 한 생명체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는지 어떤 동물들을 보아도 반짝반짝하게 눈을 빛냈다. 그리고, 코끼리 우리에 도착했을 땐,

 

세모야!!!!!!! 코끼리!!!!!!!!!!!”

 

 세모의 팔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 하나가 세모의 어깨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 탓에 세모는 엉겁결에 뻣뻣하게 굳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 적이 처음이라 세모는 코끼리는커녕 주변에 어떤 사물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넓은 동물원에 하나와 단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온몸을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에 세모는 숨을 삼켰다. 이런 두근거림을 하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나는 막상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것 같은데, 자신만 혼자 가슴 떨려하는 것이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세모는 입술을 깨물었다.

 세모 뒤에서 좋은 건지, 무서운 건지 바들바들 떨던 하나가 곧 몸이 뻣뻣해지더니 어색하게 세모에게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세모의 몸이 다시 말랑해졌다. 온몸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세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는 흠칫 놀라 옆으로 한 발자국 걸음을 옮겼다. 어색하게 거리를 둔 둘이었다. 하나가 이리 저리 눈치만 보다 입을 열었다.

 

, 갈까? 다른 동물.”

, .”

 

 이제 몸이 달은 쪽은 하나였다. 괜히 들떠서 세모에게 붙어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세모는 한숨을 쉬었고 자신이 떨어지자마자 온몸의 긴장을 풀었다. 내가 붙어있는 게 싫은 건가? 갑자기 우울한 생각이 브레이크를 부러트리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더 이상 동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수했다. 그 생각만이 온통 하나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하나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세모는 눈알만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뭐 실수했나. 아까까지만 해도 코끼리를 보고 신나하던 하나가 이제는 호랑이를 보고도 본체만체 했다. 어딘가 시무룩해진 하나를 보고 세모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한 건 하나가 사자를 보고 한숨을 푹 쉰 다음부터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큰 맹수를 보고 한숨을 쉬다니! 분명히 내가 무언갈 실수한 게 틀림없어. 세모의 생각도 가볍게 과속방지턱을 덜컹, 하고 넘기 시작했다.

 한참을 말없이 동물원만 거닐던 둘이었다. 세모와 하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하필 차고지와 가까운 곳에서 탄지라 버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둘 사이의 정적이 더욱 부각되어 허공을 돌아다녔다. 어색함보다 먼저 밀려오는 것은 미안함이었다. 둘은 버스에 앉아 오늘 스케줄에 있어 왜 상대방의 기분이 저렇게 다운되었는지, 자신이 실수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40여분을 아무 말 없이 버스에서 반성회를 가졌을까, 하나는 왠지 모를 서러움에 감정이 북받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그렇게 자신이 먼저 용기내서 다가갔는데, 세모는 피하기만 했다. 아까도 그랬다. 큰맘 먹고 세모에게 다가갔는데, 세모는 바짝 얼기만 하고. 원인을 몰라 둥둥 떠다니기만 하던 서운함은 자신이 아닌 옆에 있는 상대방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게 했다. 하나의 입술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세모는 반대로 끝나지 않는 반성회 중이었다. 역시 내가 먼저 많이 다가가지 않아서 그런 걸 거야. 아까 내가 한숨을 쉬어서? 아니, 내가 코끼리에 더 많이 반응하지 못해서? 무엇을 했든, 설령 자신이 실제로 잘못을 했든 안했든 하나가 저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건 당연히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한 세모가 다시 한 번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내가 이렇게 찌질하게 꽁해있는 것에 실망한 거구나. 싶어 복잡한 감정이 마침내 물꼬를 트고 쉴 새 없이 누수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달라진 공기에 세모가 무의식중에 옆을 돌아봤고, 그 곳에는 기함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 , 하나야, , 울어?”

,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정신없이 눈물을 쏟던 하나가 외마디 말을 툭 내뱉고 버스 출입문으로 뛰쳐나갔다.

 

세모 너 미워.”

 

 그 말을 들은 세모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온몸이 차갑게 식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먼저 일어나 하나를 뒤쫓아 가고 있었다. 하나는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여전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세모는 미칠 지경이었다. 하나를 울렸다는 죄책감과 함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못되고 못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모도 함께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가 워낙 서럽게 울어대는 탓에 세모는 그 이유조차 묻지 못하고 그저 버스가 멈춰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다.

 버스 문이 열리자 하나가 총알 같이 튀어나갔고, 세모 역시 하나를 붙잡으려 달려 나갔다. 집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하나는 빠른 걸음으로 골목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세모가 쫓았다.

 

따라오지 마!”

 

 하나가 울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세모의 귀에는 그 어느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저 어깨를 붙잡고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들어가서야 세모는 겨우 하나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쭈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세모는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하나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세모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내가 계속 한숨을 쉬어서? 갑자기 세모의 머리가 잔뜩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세모가 하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하나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나의 숨소리가 조금 잠잠해졌고, 그 동안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세모가 입을 열었다.

 

하나야. 내가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를 불안하게 한 것도, 서운하게 한 것도 모두 자신의 잘못인 것으로 흘러갔다. 세모는 하나에게 미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오롯이 세모의 감정을 담은 한마디가 바로 미안해였다. 비록 하나에게 그 말이 제대로 들릴 리는 없었겠지만, 세모는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그러자 하나가 고개를 들어 세모를 보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눈물을 쏟아낸 건지 눈 주위가 죄 짓물러 있었다. 발개진 눈 주위에 세모는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 들어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는 막상 세모의 사과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세모가 사과할 일은 아닌데. 내가 싫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세모가 왜 사과를 하지. 하는 생각에 다시 눈물이 퐁퐁 솟아올랐다. 세모는 나를 좋아하는 걸까, 싫어하는 걸까. 하나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세모의 눈빛은 진심이 담긴 것 같아 보였다. 하나는 울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세모,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 거야?”

 

 훌쩍거리며 힘겹게 내뱉은 것과는 반대로 너무나 어이가 없는 질문에 세모는 오히려 대답할 말을 못 찾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 엄청. 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네 옆에만 가면 전기가 통할 정도로. 그 수많은 표현 중에서 세모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가 자신의 의미를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잠시간 고민했다. 그러나 입을 감히 열어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해, 하나야.”

거짓말.”

 

 그러나 단박에 거절당한 자신의 진심에 세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음표를 얼굴에 잔뜩 띄운 채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가 눈물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야.”

 

 세모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어 입술이 덜덜 떨렸다.

 

왜 그렇게 생각해?”

 

 세모는 울고 싶어졌다.

 

좋아하는데 네가 날 이렇게 피할 리 없어.”

 

 오늘도 그래. 한숨만 푹푹 쉬고. 말끝에 울음이 가득 배어나와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하나를 보고 세모는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머리가 막막해져 또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하나가 또! 하면서 눈물을 쏟았고 세모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오늘, 그 이전의 자신의 태도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나 입장에선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만한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섭섭함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누가 피하려고 하거나 아님 싫어서 한숨을 쉬는 거겠냐고! 세모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려다 하나의 눈치가 보여 헛기침을 뱉어냈다.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세모가 숨을 가다듬고는 하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건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야.”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세모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막막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좋아한다니까? 좋아한다고! 권세모가 차하나를,

 

좋아한다고!!!!”

 

 놀라서 벙찐 하나가 눈을 토끼처럼 뜬 채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 화내는 것처럼 들렸겠다. 순식간에 후회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세모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나는 여전히 얼음처럼 굳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였다. 세모는 급하게 하나의 손을 붙잡았다. 차갑게 굳어 있었다.

 장장 한 시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둘은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라고 입을 연 세모가 이제까지 하나를 만나면서 생겼던 여러 가지 곤란한 몸의 반응이라던지, 복잡한 감정들-물론 기반은 좋음이었지만-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준 뒤에야 하나가 폭 한숨을 쉬며 다행이다.” 라는 외마디 단어를 내뱉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세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세모가 울고 싶어졌다. 명백하게 좋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다시 어색해진 둘이었다. 하나는 하나대로, 세모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엉엉 울었던 것이 부끄러워서, 그리고 세모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하나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부끄러워서였다. 그러나 확실히 아까와는 다른, 그야말로 묘한어색함이었다. 서로 눈치만 보는 그 미묘함. 둘은 다리를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와 세모의 눈이 마주치고, 둘은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이라고.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바로 지금, 이 타이밍이라고. 둘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서로의 숨소리가 간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둘의 얼굴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것을 보니 세모는 더 미칠 것 같았다. 이게 그, , , , 첫 키스라는 건가? 세모의 머리가 다시금 팽글팽글 돌았다. 그러나 맘처럼 세모의 얼굴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예전부터 그렇게 입맞춰보고 싶었던 하나의 입술이 눈앞에 있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입술에 하나의 입술을 겹치면 달큰한 맛이 날 것만 같았다. 세모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으아.”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세모가 하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눈을 꼭 감고 있던 하나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분명 상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입술은 허공과 맞닿아 있었고 정작 권세모는 자신의 엉덩이를 쭉 뺀 채 하나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 하나가 세모의 어깨를 확 밀쳐냈다.

 

야 이 바보야!”

 

 그리고 세모 입술 위에 와닿는 말캉한 감촉. 하나가 세모의 얼굴을 붙들고 자신의 입술을 마치 도장 찍듯 꾹 눌렀다 뗀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재빠르게 골목길을 벗어나려고 걸음을 옮겼다. 세모는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과 함께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는 입꼬리에 세모는 능글맞게 웃으며 하나의 팔꿈치를 잡았다.

 

, 차하나. 어디 가.”

 

 그리고 그대로 세모가 하나의 팔꿈치를 끌어당기고 거치적거리던 안경을 벗겼다. 골목길의 시간이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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