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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Wind-up!
[또봇/공한] 달큰한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손목을 붙잡고 입을 맞추니, 그대로 꽃향기에 취해버릴 것 같아, 아찔해져 오는 정신을 붙잡고 손목을, 그 손목에 잇자욱을 낼까, 그러면 단물이 배어나올 것 같아 이로 훑었다 혀로 훑었다, 입맛만 다시다 혹시라도 네가 아플까 세우려던 이를 삼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긴다. 목은 또 어떤가. 가만히 입술로 꾹, 마치 자국을 남기려는 듯이, 그러나 움직이지는 않은 채... 단지 그렇게 누르고만 있자 부산히 팔딱거리는 맥박이 느껴졌고 나는 그것이 나를 향한 마음이라 생각하겠다. 그렇게 뛰고만 있던 그것이 신기해, 마치 한 번, 두 번 뛸 때마다 네 자신을 이 세상에 공표하는 것 같아, 그 소리를 너보다 내가 더 크게 가까이 들을 수 있는..
[또봇/셈한] 차하나씨에게.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하나 씨에게.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바람이 마치 볼을 에는 것 같군요. 하나씨는 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진 않으셨나 걱정이 됩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항상 하나씨 걱정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며칠 전에 독고 군을 만났습니다. 독고 군에게 그대의 근황을 물었으나 대답해주지 않더군요. 이해합니다. 내가 만일 독고 군의 입장이었어도 대답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이 서러웁디다. 하지만 꼴사납게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한심하게 보일 일도 없지요. 하나씨가 떠난 이후로 나는 마치 북극성..
[또봇/공한] - enchaînement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BGM을 끄시려면 그림을 클릭해주세요! 방 안에 두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 남자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남자는 어쩐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머리를 왁스로 고정한 정장을 입은 다른 남자가 손을 들어 울고 있는 남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그 손을 멈춘다. 허공에 멈춰버린 손이 갈 곳을 찾는 듯 미세하게 떨리다 결국 힘없이 내려앉고 말았다. 뿌드득, 남자는 이를 갈았다. 화를 참는 것 같기도 했다. 꾹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나야.” 울고 있는 남자의 이름이 ‘하나’인 듯 했다...
[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3- 눈앞에 케이크가 들이밀어졌다. 우리 오늘 5년 째 만나는 날이야! 축하해, 세모야.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케이크 위에는 초 다섯 개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초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모는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자신의 지난 5년을 보았다. 일생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지난 나날들. 그리고 겨우 찾은 이 곳에서 세모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모의 상태는 비유하자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상처투성이로 겨우 구조되어 치료를 받아 이제 첫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였다. 즉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걸음이 무너질지 아무도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서의 한 발자국. “감사해요, 선생님.” 상담실 문을 닫고 나서 세모는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
[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2- 중간고사 대체 발표는 10월 10일에 할 예정입니다. 그 때까지 준비하세요.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고 학생들은 한숨을 쉬었다. 하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수님들은 항상 자기들 수업만 듣는 줄 알지… 하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슬쩍 본 세모가 하나를 툭툭 쳤다. 하나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네? 순식간에 강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를 향했다. 벌써 주 2회 강의를 들은 지 2주가 지났다. 즉 세모와 하나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강의를 들은 게 벌써 네 번째나 된 것이다. 하나는 괜시리 다이어리에 붙여둔 시간표의 이 교양과목에 살짝 볼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곤 부끄러워했다. 그런 의미였다, 이 교양 과목은. 하나가 느꼈던 혼란과 비..
*BGM을 클릭해서 들어주세요!* [또봇/공한] 열심(熱心) 너는 마치 동백과 같았다.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도 고고하게 네 향기를 퍼뜨리는, 그런 아름다운 꽃. 나는 너를 보고 있으면 하이얀 도화지 위에 피를 뚝뚝 떨어트리는 듯 피어오르는 동백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동백은 떨어질 때 목을 떨구지. 그 자체로 피를 연상시키나 막상 생명이 다할 땐 피를 흘리지 않아. 깔끔하지. 마치 너처럼. 그래서 나는 너를 좋아한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사랑해. 사랑해서 너를 그대로 가두고 싶어. 넌 그대로 내게 동백으로 남아 있어 줬으면 좋겠어. 좋아해, 하나야. 하나는 다이어리를 덮고 뒷걸음질 쳤다. 하얀 조명에 닿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하나는 상황파악이 어려웠다...
[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옆에 앉아도 돼요?" 9월 1일. 조금은 선선해진 날씨와는 반대되는 따가운 햇빛에 가을 내음이 약간씩 섞여들어 올 무렵이었다. 여름 방학을 신나게 보낸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학교로 밀려들어와 방학동안 한산했던 학교가 북적거렸다. 여느 개강과 다름없이 설레었지만 그 정도는 1,2년 전과 확연히 달랐다. 이젠 슬슬 취업 준비도 해야 하고…. 이게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에 하나는 강의실 책상에서 공부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연필 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이제까지 단순히 9월 초의 가을날이었던 학교가, 순식간에 설레임으로 가득 찬 순간이. "자리 있어요?" 입을 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