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오오후리 (31)
Big Wind-up!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eXvwa ‘넌 이런 데가 뭐가 좋냐?' 그 말에 내 앞에 있던 남자가 짐짓 미간을 좁히며 나를 노려봤다. 아, 알았어 알았어. 손을 대충 들어보이고는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탓에 목도리에 고개를 묻었다. 도대체 이 날씨에 바다에 왜 오자고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 눈 뜨는 것도 힘이 드는구만. 하고 슬쩍 옆을 보자 코가 새빨개진 채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앳된 얼굴의 소년이 보였다. 축 처진 눈. 저 처진 눈이 나는 뭐가 좋다고 빠져가지곤 여기 이렇게 끌려왔나. 그러면서도 여전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저 놈의 눈. '바다 너무 좋아요.' 단 한 마디였다. 겨울 바다에 부는 칼바람이 볼을 에는 모래사장에 둘이 걸터앉은..
[하루쥰하루] 달밤 *쵸링님께 받은 리퀘입니다!^^ ====================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깜깜한 밤, 하루나는 눈을 비볐다. 분명 의식이 깨어있고 정신이 멀쩡하나 그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들리는 것은 둔탁한 파열음,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그것에 맞는 소리, 비명소리, 신음하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였다. 그 수많은 소리 중, ‘의미’를 가지는 것은 없었다. 단지 어떤 목적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그 사이에 단어는 필요 없었고 소통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았다. 하루나는 그 참혹한 광경에 귀라도 막고 싶었다. 아니, 사실 이미 손이 올라가 그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들려오는 소리에 하루나는..
[쥰타미하] 그 봄날의 신입생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한 번 눈에 띄면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끄는 꽃이 있다.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누군가의 시선을 계속 잡아끄는 존재. 그 존재가 지금 이 강의실에 있었다. 쥰타는 아까부터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눈동자를 책망하고 있었다. 뭐야, 또 왜 이래. 왜 이러는 건데. 하면서도 또 흘깃, 하고 눈동자는 얄궂게 돌아갔다. 그게, 복학하고 나서 처음 들은 수업에서였다. "자,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쥰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미하시 렌이라는 신입생이었다. 귀엽게 생겼네. 쥰타는 그렇게 말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입안에 신 침이 고이는 기분이었다. 위험하다. 저 친구는 위험해. '쟤 왜 말을 저렇게 더듬어?' 동기들의 웅성거림..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가급적이면 PC로 읽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이즈미하] - émissaire 나는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절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빼곡하게 종이를 채워나가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빠르게 눈으로 훑어보았다. 이미 외울 정도로 읽어보고 몇 번이고 다시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던 문서였다. 인쇄버튼을 누른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문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가 찾아간 곳은 S구에 있는 한 구치소. 그리곤 수척해진 얼굴의 남자가 몸이 불편한 듯 절뚝이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마주치는 둘의 시선. 한쪽은 그 광경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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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합작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타지미하] 화이트 크리스마스 사진첩을 꺼냈다. 이제는 한 켠에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사진첩. 나는 그 사진첩의 먼지를 손으로 슥슥 문질러 닦았다. 손이 닿는 대로 날아오르는 먼지들에 입으로 바람을 후 불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리고 펼친 사진첩엔, 딱 7년 전의 내가 있었다. 우리가 있었다. 삼각대에 올려두고 찍은 사진이라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뛰어오다 찍힌 사진도 있었고, 다시 한 번 제대로 찍은 사진도 있었다. 포근해. 사진을 보자 7년 전의 그 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 * * 그 날은 눈이 내렸다. 티비에서는 "3년 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입니다!" 라며 떠들었다. 3학년 9반의 아이들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는 게 무슨 ..
[하루아베] 보통의 나날들 "야, 모토키. 가수 J 커밍아웃 한 거 들었어?" "들었지." 나는 나만의 성을 쌓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할, 보여줘서는 안 될 그런 성. 나는 그 성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을 보고 싶었다. 그게 잘못된 걸까? 난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걸 목표로 이제껏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 그 결말을 함께 맞이하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15년 만에 나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루나 모토키. "더러운 호모새끼." 그런데 그 성이, 조금씩 무너진다. * * * ‘선배, 에너지 드링크 마셨어요?’ ‘엉.’ ‘몸무게는 재봤어요?’ ‘말 많네. 간다.’ 처음에는 솔직..
[이즈미하] 긍정일기 '하루에 한 번, 긍정일기를 쓰는 거에요. 집에 가다가 하늘이 예뻤다! 그럼 오늘 집에 가는데 하늘이 예뻤다. 보기 좋았다. 라고만 써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세 개, 일주일만 써보고 다음 주에 뵐게요.' 6월 19일 (수) 날씨:맑음 -집에 가는 길에 고양이를 봤는데 고양이가 너무 예쁘게 생겼다. 귀여웠다. -엄마가 야끼만쥬를 해주었는데 엄청 맛있었다. 야끼만쥬는 맛있다. -과제를 하는데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바람이 불면 잘 잘수 있어서 좋다. ... 6월 25일 (화) 날씨: 비 -빗소리가 듣기 좋다. 비는 시원하다. -학교 가는 길에 사카에구치 군을 만났다. 사카에구치 군은 착하다. 좋은 사람. -엄마랑 집 앞에 키우는 상추가 많이 자랐다. 비 맞고 더 쑥쑥 자랐으면 좋..
[모토타카] - 겨울, 그리고 두 사람 새하얀 눈길 위에 발자국이 찍혔다. 그 주인공은 목도리를 한 소년과 목도리를 하지 않은 소년. 둘 중 하나는 키가 조금 더 컸다. 둘은 아무말도 없이 그저 쌓인 눈 위에 발자국만을 남겼다. 여전히 눈이 왔고, 얼마나 서있었던 건지 키가 큰 소년의 머리 위에는 소복하게 눈이 내려앉았다. 아마 키가 작은 소년을 기다린 듯 했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키가 큰 소년이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 때마다 입김이 흩어져 나왔다. 키가 작은 소년은 등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그러자 급박하게 키가 큰 소년이 다른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타카야." 키가 작은 소년의 이름은 타카야 인듯 했다. 이제껏 머리속에서만 뛰어다니던 말들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그저 이름만 불러댄 키 ..
[아베미하] 또 새로운 계절이 오겠지 D-19 손가락을 꼼질꼼질 움직이던 소년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 손가락 전부 다 접었다 펴도 모자란 일 수 였는데, 이제는 양 손가락을 접었다 피려고 해도 엄지손가락이 남았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소년은 단지 책상 위에 놓인 달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다른 소년이 왠 한숨? 하고 묻자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부드러운 나무색 머리칼이 축 늘어졌다. 빨리 자자. 내일 부턴 또 엄청 지옥 훈련이니까. 까만색 머리에 주근깨가 인상적인 소년이 말했다. "미하시!" 나무색 머리칼을 가진 소년은 그제서야 일어나 불을 껐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 소년은 맘 속으로 중얼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