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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Wind-up!
[또봇/공한셈] Lucid Dream 나는 잠에 드는 것이 무서웠다. 밤이 무서웠고 새벽이 무서웠다. 또 다시 찾아올 그것에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고 깨어날 수 없었다. 가위는 아니었다. 꿈속에서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었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성격 탓이 아닐까.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것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지 못하면 며칠 밤낮을 괴로워했고 결국 그것을 얻고야 말았다. 그런 나의 성격이 무의식에 반영되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꿈의 요정이 장난이라도 치는 것인지 요즘 나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소유욕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리는 꿈을 일주일 째 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잠드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버티고 버티다 못해..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또봇/셈한] 아름다운 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둘의 뺨을 스쳤다. 9월 달의 강바람은 차가웠다. 둘의 얼굴이 찬바람에 조금씩 터가고 있었다. 세모가 하나를 품에 안고 자신의 자켓을 벗어 덮어주었다. 이미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최대 규모의 불꽃놀이를 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것이다. 다행히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아준 세모 덕에 하나는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마 차하나는 내가 아침부터 와서 자리를 맡아뒀다는 걸 모르겠지. 세모는 그렇게 생각하며 킥킥 웃었다. 그저 품 안에 얌전히 안겨있는 하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돗자리 위에 앉아 하나를 안고 있으며 강바람을 맞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
[또봇/공한] 꽃잎 하나 온디님, 동백님과 함께 한 미니 전력입니다. 전력 10분이라 많이 짧은 조각글입니다! 꽃잎 하나, 좋아한다. 꽃잎 둘, 안 좋아한다. 꽃잎 셋, 좋아한다. 꽃잎 넷, 안 좋아한다. 꽃잎 다섯, 좋아한다. 꽃잎 여섯, 안 좋아한다. 하나는 한숨을 폭 쉬었다. 이윽고 다른 꽃을 찾았다. 미리 꽃잎 개수를 세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확히 일곱 개였다. 그리곤, 다시 시작. 꽃 잎 하나를 떼면서 하나의 심장도 콩콩 뛰었다. 그 아이도 나를 좋아할까? 별거 아닌 사소한 꽃잎에 하나의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이번에도 안 좋아한다. 왜지? 시작을 잘못했나 보다. 하나는 눈꼬리를 잔뜩 내린 채 시무룩해 했다. “무슨 일이야?” 누군가 뒤에서 물어왔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온도. 향기가 가득..
[쥰타미하] 그 봄날의 신입생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한 번 눈에 띄면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끄는 꽃이 있다.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누군가의 시선을 계속 잡아끄는 존재. 그 존재가 지금 이 강의실에 있었다. 쥰타는 아까부터 자신도 모르게 돌아가는 눈동자를 책망하고 있었다. 뭐야, 또 왜 이래. 왜 이러는 건데. 하면서도 또 흘깃, 하고 눈동자는 얄궂게 돌아갔다. 그게, 복학하고 나서 처음 들은 수업에서였다. "자,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쥰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미하시 렌이라는 신입생이었다. 귀엽게 생겼네. 쥰타는 그렇게 말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입안에 신 침이 고이는 기분이었다. 위험하다. 저 친구는 위험해. '쟤 왜 말을 저렇게 더듬어?' 동기들의 웅성거림..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가급적이면 PC로 읽어주시길 권장드립니다^^ [이즈미하] - émissaire 나는 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절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빼곡하게 종이를 채워나가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빠르게 눈으로 훑어보았다. 이미 외울 정도로 읽어보고 몇 번이고 다시 지우고 쓰고를 반복했던 문서였다. 인쇄버튼을 누른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문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그가 찾아간 곳은 S구에 있는 한 구치소. 그리곤 수척해진 얼굴의 남자가 몸이 불편한 듯 절뚝이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마주치는 둘의 시선. 한쪽은 그 광경을 바라..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또봇/셈한] 너의 모든 것 수업을 듣고 있던 중 무심코 눈을 감으면 순식간에 교실은 텅 비게 되고,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의 모든 것에 내 감각은 집중된다. 사실 나는 그것을 가장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몰라야만 해. 너의 모든 것은 나만 알고 있어야만 해. 나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텅 빈 교실 안에서 네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 샤프를 톡톡 눌러 샤프심을 꺼내는 소리, 문제가 안 풀려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너는 책장 하나도 거세게 넘기는 법이 없었지. 혹여나 책이 망가질까 살살 책장을 넘기는 부드러운 소리. 그 섬세함에 나는 매료된다. 부드럽고 달콤해서 한 입에 넣어버리고 싶은 너. 너는 마..
[또봇/공한] 달큰한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손목을 붙잡고 입을 맞추니, 그대로 꽃향기에 취해버릴 것 같아, 아찔해져 오는 정신을 붙잡고 손목을, 그 손목에 잇자욱을 낼까, 그러면 단물이 배어나올 것 같아 이로 훑었다 혀로 훑었다, 입맛만 다시다 혹시라도 네가 아플까 세우려던 이를 삼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긴다. 목은 또 어떤가. 가만히 입술로 꾹, 마치 자국을 남기려는 듯이, 그러나 움직이지는 않은 채... 단지 그렇게 누르고만 있자 부산히 팔딱거리는 맥박이 느껴졌고 나는 그것이 나를 향한 마음이라 생각하겠다. 그렇게 뛰고만 있던 그것이 신기해, 마치 한 번, 두 번 뛸 때마다 네 자신을 이 세상에 공표하는 것 같아, 그 소리를 너보다 내가 더 크게 가까이 들을 수 있는..
[또봇/셈한] 차하나씨에게.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하나 씨에게.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바람이 마치 볼을 에는 것 같군요. 하나씨는 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진 않으셨나 걱정이 됩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항상 하나씨 걱정뿐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며칠 전에 독고 군을 만났습니다. 독고 군에게 그대의 근황을 물었으나 대답해주지 않더군요. 이해합니다. 내가 만일 독고 군의 입장이었어도 대답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이 서러웁디다. 하지만 꼴사납게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한심하게 보일 일도 없지요. 하나씨가 떠난 이후로 나는 마치 북극성..
[또봇/공한] - enchaînement *BGM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가급적 PC에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BGM을 끄시려면 그림을 클릭해주세요! 방 안에 두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한 남자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남자는 어쩐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짧은 머리를 왁스로 고정한 정장을 입은 다른 남자가 손을 들어 울고 있는 남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다 그 손을 멈춘다. 허공에 멈춰버린 손이 갈 곳을 찾는 듯 미세하게 떨리다 결국 힘없이 내려앉고 말았다. 뿌드득, 남자는 이를 갈았다. 화를 참는 것 같기도 했다. 꾹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나야.” 울고 있는 남자의 이름이 ‘하나’인 듯 했다...
[또봇/셈한] 과학과 인간의 문명, 수506호. -3- 눈앞에 케이크가 들이밀어졌다. 우리 오늘 5년 째 만나는 날이야! 축하해, 세모야. 그리고 이제까지 우리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케이크 위에는 초 다섯 개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초를 바라보고 있자니 세모는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자신의 지난 5년을 보았다. 일생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지난 나날들. 그리고 겨우 찾은 이 곳에서 세모는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모의 상태는 비유하자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상처투성이로 겨우 구조되어 치료를 받아 이제 첫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였다. 즉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걸음이 무너질지 아무도 모르는, 살얼음판 위에서의 한 발자국. “감사해요, 선생님.” 상담실 문을 닫고 나서 세모는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